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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비춘 나의 민망한 뒷모습

by 런브



“내가 알아서 할게!”


남편에게 화가 날 때마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말이다.

목소리는 낮추되 감정은 한껏 실어 던지는 이 말은, 남편에게 뭔가를 강하게 표현할 때 항상 쓰던 레퍼토리였다.


그런데 어느 날, 아들이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빠, 내가 알아서 할게!”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투와 억양, 그리고 행동까지. 순간 내 몸이 굳었다.


저건 분명 나였다. 나의 말, 나의 표정, 나의 억양이 고스란히 담긴 모습이었다.


그 순간 부끄럽고 민망한 감정이 밀려왔다.

아이들이 나의 말과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나름 노력해왔다. 아이들에게 좋은 말을 해주고, 좋은 것을 가르치고, 좋은 음식을 먹이며 그럴싸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썼다. 하지만 정작 아이들이 닮아간 건 내가 보여주고 싶었던 앞모습이 아닌, 무의식중에 드러난 나의 뒷모습이었다.


내가 어릴 적 엄마, 아빠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 것처럼, 아이들도 내 뒷모습을 보고 자라왔던 것이다. 내가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날 때 뱉어낸 말투와 표정, 행동 하나하나가 아이들에게 그대로 스며들어 있었다. 마치 귀신같이 내 모습을 복제해낸 아이들의 행동을 보며, 나는 또 한 번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아이들이 말을 시작하고 감정을 표현하면서 보이는 행동들은 영락없는 나와 남편의 모습이었다. 화가 날 때, 짜증 낼 때 뱉어내는 말과 몸짓은 마치 축소된 우리 부부를 보는 것 같았다. 더 충격적인 것은, 절대 물려주고 싶지 않았던 습관과 말투까지도 아이들이 그대로 따라 한다는 점이었다.


어릴 적 아버지의 엄한 말씀과 행동이 싫었다. 밥상에서의 규칙, 낡은 관습들, 근거 없는 금기사항들... 그 모든 것이 나를 답답하게 했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그 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버릇없이 굴 때면, 그토록 싫어하던 아버지의 표정을 하며 아이들을 노려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깨달았다.


나의 뒷모습은 아이들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는 것을.



나는 나의 표정을 알지 못하고, 나의 뒷모습을 보지 못한다. 누군가가 내 모습을 비추어주지 않으면, 나는 알 수 없다. 그런데 내 삶이, 그리고 내 아이들이 바로 나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부모의 성적표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나온다고들 한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무의식적으로 드러내는 행동과 말투는 부모의 뒷모습을 투영하는 결과물이다. 아이들을 통해 내 삶의 일부분을 들여다본다.

어릴적 아버지를 보며 답답하고 싫었던 모습을 아이들을 통해서 보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그저 고쳐야 할 것들로 가득 차 있어 보인다. 아이들의 모습 속에서 발견하는 나의 모습들.


때로는 부끄럽고, 때로는 아프다.

하지만 이런 깨달음이야말로 진정한 변화의 시작이라고 나를 토닥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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