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오락은 끝나지 않는다

글래디에이터Ⅱ

by 마혜경


꿈은 악하지 않다. 예리한 날개를 펴기 전까지. 막시무시 사후 20년, 다시 고개를 든 누군가의 꿈. <글래디에이터 Ⅱ>가 그날을 호명한다. 깃털은 뾰족했고 날카로운 날개가 목을 베었다. 사악한 꿈이 왕위에 오르자 누군가는 죽었고, 누군가는 죽지 못해 살았다. 쌍둥이 황제가 통치한 로마의 미래를 그대로 축소한 꿈의 공간. 분위기는 권력에 의해 규정되었다. 하이앵글에 잡힌 그곳은 무엇을 담아내기에 적합한 원형으로 쾌락과 야유가 가득 찬 지옥을 연상케 한다. 그곳의 바닥이 모래 또는 물로 채워지는 까닭은 죽음이 피바다를 이룰 때 감쪽같이 지울 수 있기 때문이다. 만세와 박수로 만들어진 충성심이 겁쟁이들에게 높은 곳의 신경을 건드리면 죽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직 경배만이 살길이다.



Paramount Pictures Corporation


황제가 제안한 오락은 꾸준히 이어져 왔다. 포로를 노예로 만든 후 검투사 옷을 입힌다. 재미를 위해 동물을 투입한다. 전리품으로 마련한 자금과 포로의 노동으로 설계된 콜로세움에서는 동물의 야만성과 인간의 잔인성 중 무엇이 우월하다고 장담할 수 없다. 단지 스릴과 무자비를 놀이 방식으로 삼을 뿐이다. 호감과 존경을 위해 권력이 남용되었던 이곳에서 어떤 오락이 펼쳐질지 관객의 심리를 리들리 스콧이 놓질 리 없다. 그래서 곧 보게 될 장면.


글래디에이터Ⅱ | 게타(조셉 퀸) & 카라칼라(프레드 헤킨저)


첫 오락은 ‘베나테스’ 방식으로 시작된다. 인간과 동물의 싸움 베나테스는 이곳이 양심을 버리는 공간이 아니라 놀이의 장이라는 믿음을 줌으로써 죄에서 눈을 멀게 한다. 기괴한 원숭이의 등장은 흥미진진하다. 인간의 미개한 부분을 닮은 동물과 한 사람의 대결은 가장 즐거운 오락이다. 그곳에서 자신의 과거를 알게 된 루시우스(폴 메스칼)는 “죽음이 있는 곳에 내가 없고, 내가 있는 곳에 죽음이 없다”라는 신념 하나로 무장한다. ‘재미와 즐거움을 만드는 일’을 뜻하는 오락(娛樂)에서 그는 유일하게 오락의 규칙을 따르지 않는다. 죽어도 끝나지 않을 게임이 계속 이어졌다.


글래디에이터 Ⅱ 스틸


글래디에이터 Ⅱ 스틸



스피드는 심장을 두드리고 창과 방패는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카메라 밖으로 죽음들이 떨어졌다. Ⅰ편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누구나 영화 <300> 정도의 남성미를 기대하는데, 막시무스(러셀 크로우)와 콤모두스(호아킨 피닉스)가 빠진 격투는 단조롭다. 사실 이런 기대가 오락을 강화시킨다. 인간 대 인간의 결투 ‘무네라’ 방식에서 펼쳐진 루시우스와 아카시우스(페드로 파스칼)의 대결도 검투사와 장군이 맞서야 하는 전형성에서 벗어난다. 오락에 감정이 들어가면 균열이 생긴다. 오락은 진화되어야 한다. 군중은 일어섰고 줌에 잡힌 게타(조셉 퀸)와 카라칼라(프레드 헤킨저)의 표정은 분노로 가득 찼다.


글래디에이터 Ⅱ 스틸

오락을 폄훼한 자들에게 죽음의 사약이 다가가는 복선. 음악은 극도로 빨라진다. 강화된 폭력이 육지 전에서 해상전으로 전환되면서 오락은 다시 이어진다. 다수의 기쁨을 위해 목 하나를 베어야 하는 게임. 루실라(코니 닐슨)와 아카시우스, 루시우스는 어떻게든 이 흥을 깨야만 한다. 오락의 끝은 어디일까. 이 와중에 루실라의 최후에서 예술미가 뛰어난 <오페라 유령>을 떠올리는 건 무리가 아니다. 뛰어난 미장센과 배우들의 비주얼, 물 위의 서사가 스크린 바깥의 오락에 시각적 미를 가미한다. 전편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역시 보고 듣는 유쾌함 때문에 오락은 루시우스 손에서 무사히 막을 내린다.





잔인함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걸까. 그것은 두려움. 오락은 두려움의 페르소나다. 두려움을 질료로 삼는 영화도 오락이다. 스크린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관객은 바깥에서 구경한다. 예술적인 조형물과 세트는 또 다른 볼거리다. 하지만 영웅이 오락 속에 진열된 조각상에 그친다면 서사는 슬픔밖에 말하지 못할 것이다. 영화가 쾌락만 고집한다면 그곳의 오락과 무엇이 다른가. 영웅은 그곳에서 나와야 한다. 영웅이 필요 없는 곳으로, 구원의 날개를 접은 채. 다행히 영화는 의미를 남긴다. 혼자 흘리는 눈물이 아니라 함께 울 수 있는 온기. 이것이 진정한 오락이다. 사실 <글래디에이터 Ⅱ>는 그날에 대한 슬픈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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