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사립학교 방문기
런던 근교에 위치한 몇 개의 학교를 방문하는 일정이 있었다.
하필이면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며, 런던 날씨답지 않게 여름 같은 날, 업무가 아니라 공원에서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고 싶을 만큼 완벽한 날씨였다. 하지만 나는 학교들을 방문하며 그보다 더 인상 깊은 경험을 하게 되었다.
세 곳의 학교를 다니며 각 학교마다 저마다의 색깔과 특징이 있음을 발견했다.
첫 번째 간 학교는 유치원부터 초등 2학년까지 있는 사립학교이다. 유치원을 다니는 아이들은 3세부터 시작한다. 3세 정도 된 아이들은 개인차가 있겠지만 자기감정 표현을 정확하게 언어화해서 전달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감정 표현이 서투른 아이들을 위해 감정 표현이 그려진 각각의 인형들을 놓아두고 아침에 선생님과 인사하면서 인형을 통해 표현을 한다고 했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그날 하루 아이들이 전달한 감정을 보고 더 세심하게 아이들을 볼 수 있다는 했다. 단순한 방법이었지만 아이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가 돋보였다.
두 번째로 간 학교는 한국으로 치자면 중학교, Secondary School을 방문했다. 영어, 수학, 과학, 지리, 역사 등 모든 과목을 가르칠 때 다 독립적인 공부가 아닌 모든 과목에서 연결이 되어 생각하고 상호보완 할 수 있게 공부를 가르친다고 했다. 영어와 수학이 서로 다른 공부일 거 같지만 그 속에서 링크되어 있는 것을 찾아 생각의 영역을 확장시킨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학교는 남자 초등학교이다. 학교에 들어가서 제일 먼저 만난 사람은 교장 선생님이었다. 우리가 교장실에 들어서자, 교장 선생님은 책상 위에 어지럽게 흩어진 서류들을 급히 정리하며 우리를 맞이했다.
"너무 어지럽죠? 오늘 해야 할 일이 많아서 정신이 없네요."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붙이고 업무를 보던 그는, 우리가 도착하자 단추를 다시 잠그며 환한 미소로 인사했다. 그제야 알게 된 사실인데, 우리가 학교를 방문한 날은 그의 생일이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바쁘네요."라며 웃었지만, 지친 기색 없이 우리를 반겼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는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가 가장 먼저 강조한 것은 ‘학생의 성장’이었다. 이 성장은 단순히 가장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각 개인의 성장이었다.
"우리 학교에서는 모든 학생이 같은 목표를 향해 달리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각 학생들이 어제보다 오늘, 지난달보다 이번 달 더 나아지는 것입니다."
공부뿐만 아니라 미술, 음악, 체육 등 학생들이 관심을 두는 모든 분야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누군가는 미술을 좋아하고, 또 누군가는 전혀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관심이 시기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에 학교는 다양한 기회를 제공할 뿐, 강요하지 않는다고 했다.
또한 따라 주어야 하는 것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고 했다.
"친절하게, 그리고 좋은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삶의 기본이니까요."
이런 교육 철학 덕분일까? 이 학교의 졸업생들 중 상당수가 다시 학교로 돌아와 교직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교장 선생님은 연이어 자신과 학교에 대한 철학을 쉴 새 없이 말했다. 어떠한 주저함도 어색함도 없는 몸에 배어 있음을 그 자리에서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교장 선생님께 많은 사람들이 질문을 한다고 한다.
"교육자로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많은 사람들이 ‘학생’이라고 예상하지만, 그의 대답은 달랐다.
"제일 중요한 건 선생님들이에요.
선생님들이 행복해야 학생들에게도 최선을 다할 수 있고, 진심으로 가르칠 수 있습니다."
좋은 교육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선생님들이 안정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교장 선생님의 이 확신에 찬 철학이 학교의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밖에서 노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더없이 행복하게 들리는 건 이 멋진 교장 선생님 철학 때문일까.
나는 그의 말에 계속해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속으로 ‘엄지 척’을 몇 번이고 날려주었다.
학교를 방문하기 전까지는 그냥 업무 일정 중 하나라고 생각했지만, 교장선생님과의 대화는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교육의 본질은 단순한 성적이 아니라 ‘한 사람의 성장’이라는 것. 그리고 그 성장을 돕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교육자의 환경이라는 것.
이 교장 선생님의 철학이 앞으로도 많은 학생들과 선생님들께 좋은 영감을 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햇빛 내려쬐는 날 공원이 아닌 학교에서 나는 따듯한 환대를 받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