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사랑이 뭘까?
나는 할수록 모르겠던데.
(중략)
이건가 하면 이게 아니고,
저건가 하면 저게 아니었으니까.
똑같은 방법을 써도,
다른 방식을 써도
늘 결론적으로는 틀렸더라고.
그런데 어떻게 알겠어,
틀렸다고 생각한 그게 사실은 맞았는지.
아닌 줄 알았는데 알고 보면
그게 사랑이었을 수도 있잖아.
<타로카드 읽는 카페, 사랑의 대화 중에서>
소설 '타로카드 읽는 카페' 속 등장 인물의 대사는 보통 그 인물이 가지고 있는 배경, 성격, 상황에 따라 정해집니다. 꼭 '타로카드 읽는 카페' 뿐 아니라 어느 소설, 드라마,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 역시 마찬가지일 거에요. 그들의 입을 통해 나오는 모든 말들은 그 인물의 설정을 넘어설 수 없죠. 그렇게 된다면 그건 일종의 '캐릭터 붕괴'일테고, 소설이 아니라 작가의 에세이가 될테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소설 속 이야기가 또 작가가 아닌 인물들의 이야기라고도 할 수는 없어요. 결국 주제와 이야기의 방향은 작가가 설정한 것이고 인물들은 큰 틀 안에서 그 방향을 따라 가며 자율성을 갖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방향을 따라 이야기가 진행 되다보면 어쩔 수 없이, 필연적으로 작가의 입과 작중 인물들의 입이, 그들의 생각이나 경험이, 작가의 생각이나 경험과 일치하게 되는 순간이 옵니다. 모든 것이 허구지만 그 허구 속 세상이 작가가 살아온 어느 순간과 맡닿을 때, 그때는 종종 작가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등장인물의 인생 속에 섞이기도 하는 것 같아요.
오늘의 구절을 쓸 때 저는 카페 사장 언니가 되어 세련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크리스마스 즈음이 된 겨울 밤, 호텔 스카이 라운지 바에 주인공들을 모두 불러 모아 사랑에 대한 이런 저런 잡담을 나눈거죠.
친한 여자 셋이 모여 누군가의 썸 타는 이야기를 들으며 이런 저런 훈수도 두고, 경고도 하고, 함께 설레어도 하는 장면. 여자들이라면 한번쯤 해본 파자마 파티 속 광경 아닌가요? 가벼우면서도 진지하고, 한참 정신 없이 웃다가도 누군가 훌쩍 거리며 힘들었던 일을 털어놓고, 그러다가 또 누군가의 연애 이야기가 시작되면 텐션이 올라가고, 그렇게 밤이 새도록 이야기하고 부스스한 얼굴로 헤어지는 그런 파티, 익숙하시죠?
보통 그런 파티는 밤을 지샐 정도로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눠도 대부분의 이야기가 그냥 저냥 웃고 떠드는, 의미없는 순간들일 때가 대부분이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 졸려서 뿌얘진 머리속에 한 두마디쯤 박히는 말들도 있어요. 무슨 얘기를 나누게 될지 몰랐고, 그래서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 순간의 나에게 필요했던 말들.
소설 속 그 밤, 그녀들의 모임에서 카페 사장 언니의 캐릭터가 할만할 말이 저의 개인적인 무언가와 닿아서 그녀의 입을 빌어 세련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게되었던 것 같습니다.
사랑이 뭘까,라는 질문은 어느 순간부터 자주 떠올리지 않는 주제 중 하나에요. 어릴 때, 언제인가는 사랑이 너무나 중요했던 시절도 있었죠. 모든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거의 모든 것을 차지하는 것처럼 치열하게 몰두했던 때.
시작할 때도 치열했지만 끝날 때는 치열을 넘어 처절하기까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늘 마지막 순간에는 그런 의문이 남았죠.
'왜 아니었을까?'
나는 또 이렇게 열심히 참여했고, 그들 역시 마찬 가지 였으며 처음의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 두번째는 더 많은 노력과 너 많은 주의를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왜 나는 또 다시 실패를 맞이할 수 밖에 없었을까. 이번에도 실패라면 다음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 아니, 내가 정답을 찾을 수 있기는 할까?
그것이 애정 없이 그저 몰두했던 게임의 튜토리얼이었다면 실패로 끝나더라도 '다음에는 더 잘 해보자'고 전의를 불태울 수 있었겠지만 사랑은 그렇지 않잖아요. '다음'에는 더 잘해보고 싶다는 마음 보다는 수많은 상처와 흉터가 생기더라도 '이번'이 마지막이길, 지금 이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길 바라게 되지 않나요?
죽을 만큼 괴롭고, 그로 인해 얼마만큼 다치더라도 상관 없으니, 내가 지금 사랑하는 이 사람이 내 사랑이 맞기를 바라면서요.
그러나 틀린 순간을 영원히 지속할 수는 없어요. 아무리 흐린 눈을 하고 붙잡고 있으려고 해도 내 인생을 지켜보는 무언가가 그것은 '틀렸다'고 판단하는 순간 손에 쥔 모래처럼 스르르 흘러나가 버립니다.
사랑이 무엇인지, 내가 하는 게 사랑이 정말 맞는지 의문을 갖고 증명해 보려 하는 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이 끝나는 순간부터인 것 같아요. 충만한 순간에는 아무런 질문도, 의심도 생기질 않아요. 그저 평온하게 함께 흘러갈 뿐.
제가 사랑이 무엇인지, 영원한 사랑이라는 게 정말 존재하긴 하는 건지 회의적으로 바라보지 않게 된 것은 결혼 이후인 것 같아요.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저 편안합니다.
치열한 고민과 고뇌 끝에 사랑을 어떻게 하고 지속할 수 있을지 깨달았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흔히 말하듯 결혼으로 안정적인 관계를 맺게 되었기 때문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그저 그런 열정이 버거운 나이가 되었기 때문일까요?
답은 아직 정하지 못했지만, 그런 생각은 종종 합니다. 결국은 내가 가장 편안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어있다고요. 그때 그 사랑과 그 인연들이 당장은 몰라도 나에게 영원한 평안을 줄 수는 없었던 것이고 언제가 되었든지간에 결국은 끝이났겠구나. 그때의 나는 원치 않았어도 말이죠.
나는 나를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아는 나는 현재 지각할 수 있는 수준의 나일 뿐이고 내 안에 들어 있는 나는 그것보다 훨씬 큰, 과거와 현재, 아직은 오지 않은 미래까지 모두 다 담은, 내가 지각하지 못하는 무의식의 나까지 포함하는 것이기에 그 모든 것들이 겉으로 드러난 나를 어디론가 이끌고 있었던 건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다행이 수많은 '나'들의 노력으로 저는 그때의 이야기들을 아픔 없이 나눌 수 있고, 사랑에 대한 글을 쓸 수도 있게 된 거겠죠.
이 구절이 있던 챕터에 실린 카드는 절제의 카드입니다.
원작의 올드 잉글리쉬 카드 모두 같은 '절제'의 카드를 사용했어요.
이 글을 보고 있을지 모를, 여전히 사랑이 어렵고 사랑에 데인, 그런 게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괴로운 누군가가 있으시다면, 내가 편안한 사람들에게 괴로움을 마음껏 표현하고 그들의 조언도 들어보라고 하고 싶네요.
그들의 조언이 다 맞아서도 아니고 내가 하고 있는 사랑이 모두 다 틀려서도는 아닙니다.
누군가의 사랑은 그 사람에겐 맞을 수 있지만 나에겐 아닐 수 있고, 나에게 틀린 사랑이 또 다른 누군가에겐 맞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엄청나게 다양한 사랑의 형태와 양상을 조금 멀리 떨어져서 듣고, 바라보다 보면 어느 순간 나를 가두고 있던 괴로움은 멀어지고, 내 곁의 사랑이 객관적으로 보이게 되는 순간이 올거에요.
그런 순간이 오면 내 안의 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모두 살고 있으며 모든 순간의 나와 함께 하고 있는 모든 나에게 판단을 맡겨 보자구요. 그들은 한번씩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나에게 딱 맞는 곳으로 나를 데려갈 겁니다. 타인의 이야기에서 시작하지만,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나를 통해 정답을 발견하게 될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