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픽 오늘의 한 구절: 고통의 불균형

by 문혜정 maya




신은 우리가 견딜 수 있을 만큼의
고통만을 준다는 말 만큼이나
삶의 불공평함을 보여주는 말이 없다.
왜 사람들이 가진 인내심의 크기를
제각각 다르게 만들어놓고
쓸데없이 큰 인내심을 가진 사람에게는
큰 고통을 내리는 걸까.
작은 일에도 발끈하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엄살을 부려야
곡절 없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건지,
인생의 세팅이 아주 불공정하다.

<타로카드 읽는 카페, 지친 마음들 중에서>



그런 얘기 들어본 적 있나요?


'신은 우리가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을 준다'


누군가 어려운 일에 처했을 때, 그것을 이겨내기 위한 자기 암시의 문구로 쓰기도 하고, 가끔은 상대를 위로하기 위한 문구로 쓰이기도 하는 말이죠. 지금 나를 둘러싼 수많은 고통과 시련, 좌절들은 나를 삼킬 수 없고, 단지 나를 더 단단하게 단련하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하면서요.

이 이야기를 사춘기 때 들어서 그랬을까요? 전 듣자마자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어요. '아니, 그러면 인내심 제일 강한 놈이 제일 불리한 거 아니야?' 하고요. 인내심을 가져라, 참을성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을만큼 듣게 되는 학창시절에 이 이야기를 들으니 오래 참고, 진득하게 기다리는 것이 오히려 더 큰 고통을 가지고 온다는 뜻으로 들리더라고요.

나는 오늘 다섯시간 공부를 하고도 할만하다 생각해서 불평하지 않고 견뎠는데, 두시간만에 인내심이 다 된 누군가는 칭얼거리면서 한시간 더 한 걸 가지고 착하다, 대견하다 하니까요.



이 정도는 견딜만해,라고 하면서 어려운 일, 힘든 일 마다하지 않는 사람의 어깨에 더 크고 무거운 짐이 지워지는 것을 자주 봅니다. 흔한 건 직장에서 인 것 같아요. 묵묵히 제 할일을 다하는 사람들의 노고를 있는 그대로 보고 평가하는 경우도 많지만, 오히려 시끄럽게 쨍강거리고 한다, 못한다 엄살 피우며 찔끔 해내는 사람들이 더 빨리 승진을 한다거나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기도 하잖아요.

그럼 너도 힘든 티 좀 내고, 어려운 일 한다 광고도 좀 하렴,이라는 충고를 하는 사람도 있지요. 그러니까, 내가 견딜 수 있는 고통의 한계에 다다르지 않았으나, 다다른 척, 더는 안 되는 척 하면서 은근히 속임수를 써보라는 거에요.

그런데 그게 쉽나요? 잘 참고 잘 견디도록 설계된 사람들은 그런 연기도 잘 못합니다. 그런 척 하는 게 어떨 땐 더 어렵게 느껴지기도 해요. '나 힘들어'라고 말하는 게 왠지 두드러기 돋는 것 같기도 하고요. 민망해요. 안 힘든데 힘들다고 하는 것도, 사실은 힘든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들다고 하는 것까지 다.



불공평함은 인생의 최초 설계에서부터 시작됐다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내 기준에 옳지 않지만, 불공정한 거래 같고 억울할 때도 있지만, 그냥 그런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 말고는 결국 답이 없거든요.

이게 다 내가 참을성 많게 태어난 탓이지, 내가 인내심이 많은 걸 뭐 어쩌겠냐, 난 또 왜 이렇게 내면이 단단하게 태어나서 이 고생이람......그렇게 생각하는 거에요.

절대 좋은 것 같지도 않고, 사실 스스로 원하지도 않았던 것이지만 내 일이 아니라 타인의 일이라 생각하면 '참을성 많고 인내심 많으면 좋지 뭐. 성숙한 사람이네'라고 높게 평가했을 덕목이잖아요. 그러니 또 한번의 고난이 닥쳤을 때는 대충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내가 잘 참는다고 이 놈의 인생이 또 이러네.

그렇게 넘기다 보면 시간은 또 지나가고, 위기도 또 한번 지나갑니다.

왜냐면, 신은 결국 내가 견딜 수 있을만큼의 시련만 주니까요.




이 챕터에 나온 카드는 완드 9(Nine of Wands)입니다. 신경 과민 상태로 호된 시련과 좌절을 겪고 지친 상태를 상징하고 있다고 해요.





원작에 썼던 카드는 아홉개의 막대기(Nine of Batons)카드에요. 올드 잉글리쉬 타로에서 막대기(Batons)는 주로 일, 업무, 직업과 관련된 상징을 담당하고 있어요. 그게 아주 많이 쌓여있는데 아무도 도와주는 이 없고, 운도 따라주지 않아 답답하고 불안한 마음을 상징합니다.



누구나 운이 멈추고, 상황이 잘 풀리지 않는 시간들을 겪어요. 이 세상의 모든 흐름은 높았다 낮았다, 깊었다, 얕았다를 반복하는 것 같아요. 시간도 그렇고, 삶도 그렇고, 운도 그렇죠.

하지만 흐름은 말 그대로 흘러갑니다. 지금의 이 모든 상황이 절대 멈춰 있지 않아요. 어떤 형태로든 흘러서 지나가요.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도 있지만 그것 역시 흘러가버릴 것이죠.

그리고 결국은 다시 돌아옵니다. 나의 시간과 운, 인연, 기회 모두 다요. 저는 겨우 불혹을 조금 넘긴 나이지만 이제는 알겠어요. 흐름 속에 몸을 맡기고 흘러가다 보면 언젠가는 또 괜찮은 때가 온다는 것을요.

그때까지 모두 안전하게, 다시 나의 때가 올 때를 기다리며 잘 흘러가 보자고요.




이번편에서 또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게 되었어요.

타로카드 읽는 카페의 영국과 헝가리 출간이 결정되었습니다. 벌써 7개국의 해외 출간 오퍼가 들어왔어요.

아무도 모르게 흘러가버릴 줄 알았던 소설이 알 수 없는 기회와 행운을 만나 다시 세상에 알려질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실제로 번역된 책이 나오려면 꽤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하지만 그 긴 기다림도 기쁘게 기다리려고요.

행복한 한 주 보내시길 바라요.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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