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상과 농담 사이
바람의 도움 없이도 커튼이 날린다. ‘날린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날리는 어느 한순간에 머물러 있다. 커튼은 투명한 잠자리 날개를 흉내 냈을 뿐이다. 풍경을 가리지 않고 고스란히 전달하는 미덕도 잠자리 마음씨를 닮았다. 배운 것은 이것 말고도 더 있다. 잠시 쉬려고 앉았어도 공간과 그 순간을 사랑하게 되었다면, 그때부터 꼼짝 않고 얼음! 잠자리가 그랬듯이 긴 시간 움직이지 않고 스스로 사랑의 한 장면이 되어 굳어가는 것. 그것은 숙명이다. 바로 액자 속 저 그림처럼 말이다.
커튼 뒤로 격자창이 반듯하게 서 있다. 그러나 마법에 걸린 것처럼 커튼 모양만큼 사선으로 흘러간다. 커튼을 쫓는 중인지 아니면 요구에 못 이겨 잠시 연출 중인지 알 수 없다. 어쩌면 꿈의 본질은 반듯함에서 벗어나 왜곡을 즐기다가 운 좋게 화폭에 담기면 영원한 풍경으로 남는 것이 아닐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날리는 커튼은 바람을 움켜 잡은 채 시간도 잡았고, 마찬가지로 커튼의 크기만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창은 규정된 시선에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더 나아가지도 그렇다고 내려놓지도 못한 채 묵묵히 고정된 그 순간을 왜곡하며... 꿈이 신선한 이유를 속삭이듯이.
창문이 삼분의 일쯤 올라가 있다. 열린 틈으로 바다가 들어온다. 아니, 그 틈으로 내가 가까이 갔다. 우리는 만났다. 등받이가 둥근 의자엔 내가, 그 반대편엔 바다가. 우리의 만남에 있어서 누구의 노력이 더 큰 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마주 볼뿐이다. 우리는 파도의 연속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파도는 줄곧 정점을 찍는 일이 중요해 보인다. 고정값을 찬란하고 아름답게 가장 높이 파랗게. 하지만 지금은 손잡고 있다. 꽃들의 설득이라도 있었을까. 딱 같은 높이로 같은 목소리로 야트막하게 꽃밭처럼.
액자 안에서 바다와 파도만 잘 난 게 아니다. 그렇다고 커튼이 최고라는 말도 아니다. 하늘빛으로 마지막 붓칠을 하면 키 다른 모습도 모두 같은 채도의 옷을 입는다. 이것을 ‘분위기’라고 말하지만 누군가는 ‘날씨’라고도 표현한다. 화창한 아니면 화사한...
액자 아래로 가지런히 놓인 소품들. 어떤 것은 비누로 만들었지만 그런대로 오늘 날씨가 맑음이라 비누로 소비되는 일이 조금 유예되었다. 정수리 위로 길게 나온 심지는 뜨거운 불꽃을 만나면 곧 어둠을 밝힐 예정이고, 곰돌이 5형제는 바람이 시키는 대로 흔들릴 만큼 착해서 탈이다. 모두 액자에 들어가는 일에서 제외되었지만 내 눈에 들어온 이상 이것도 한 장의 그림이다. 찰칵!
생각과 언어를 엮는 놀이를 했다. 생각이 많을 땐 언어를 아꼈고, 모자랄 땐 기차처럼 긴 문장을 나열했다. 액자 속 시간은 이미 멈췄지만, 내가 다른 곳을 볼 때는 아마 흐를 수도 있겠다. 보는 일과 시간의 일은 관리하는 담당자가 달라 내가 아무리 정성껏 엮어도 억지일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그림은 정말이지 인간에게 많은 자유를 준다. 농담을 이렇게 하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궁금해하지도 않는 것 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