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경상도 부산 출신 여자다.
흔히들 부산 아가씨 하면 "오빠야~" 하며 애교 넘치는 활발한 모습을 떠올리지만, 나는 정반대로 무뚝뚝하고 남자 같은 성격의 여자다. 경상도 여자들이 애교가 많다는 이야기와는 달리, 내 주위에는 어째 나처럼 무뚝뚝한 사람들뿐인지 모르겠다. 친구들도 가족들도 그리고 친척들도 하나같이 다 무뚝뚝한 사람들이다. 애교 넘치는 모습의 여자들은 TV 에서나 나올뻔한 인물인 듯하다.
어릴 때부터 우리 집 식사 시간은 TV를 켜놓고 아무 말 없이 밥만 먹는 게 당연했다. 식탁에 앉아 가족 간의 대화나 공감 같은 것은 처음부터 없었으니, 그런 걸 바라는 건 사치에 가까웠다.
밥 무라,
조용히 무라.
가족 식탁은 본래 온갖 감정이 오가야 정상이라는데, 우리 집은 단지 배를 채우는 공간일 뿐이었다.
아무 말 없이 밥을 먹고 나면 "잘 묵었습니다"하고 그냥 벌떡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 분위기에서 자란 나는, 배운 거라곤 무뚝뚝함이었고, 내 말투엔 도통 온기가 없다.
온기를 어떻게 담아서 말을 건네는지 배우 지를 못했다. 심지어 남편도 나와 비슷한 경상도 사람이라 서로를 이해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지만, 우리의 일상적인 대화를 듣고 주변 사람들이 긴장하는 건 흔한 일이었다.
"둘이 싸우는 건 아니지?"
마음을 담아 선물을 준비해도 표현은 "오다가 주웠다" 정도였으니, 따뜻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런 나에게 아이들이 생기고 영국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다른 사람들의 말투의 온기에서 나의 차가움이 드러났다.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말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가 되고 찔림이 된다는 것을 나는 나이가 먹고 새로운 울타리 속에서 점차 배우게 되었다. 특히 아이들에게 차가운 말을 던지고 나면, 내 안에 있던 어린 시절의 모습이 거울처럼 비친다. 그 모습이 도통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달라지고 싶어 시도해 보지만 내 옷이 아닌 듯 참 어색하다.
하지만 무뚝뚝함 속에 감춰둔 진짜 마음을 꺼내고 싶을 때가 많다. 남편에게는 "고맙다"를, 아이들에게는 "사랑한다"를 자연스럽게 말하고 싶다. 그동안 표현하지 못했던 따뜻한 말들이 마음 깊은 곳에 쌓여있다.
따듯한 말들을 하나씩 꺼내 가족에게 건네려 시도를 해보려 하지만 어색하고 서툴다. 목까지 차올랐지만 이내 꿀꺽 삼켜버리고, 결국 표현하지 못한 마음만이 내 안에서 애타고 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데, 어릴 때 배웠더라면 지금 힘들지 않을 것을 40대 중반을 넘긴 지금에서야 말을 배우려 하니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말에 가시를 심으면 듣는 사람도, 말하는 사람도 아프다는 걸 아이들이 점점 자라는 모습을 보며 깨달았다. 내가 했던 말들이 그들에게 어떤 상처를 줄 수 있는지 문득 알게 되었다. 참 늦었다 싶으면서도, 이왕 늦은 거 끝까지 가볼 생각이다. 어쩌겠는가, 나이 먹고도 배워야 하는 게 사람의 일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