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옷을 여유 있게 입는 편이다.
몸에 딱 달라붙는 옷보다는 살짝 헐렁한 스타일이 편하다. 반면 신발만큼은 반드시 내 발에 꼭 맞는 것을 신는다.
온라인으로도 옷과 신발을 구매할 수 있지만, 신발만큼은 오프라인 매장에서 직접 신어 보고 고른다. 같은 사이즈라도 브랜드마다 크기가 다르기 때문에, 신발이 너무 크거나 발가락이 조여 불편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스타일은 어릴 적 엄마의 영향에서 비롯되었다.
엄마는 늘 나에게 한 치수 큰 옷을 사주셨다. 소매가 손가락까지 덮이는 재킷은 접어 입혔고, 셔츠도 헐렁한 사이즈를 골라 옷을 구겨 넣어서 새 옷을 입고도 마치 얻어 입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조금 더 크면 옷을 못 입게 될까봐 아까운 마음이셨다.' 엄마는 옷을 오래 입히고 싶었던 것이다.
몇 번이고 반항해 보았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엄마의 생각을 꺾을 수 없었다.
신발도 마찬가지였다. 늘 한 치수 큰 신발을 신어야 했고, 걸을 때마다 덜컹거리는 신발이 불편해서 휴지를 뭉쳐 넣으며 사이즈를 조절했다. 그렇지 않으면 신발이 벗겨질까 봐 버스를 탈 때마다 발을 신경 써야 했다. 온 에너지가 발가락에 집중되어 있었다. 큰 신발을 신으면 내 걸음이 내 것이 아닌 듯 어색했고, 불편했다.
반면 가끔 엄마가 누군가에게 얻어온 작은 신발을 신어야 할 때도 있었다. 분명 꽉 끼어 발가락이 눌리는데도, 엄마는 “딱 맞는다”고 하셨다. 마치 신데렐라에 나오는 새엄마처럼 말이다.
그때의 기억 때문일까? 지금도 옷은 여유 있는 사이즈를 입어야 편안하지만, 신발만큼은 반드시 내 발에 딱 맞는 것을 신는다. 신발이 편해야 멀리 그리고 오래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유튜브나 책에서 '자신의 길을 가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과거에는 가족과 공동체를 우선시하고 개인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문화가 강했다. 하지만 이제는 개인의 삶과 존엄성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시대다. 나 역시 내 길을 찾고 싶은 사람 중 하나다.
자신의 길을 간다는 것은 결국 내 발에 맞는 신발과 옷을 찾는 일이 아닐까? 내게 꼭 맞는 신발을 신고 걸어야 멀리가고 오래 갈 수 있다. 어정쩡하게 남의 신발을 신고 걸으면 불편하고 힘들 뿐이다.
하지만 딱 맞는 옷과 신발을 찾는 일도 쉽지만은 않다. 때로는 맞는 것 같아도 걸어보면 어색하고, 잘 맞는 듯해도 시간이 지나면 불편할 때가 있다. 결국 나에게 맞는 것을 찾기 위해 계속 걸어보고, 때로는 실패도 겪어야 한다. 그 과정 속에서 진짜 내게 어울리는 신발과 길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는 아직까지 내 인생에 맞는 신발과 옷을 찾는 중이다.
분명 신데렐라도 유리구두 사이즈가 본인한테 크지 않았을까 싶다.
왕자 앞에서 우아하게 걸어야 하는 순간에도, 어쩌면 그녀는 불편한 신발을 신고 내색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마법이 풀린 후에도 유리구두 한 짝을 남기고 사라진 신데렐라처럼, 우리도 때로는 완벽하게 맞는 것 같았던 길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있다.
진짜 내게 맞는 신발을 찾는 일은, 단순히 예쁘고 화려한 구두를 신는 것이 아니다. 내 발에 편안하게 감기고, 오래 걸어도 아프지 않은 신발을 찾는 과정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때로는 크고 헐렁한 길을 걸으며 나에게 맞는 것을 찾기도 하고, 때로는 답답하게 꽉 끼는 길을 지나면서 내게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완벽히 맞는 신발을 신는 날이 올지, 아니면 적당한 불편함과 함께 걷게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내 걸음으로 걸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신데렐라처럼 남이 신겨주는 유리구두가 아니라, 내가 선택한 신발을 신고 나만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