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교실 밖에서 배우는 인생 수업 (DofE)
오래전, 아이가 학교 친구들과 함께 Duke of Edinburgh 행사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필립공의 이름을 딴 청소년 자선 프로그램으로, 영국에선 줄여서 흔히 DofE라고 부른다. 이 프로그램은 단순한 캠프 활동이 아니다. 아이들에게는 작은 도전이지만, 그 안에서 얻는 배움과 성장의 깊이는 꽤나 진지하다.
DofE는 청소년을 위한 도전과 성장의 프로그램이다.
브론즈(Bronze), 실버(Silver), 골드(Gold) 세 단계로 나뉘며, 나이에 따라 참가 가능한 등급이 정해진다.
주로 Year 10~13 (한국 중3~고3 정도)의 학생들이 참여하게 된다. 각 단계는 일정 시간 동안의 자원봉사,
신체 활동, 기술 습득, 탐험 등을 포함하며, 골드 단계에는 추가로 Residential이라는 숙박 활동까지 포함된다.
그야말로 교실 밖에서 배우는 인생 수업이다.프로그램에 참여하면, 출정 전 사전 훈련이 진행된다.
지도 읽는 법, 나침반 사용하는 법, 야영 시 주의할 점 등을 익히는 시간이다.
요즘처럼 모든 길을 핸드폰이 알려주는 시대에, 지도 한 장과 나침반만 들고 길을 찾는 경험은 귀중하다.
학교에서는 담당 선생님이 프로그램 책임자로 학생들을 인솔한다. 일정 구간을 정해 탐험하고, 지정된 지점까지
팀 단위로 이동하며 야영도 함께 한다.잉글랜드에는 한국처럼 높은 산은 없지만, 그렇다고 쉬운 코스도 아니다.
멀리서 보면 구릉지가 부드러워 보여도, 막상 걸어보면 이야기가 다르다.
특히 날씨는 영국 야외 활동의 가장 큰 변수다.
아이들 얘기로는, 어느 날은 비가 쏟아져 길이 진흙탕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신발은 흠뻑 젖고, 미끄러져 넘어졌는데 하필이면 소똥 위에 얼굴을 박은 친구도 있었다.
듣기만 해도 고된 상황인데, 웃음이 나는 건 왜일까.실제로 다쳐서 중간에 실려 나간 학생도 있었고, 어떤 팀은 목적지까지 도달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비바람을 뚫고, 거친 땅을 딛고, 밤을 이겨낸 아이들은 결국 한 뼘 더 자란다.
모든 과정을 마치면, 필립공의 명의로 인증서가 수여된다.야영지에서 아이들이 직접 음식을 준비하는데,
우리 아이들은 컵라면을 가져갔다. 젖은 신발, 차가운 손, 거센 비 속에서 따뜻한 컵라면 하나가 그렇게 맛있고 위로가 될 수 있다니,아이들이 다 엄지를 들었다고 한다.
DofE는 단순한 학교 활동이 아니다.
아이들은 팀워크와 인내심, 계획성, 자기 주도성을 배우며, 스스로 해냈다는 성취감을 얻는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교실 밖에서도 배움은 계속된다는 걸, 그리고 실패와 고생도 결국 성장의 일부라는 걸 몸소 체험하게 된다.
우리 아이도 이 경험을 통해 ‘나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얻었고, 나 또한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참 많은 걸 느꼈다.
아이들은 언젠가 다시 그 비 오는 야영지에서, 젖은 신발에 라면을 끓이던 순간을 떠올리며 웃을 날이 올거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