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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 노릇 잘하려다 나를 잃었다.

by 런브



결혼 전, 집안일을 제대로 배우지 않은 채 시집을 왔다.


그러다 보니 빨래를 분류하는 법부터 청소, 정리, 요리, 식사 준비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모조리 다시 배워야 했다.

엄마는 늘 “시집가면 다 할 텐데, 내 옆에 있는 동안엔 편하게 있어라”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이 생각날 때면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시어머니께 하나하나 배우는 일이 쉽지만은 않아서

‘왜 미리 안 가르쳐 주셨을까?’ 하는 작은 원망이 일기도 했다.


영국에서 아이가 태어나고, 학생 신분이었던 남편을 위해 살림을 알뜰히 살아야 했기에 손수 해결할 줄 알아야 하는 것들이 많아졌다. '살림은 주부의 손끝에서 나온다'는 말을 달고 사시던 시어머니께 살림을 배우는 동안 내 생각과 시선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그저 가르쳐주시는 대로, 하라는 대로 받아들이기만 했다.


내게 생각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단지, 나의 감정과 의견이 존중받지 못했기에 힘을 낼 수 없었을 뿐이다.

차츰 내 생각을 표현하기가 어려워졌고, 입을 닫고 마음을 걸어 잠근 채 살았다.

다른 사람의 의견과 감정에 맞춰주는 데 온 힘을 쏟다 보니, ‘나’라는 존재를 점점 놓아버리게 됐다.

그 대신 “착하다”, “순종적이다”라는 말을 들었다.


처음엔 그 말들이 내심 위로가 되기도 했지만, 사실 내 안에는 꾹꾹 눌려 담긴 서러움과 억울함이 꿈틀대고 있었다.

이렇게 사는 게 며느리 노릇, 아내 노릇을 다하는 거라고 믿었다.

가정을 잘 지키기 위해서라면 내 감정과 의견쯤은 무시당해도 괜찮다고 여겼다.


‘다들 이렇게 살지 않을까?’ 하고 스스로 며느리들의 내적 연대감을 만들어가면서 말이다.


돌이켜보면 참 무지했고 무참히 스스로를 몰아붙였던 것 같다.


그러다 혹독한 아픔에서 홀로 남겨지며 알았다.


홀로 남겨진 나를 마주하고 보니, 결국 나를 인정하고 돌봐줄 사람은 바로 ‘나’라는 사실이었다.

아무리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가 있어도, 내 마음 깊은 곳까지 감싸줄 수 있는 건 결국 나 자신뿐이란 걸 알았다.

그동안 남에게 맞추고 살며 잃어버린 시간만큼, 이제부터라도 내 감정과 생각을 챙겨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타인의 인정이 아니라, 내 안에서 비롯되는 인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은 순간이었다. 앞으로 삶에서 또 다른 어려움을 만나도, 이제는 더 이상 내 목소리를 억누르지 않을 것이다.

내 감정과 의견을 스스로 존중하면서, ‘나답게’ 살아가기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가 보려 한다.


너무 아팠지만 고통이 나를 깨우치고, 내 안에 잠들어 있던 감각을 흔들어 깨웠다. ‘힘듦’과 ‘슬픔’이라는 감정이 마치 굳게 닫혀 있던 문을 열고 들어온 듯했다. 그제야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깊이 내 목소리를 감춰왔는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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