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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일상 속,특별함을 만나다;토트넘 축구경기

by 런브

익숙한 일상 속,특별함을 만나다; 토트넘 경기 관람기


영국에 살다 보면, 언제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오히려 하지 않게 되는 일들이 많다.


서울 사람들이 남산을 자주 가지 않는다는데 나 역시 런던 시내에 나가는 일이 드물고, 가까이 있는 수많은 박물관과 미술관도 늘 ‘다음에 가야지’ 하며 미뤄둔다.

그러다 한국에서 친지나 친구가 방문하면, 그제야 나서는 일이 하나의 특별한 행사처럼 느껴진다. 그중 하나가 바로 축구 관람이다. 내가 축구 팬이 아니라서 가지 않는 것도 있지만, 공짜로 표가 생기거나 꼭 가야 하는 이유가 없다면, 많은 인파 속에서 보는 것보다 편하게 TV로 관람하는 편을 택한다.


그런 내가 어제는 오롯이 ‘일’ 때문에 축구 경기를 보러 가야 했다. 손흥민 선수가 소속된 토트넘의 경기였다.

축구 자체보다는 손흥민 선수를 직접, 비록 멀리서라도 볼 수 있다는 것이 더 큰 의미로 다가왔다. 세상에는 축구를 보기 위해 14시간 비행기를 타고 오는 사람들도 있다는데 1시간 거리에 있는 경기를 보러 가는 일은 감지덕지 해야 할 일이다.


경기는 오후 2시 15분 시작이었지만, 근처 숍에서 점심도 먹고 Son 이라 쓰여 있는 유니폼을 구입 하기 위해 우리는 서둘러 정오 무렵에 도착했다. 꽤 이른 시간이라 생각했는데, 이미 경기장은 사람들로 들썩이고 있었다. 스테디움 근방으로 차 도로는 전면 통제됐고, 그 자리를 가득 메운 군중들의 열기로 공기가 달아올랐다. 경기장에 가까워질수록 저 멀리서부터 응원 소리가 울려 퍼졌다.


스타디움 내 숍은 선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사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유니폼을 구입한 사람들은 입고 온 옷을 거리 한복판에서 훌러덩 벗어던지고 응원팀의 유니폼으로 갈아입으며 들뜬 표정을 지었다. 계산 줄은 꼬불꼬불, 족히 100미터는 넘게 이어져 있어졌지만 누구하나 인상 찌부리는 사람이 없었다. 한손에는 맥주를 들고 축구 이야기에 삼매경인 영국인들은 축구에 진심이다.


경기장에 들어서자마자 파도처럼 밀려오는 응원의 열기를 온몸으로 확 느낄 수 있었다. 홈팀과 상대팀의 응원석은 확연히 구분되어 있었고, 그 경계선마다 안전요원이 자리해 충돌을 방지하고 있었다. 경기가 시작되자, 6만 석의 자리는 순식간에 가득 찼고 박수와 함성 소리가 경기장을 진동시켰다. 이렇게 많은 사람을 한자리에 본 것은 처음이었다. 군중의 크기와 함성에 압도됐다.


나도 모르게 경기에 빠져들었고, 환호성이 터지면 파도에 휩쓸리듯 함께 소리를 질렀다. 상대 팀 선수가 골대를 향해 슛을 날릴 때면, 내 몸이 마치 골키퍼가 된 듯 온몸에 힘이 들어가기도 했다.


손흥민 선수가 나오기만을 바라보고 있다가 야광 조끼를 입고 워밍업을 시작하는 모습이 보였다.가까이서 얼굴을 볼 수는 없었지만, 옆모습과 뒷모습만으로도 충분히 감격스러웠다. 그 모습을 담기 위해 연신 사진을 찍으며 마음속으로 뜨겁게 응원했다.


비록 토트넘 팀이 아주 깔끔하게 지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경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언제든 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이 런던의 일상이 누군가에겐 비행기를 타고서라도 경험하고 싶은 특별한 순간이라는 것. 익숙함에 가려 미처 누리지 못했던 이 하루가 오늘은 유난히 반짝임이 느껴졌다. 다음엔 박물관도, 미술관도, 런던 시내의 거리도 그저 지나치지 않고 천천히 걸어보려 한다. 익숙한 것들 속에 숨겨진 특별함을, 놓치지 않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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