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딸, 무슨 일이야?"
"엄마... 나 자고 있는데... 내 방에 갑자기 누가 들어왔어."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무슨 말인지 자세히 들어보니, 딸이 렌트하고 있는 집에 주인이 예고 없이 들어와 딸을 깨우며 내일까지 방을 비우라고 했다는 것이다.
딸은 학교 근처에서 친구들과 함께 집을 렌트해 살고 있는데, 이런 황당한 일을 겪고는 당황한 목소리로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아무런 공지도 없이 집을 비우라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전화나 메시지도 없이 집에 들어와 버린 집주인의 행동이 더욱 무례하게 느껴졌다. 본인 집이라 해도 최소한 방문 전 연락을 하는 것이 기본적인 예의 아닌가?
딸은 주인에게 어떤 공지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지만 소용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딸과 나는 우선 계약서를 확인해 보기로 했다. 한참을 읽어 내려가 보니 계약서는 철저히 집주인 편에서 작성되었고, 결국 딸은 별다른 대응도 하지 못한 채 바로 짐을 싸서 나와야만 했다. 집을 계약하기 전에 계약서를 꼼꼼히 읽어보지 못한 탓이라며 딸은 자책했다.
그런 딸을 달래며 전화를 끊고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들이 크면 걱정이 줄어들 줄 알았다. 내 손에서 점점 벗어나기에 신경 쓸 일도, 걱정할 일도 많이 없어질 거라 생각했다. 더 이상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순간은 없을 거라 믿었다.
딸이 태어났을 때, 또래보다 작고 왜소했다. 다른 아이들처럼 쑥쑥 크지 않아 매달 키와 몸무게를 재며 걱정했다. 왜소한 탓인지 아프거나 열이 오르면 경기를 해서 늘 놀라게 만들었다. 새벽이고 밤이고 응급실에 업고 달려가면서 눈물을 흘린 것도 허다하다. 열이 나기 시작하면 밤새 긴장하며 잠을 이루지 못했기에 빨리 커서 체력이 단단해지기만을 바랬다.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영국에서 태어났음도 불구하고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해 전전긍긍했다. 방학을 마치고 학교를 가는 전날부터 울기 시작했다. 달래기도 하고 혼을 내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초등학교를 마칠 무렵 중학교 입학시험을 준비할 때는 원하는 학교에 맞게 안정적인 점수를 받지 못해 잘 가르친다는 선생님을 찾아 수소문하며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렇게 대학 입학이 확정된 날, '이제는 내가 해줄 게 없다'라며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순진한 착각이었나 보다.
이런 전화를 받을 때마다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 일을 여전히 겪고 있으니 말이다. 당황한 딸에게 침착한 목소리로 "괜찮아"라고 했지만, 나의 마음은 요동치고 있었고 전화를 끊고서도 이것저것 걱정이 밀려오는 건 막을 수 없었다.
몇 시간 후 남편은 딸을 데리고 집으로 왔다. 트렁크에는 딸의 살림살이를 한가득 했다. 머리는 엉크러져 있고 손에 잡히는 대로 옷을 입고 왔는지 아래위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딸을 맞이하며 저녁을 차려 주었다. 허겁지겁 카레를 먹으며 "엄마, 너무 맛있어!"라고 말하며 함박웃음을 보인다. 나름 살림살이가 한 보따리이다 보니 짐을 싸는 동안 아무것도 못 먹은 모양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 또다시 돌아올 집이 있어서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또 다른 사건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일이 또 있을지라도..
아이들이 성장해 성인이 되어도 부모의 걱정은 끝나지 않는 것 같다.
80세 노인이 60세 아들에게 "운전 조심해라~"라고 말하는 것처럼, 부모는 평생 자녀 걱정을 안고 살아가야 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