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혜경 Jun 11. 2020

기다림, 그 빨간 맛

눈물 나게 매운맛, 그리움


-기다림의 시간-

'나'를 지나간다. 나를 버린 후 버린 나를 바라본다. 시간을 정성껏 다듬고 기다려야 빨갛게 모아지는 알싸함, 입 안으로 들어온 그 맛은 아마 날카로운 가시를 세울 것이다. 그렇다고 놀라지 마시길. 몇 개의 계절이 가느다란 햇살과 파고든 흔적일 뿐. 그 시간은 태양이 혀 위에서 춤을 추는 순간. 그것을 나는 빨간 맛이라 부르고 싶다. 빨_간_맛!

손가락으로 콕 찍어 올리면 끝이 활처럼 뾰족한, 그러나 누구도 찌르지 않는 겸손에 곧 웃고 말 걸. 입 안의 통증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면 곧 괜찮아진다는 의미. 너무 많은 걸 삼키려는 우리의 고집에 매운맛 톡톡히 보이는 중.

빨간 맛은 스피드를 혐오하는 관계로 기다림으로 우리를 길들인다. '나'를 지나가는 시간이 몇 번은 반복되어야 맛볼 수 있는 맛. 내 손을 떠난 후 어떤 모습이 될지는 햇살과 시간, 계절이 의논해야 할 문제.

난 문을 닫고 기다리고 기다린다. 단지 밝은 빛을 가득 모아 그 위에 뿌리거나 얼굴거울을 자주 보여줄 뿐. 그러니 너무 놀라지 마시길. 그 빨간 고추장이 갑자기 눈물을 쏘옥 뺀다 하더라도...



파다당




아니나 달라,  날아갔다.


네 개의 다리 중 세 개는 하늘을 향하고 하나는 접힌 상태로 발랑 뒤집어졌다. 제일 먼저 김치 국물이 전쟁의 지도를 붉게 펼친다. 이어서 검은 간장이 깨를 둥둥 띄우며 영역을 표시한다. 날아간 접시는 조각 케이크처럼 각자 콩나물 토핑을 뒤집어쓰고 있다. 아침잠과 바꾼 반찬들이 밥상을 떠나 바닥에 널브러졌다면, 이제부터 그것은 음식이 아니고 음식물 쓰레기가 된다는 걸  어릴 때부터 엄마를 보며 알게 되었다. 엄마는 한숨을 먹기라도 하는 듯 입 안에서 말을 오물오물 씹었다. 그리고 곧 뒤집어진 밥상을 바로 세웠고, 유독 말썽인 상다리 하나를 펴면서 안에 남은 말들삼켜버렸. 밥상을 고집하는 한 사람 때문에 식탁이 아닌 상에서 밥을 먹던 어릴 때의 일이다.


둘러앉아 밥 먹던 둘레 밥상


새도 아닌 것이 그렇게 날아갈 수 있을까. 조용한 이 아침에 밥상이 발랑 뒤집어질 수 있느냔 말이다. 이 사건은 한 사람의 지극히 사소한 취향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그날의 중심엔 '고추장'있었고, '아버지'가 있었다. 엄마는 내가 못살아, 하면서도 잘 살진 못해도 못 살진 않았고 이상하게도 이 일은 그 뒤로도 몇 번 일어났다. 나는 밥상이 바닥에 자리를 잡게 되면 제일 먼저 오늘의 반찬이 무엇일까 점검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오늘의 밥상 첫인상'을 체크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다행인 게 그 체크는 거의가 적중해서 우리는 제 때 잘 피했고 무엇을 뒤집어쓰거나 다치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엄만 맨날 왜 그래. 첨부터 고추장을 올리면 될 걸!"


숟가락을 자 일어난 일이라 밥맛이 뚝 떨어진 난 엄마의 고집에 갑자기 짜증이 몰려왔다. 두 사람 사이에서 주도권 비슷한 쟁탈전이 벌어지면서 우리 집에서 고추장은 귀한 몸이 되었다. 반찬이 많아서 자리가 모자란 것도 아닌데 엄마는 고추장을 매번 올리지 않았고, 아버지는 그럴 때마다 고추장 고추장, 노래를 부르셨다. 그 뒤로 밥상이 더 이상 날아가지 않게 된 경위는 위를 빛의 속도로 검열한 내가 고추장이 보이지 않을 때마다 어머 고추장이 없네, 하면서 손바닥만 한 고추장 종지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밥상 문제가 해결된 어느 주말, 엄마가 간식으로 찐 감자를 내오셨다. 우리는 껍질을 벗긴 후 퍼슬퍼슬 하얀 속살 위에 소금을 살살 뿌렸다. 소금이 없었다면 심심해서 하나로 끝냈을 감자를 세 개나 먹었으니 감자라면 역시 소금이 짝꿍이다. 동생은 설탕을 좋아했지만 몇 개 못 먹는 걸 보니 소금만 한 게 없었다. 그_런_데 그때,


고추장 가져와라


아버지의 분부가 떨어졌다. 먹는 일에 집중하고 있을 때 고추장은 성가신 존재가 되었다. 아버지는 그 짜고 달기만 한 소금, 설탕을 왜 찍어 먹냐며 우리 보고 먹을 줄 모른다고 하셨다. 고추장을 대령하자 감자는 고추장 모자를 쓰고 아버지의 입 속에서 하나 둘 사라졌다. 역시 감자엔 고추장이지, 하셨지만 어린 나는 미간만 찡그릴 줄 알았다.


고추장이라고 아무 데나 찍어?
먹는 것도 다 짝이 있어


언제나 그랬다. 엄마는 고추장이라면 잔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별난 식성 때문에 주변 사람 고생시킨다느니. 맛도 모르고 그냥 아무 데나 찍는다느니 털실 풀듯 푸념을 자주 풀어냈다. 한마디로 엄마는 고추장을 미워했다. 그래서 엄마의 고추장은 짜거나 싱겁거나 맛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비빔밥을 먹을 때에도 고추장 대신 된장이나 양념간장을 넣어 비볐으며 비빔국수를 해도 간장만 넣어서 새콤달콤하게 만들었다. 고추장찌개는 아예 시도도 하지 않았으며 떡볶이는 고춧가루를 한 스푼 넣어 빨갛게 색을 내는 것으로 만족했을 뿐 고추장은 엄마 레시피 어디에도 없었다. "담그는 일은 하되 먹지는 는다" 뭐 이런 주의라도 가졌는지 엄마는 갈수록 단호했다.


아버지가 고추장을 못 찍을 음식은 이 세상에 없는 듯하다. 감자는 물론 삶은 달걀, 가래떡, 고구마, 부침개 무엇보다 이해 안 되는 것은 건빵에 고추장을 찍어 드시는 일이다. 바닐라 색 네모난 건빵 모서리에 고추장을 그것도 새끼손톱 크기의 양을 찍어 한입에 넣으셨다. 빨간 고추장은 건빵을 만나 아버지 입 안에서 섞이면서 점점 흐린 색으로 사라졌다.

마치 빨간 물감에 흰색 물감을 섞은 것처럼... 맵고 짠 고추장이 아버지 몸이 되었다. 아버지의 혀는 빨갛게 물들다가 물 한 컵을 들이켜고 나서야 다시 분홍색으로 돌아오곤 했다.


술이 취하신 어느 날은 카스텔라 가운데를 검지로 파내고 젓가락으로 고추장을 찍어 그 속에 넣고 눌러 입안 가득 구겨 넣으셨다. 그리고는 할아버지 얼굴이 생각나지 않는다고 우셨지만 눈물은 흘리지 않으셨다. 그날 잠든 아버지 등 뒤로 카스텔라 가루가 슬프게 붙어 있었고 젓가락에는 상처에 피 한 방울 맺힌 것처럼 고추장이 묻어 있었다. 나는 아버지 대신 눈물이라도 흘리고 싶었지만 그때는 너무 어려 역시 미간만 찡그릴 줄 알았다. 그 뒤로도 아버지의 빨간 맛 사랑은 끝이 없었다. 더 이상 찍을 게 없는 날에는 아버지 셔츠가 빨간 고추장 무늬를 안고 집으로 들어오는 날이 많았다.






이제는 고인이 된 아버지, 아버지는 정말 고추장을 좋아하셨을까? 좋아하진 않지만 좋아한다고 믿게 함으로써 고추장, 하면 누구든 달려서라도 대령해야 하는 권위를 심어주고 싶은 건 아니었을까. 아버지의 고집은 엄마를 고추장 장인까지는 아니지만 해마다 고추장을 담그는 여인네쯤으로 만드셨다. 장맛은 손맛이라지만 엄마의 손은 못생겨서 짜거나 쓰거나 이도 저도 아니면 맹탕이 되었다. 그해 고추장이 그랬다. 짜다고 핀잔을 듣더니 아예 고춧가루에 물만 부은 텁텁한 맛이 되었다. 아무도 고추장을 먹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버지는 단 한 명의 단골손님이 되었다. 하나뿐인 단골이 사소한 취향을 자주 강요해서 엄마는 간간히 고달팠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엄마가 제일 먼저 손 뗀 일은 고추장 담그는 일이다. 된장과 간장은 만들면서도 유독 고추장은 담그지 않았다. 맛도 맛이지만 무엇보다 먹어 줄, 아니 찍어 줄 단골손님이 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이상한 일은 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그 식성만은 죽지 않고 엄마에게 유산처럼 남겨졌다. "어떻게 담갔길래 이런 맛이 날까 맛의 한 끗 차이는 결국 물엿 아닐까?" 의심하면서도 엄마는 자주 마트에 가 고추장을 들고 오셨다. 그리고는 건빵까지는 아니지만 감자, 고구마 그리고 떡에 고추장을 자주 찍었다. 그 빨간 고추장에 말이다. 그러나 직접 담그는 일은 없었다. 빨간 맛에 손이라도 데었는지 엄마의 볼은 갈수록 발갛게 물들었고 그럴 때마다 엄마는 자주 마트에 갔다.



엄마,
갑자기
그 단골손님이 그리워

엄마표 고추장  ⓒ마혜경


가을 해가 주홍빛으로 저물던 어느 날 고속도로를 달리다 문득 아버지 얼굴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순간 전화기를 들고 엄마에게 물었다. 아버지가 어떻게 생겼었냐고. 엄마는 쓸데없는 소리 한다며 말을 돌렸지만 난 고추장 이야기를 꺼내면서 아버지의 모습을 그릴 수 있었다. "엄마, 나도 엄마 단골손님 하고 싶다" 이 한마디에 몇 년 전부터 엄마는 3월이 되면 고추장을 담그셨다. 엄마의 손은 예전보다 늙었지만 다행인지 더 늙을 구석이 없어 맛은 제자리거나 운이 좋은 해에는 엄지를 들만했다. 예전의 과정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지금 엄마의 레시피는 단순하다. 단순하지만 오랜 시간이 들어가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1. 찹쌀과 고춧가루를 빻는다

2. 엿기름과 찹쌀가루를 섞어 오래 달인다

3. 달인 물에 소금 고춧가루 메줏가루를 넣고 섞는다

무엇보다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정성껏 모신다


볕이 잘 드는 곳에 정성껏  ⓒ마혜경


잘 닦은 항아리를 보며 엄마에게 물었다. 그동안 고추장을 담그지 않는 이유를... "장이 잘 되어야 집에 우환이 안 생기는데, 그것보다 안전하려면 애초에 우환 거리를 만들지 않는 거였어." 그래서 장을 담그지 않았다며, 그러나 이젠 우환이고 뭐고 먹는 귀신 못 말린다고 새로운 단골이 생겨서 손을 뗄 수 없다고 하신다. 말은 그렇게 하셨지만 아마도 오래전 단골손님이 그리우신가 보다. 자주 고추장을 상에 올리시는 걸 보니... 맛을 숙성시키며 보낸 시간이 기다림이 되었고 그리움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고추장은 빨간색으로 식탁을 즐겁게 했지만 우리는 자주 아버지의 빨간 입가가 그리워졌다. 그래서 맵다는 핑계로 자주 눈물을 훔쳤다. 빨간 맛의 알싸함이 입 안에 맴도는 시간, 난 아버지를 닮았는지 고추장만 보면 무조건 손가락으로 찍어 입에 넣고 맛을 음미하는 버릇이 있다. 


지금 테이블 위에 카스텔라 하나가 있다.

자꾸 손이 간지럽다.

그 빨간 맛 때문에 고민에 빠져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