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자연, 자연의 인간
꽃으로 쓰는 독후감, 꽃후감은 책을 읽고 떠오른 심상, 느낌, 주제, 캐릭터 등을 꽃으로 표현합니다. 글로 쓰는 독후감은 브런치에, 영상으로 쓰는 꽃후감은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 됩니다.
꽃후감 세번째 작품은 카렐 차페크의 '정원가의 열두 달'입니다. 체코의 극작가이자 '로봇'이라는 단어의 창시자인 카렐 차페크를 설명하는 또 다른 단어는 '정원가'입니다. 정원사도, 원예가도 아닌 정원가라는 제목의 모호한 단어가 이 책을 선택하게 만든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저의 책 '꽃이 필요한 모든 순간'의 원래 제목은 '일년 열두 달 흔들리는 꽃'이었습니다. 저는 '이것이야말로 딱 이 책의 내용을 설명하는 제목이다!'라고 꽤 마음에 들어했는데, 저 빼고 진행된 출판사의 제목회의에서는 최종 후보에도 오르지 못한 비운의 제목이죠.
일년은 통으로 하나가 아니고, 네개의 계절도 아니고, 서로 비슷하고도 다른, 따로 떨어진 듯 연결된 열두개의 달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이 저에게는 큰 의미가 있었는데 명확하게 와 닿지 않으셨나 봅니다.
정원가의 열두달은 정원을 가꾸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정원사가 아닌, 정원을 사랑하는 사람의 눈으로 본 일년, 열두달의 정원 일기 같은 책입니다. 읽는 내내 '와! 이게 이야기꾼이지!'라는 생각을 했어요.
뭔가 삐딱하고 까칠하지만 술술 읽히는 유머러스하고 유려한 이야기꾼이었거든요. 저도 이런 이야기꾼이 되고 싶습니다.
제목은 매우 평범하다. 낯설지 않고 어렵지 않고, 길지도 않다. 하지만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다시 읽어보면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원사'가 아니라 '정원가'라니.
영어로 가드너는 보통 '정원사'라고 번역된다. 그들은 주로 큰 정원을 가꾸는 일을 하며 그것이 직업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정원을 가꾸는 사람이 꼭 그것을 업으로 삼고 있을리는 없다. 특히나 직업 정원사가 가꾸는 정원은 자신의 소유가 아닌 경우가 더 많다. 그럼 집앞에 딸린 작은 정원을 애지중지 가꾸는 사람은 무엇이라고 불러야 한단 말인가.
체코어로 이 책의 원제는 어떠한가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체코인들은 정원사와 정원가를 구분할까?
뜬금없는 궁금증에 네이버 어학사전을 뒤져보니 'zahradník'는 '정원사', '원예가'등의 뜻을 가지고 있었다. 아니, 원예가는 원예'가'인데 왜 정원사는 정원'사'일까?
이 책을 처음 펴내기로 한 출판사나 번역가는 아마도 이 제목에서부터 엄청난 고민을 했을 것 같다. '사'를 '가'로 바꾸는 티도 안날 것 같은 일이지만 '정원사의 열 두달'이 아닌 '정원가의 열 두달'이 됨으로서 이 책은 보통의 인간들(정원을 가지고 있든 언젠가 가질 꿈을 꾸고 있든, 그냥 옆에서 구경만 하고 싶든, 그 누구든)에게 '아! 이 책은 내가 읽어도 되는 책이군!'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고 본다.
책 표지에 쓰여있는 '가드닝 분야의 빛나는 명저'라는 말이 다소 헷갈리게 하지만 이 책은 가드닝에 대한 실용서와는 거리가 멀다. 조금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가드닝 덕후인 유명작가가 쓴 일년간의 정원 삽질 일기'쯤 될까?
이 책만 보고서는 정원을 완벽히 가꿀 수 없다. 그건 확실하다. 다만 완벽한 정원을 꿈꾸게 될 것이다.
날씨라는 건 희한하다. 딱 맞은 적이 없다.
항상 평균을 웃돌거나 못 미쳐 우리의 예상을 빗나간다.
기온은 늘 지난 백 년간의 평균에 비해 5도 높거나 낮고,
강우량은 평균보다 5밀리미터 적거나 20밀리미터쯤 많다.
너무 가물거나 너무 넘칠 뿐 도무지 중간이 없다.
정원가의 열두 달(펜연필독약), 35p
카렐 차페크에게는 작은 정원이 있었고 그는 그 정원을 가꾸는 일에 꽤 미쳐있었다. 이 책을 보면 눈치가 1도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것만은 알 수 있다.
그는 이 책에서 내내 자신의 정원을 자랑하고, 종종 날씨를 원망하고, 한번씩 신을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이 세상 사람들에게 정원을 가꾸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를 전파하고 싶어했다. 자연을 조금이라도 마음에 품어본 사람이라면 그 마음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나는 플로리스트로 일하고 있다. 직업이 꽃을 만지는 사람이다. 하지만 내가 만지는 꽃의 대부분은 누군가 키운 것들이다. 나는 그들이 피와 땀으로 키운 꽃을 사와서 소비자들이 원하는 형태로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일을 한다. 꽃에 대해 꽤 안다고 자부하면서도 내가 아는 꽃의 모습은 완결형 뿐이다.
2월은 일 년 중 가장 짧은 달.
열두 달 가운데 가장 덜떨어진 애송이 달이다.
하지만 꼴에 변덕스럽기 그지 없을 뿐 아니라
교활하기로는 열두 달 가운데 단연 최고다.
그러니 조심 또 조심해야한다.
낮에는 꽃망울을 덤불 밖으로 살살 꼬여내어선 밤이 되면 얼려 죽이고,
당신을 한껏 유혹하는 듯하지만 속으로는 얼간이 취급을 하는 게 바로 2월이다.
신께서는 윤년이 오면 왜 많고 많은 달 중
하필 제일 까탈스럽고 지긋지긋한 이 녀석에게 하루를 더 하사하시는 걸까.
차라리 5월을 32일로 늘린다면 아름다움을 하루라도 더 누릴 수 있을 텐데!
정원가의 열두 달(펜연필독약), 48p
올 초 꽃시장의 꽃값이 '미쳤다'라고 표현하기도 부족할만큼 초급등한 적이 있었다. 꽃값은 주로 날이 궂을 때(아주 덥고, 아주 춥고, 비가 아주 많이 오고 뭐 그럴 때) 조금 오르고, 모두가 꽃을 사려고 할 때(어버이날, 졸업식, 입학식 등) 아주 많이 오른다. 그렇게 오른 꽃값이 농부들에게 돌아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꽃시장에서 '이게 무슨일이야?'라고 투덜거리며 뱅뱅돌며 혀를 찰 뿐이다.
예를들면 어버이날의 꽃시장에는 온통 카네이션 뿐이라 꽃시장을 구경하는 재미도 없다. 그때는 전국에서 몰려 온 플로리스트들이 새벽같이 꽃을 다 쓸어가 남은 꽃도 별로 없기 때문에 머릿속에서 그나마 남은 꽃들을 가지고 뭘 어떻게 만들어야 하나 고민에 빠진다.
그래서 나는 몇년 전부터 내 꽃밭이 갖고 싶다는 열망에 빠졌다. 누군가 키우고, 누군가 진열해 놓은 꽃만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키우고, 나만 가지고 있는 꽃을 가지고 뭔가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농사, 특히 꽃농사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음에도, 책 한권을 후루룩 읽고(컷플라워 가든이라는 책이었다) 집근처 주말농장의 땅 한 구좌를 빌려 씨도 뿌리고, 모종도 옮겨 심었다.
씨앗부터 시작할 때는 원하는 씨앗을 구하는 것부터가 난관이었고, 싹이 나지 않는 것, 싹은 났지만 원인불명으로 죽는 것, 빛을 충분히 보여줬다고 생각했지만 키만 콩나물같이 웃자라서 나중에 노지에 옮겨싶었을 때는 휙 불어온 부드러운 봄바람 한방에 바로 꺽여버린 것들까지, 다양한 이유로 꽃의 단계까지 가지 못했다.
모종으로 구해온 것들은 키는 작은데 이미 꽃망울이 달려있어서(판매할 때는 꽃몽울이 없는 것이라면 사지 않을테니까) 내가 원하는 길이까지 키우기 전에 이미 꽃이 다 피어버렸다.
흔히 사람들이 생화라고 부른 절화(화분이 아니라 줄기를 잘라서 파는 꽃다발을 만들 때 쓰는 그런 꽃들을 절화라고 한다)는 최대한 줄기가 곧고 길어야 상품으로서 기능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사온 꽃들은 다들 너무 자잘자잘해서 꽃다발은 커녕 꽃꽂이용으로도 쓰기 힘들었다.
기도가 효험이 있다면,
정원가들은 매일 무릎을 꿇고 이렇게 기도할 것이다.
“하느님, 매일 규칙적으로 비를 내려주소서.
자정에서 새벽 세시 사이가 딱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왕이면 차가운 장대비가 아니라 땅속까지 조용히 스미는 가랑비로 내려주소서.
…(중략)
벌레는 딱 적당하게만 부탁드립니다.
특히 진디나 달팽이, 흰곰팡이 따위는 절대 발붙이지 못하게 굽어 살펴 주소서.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주셨듯,
일주일에 한 번 거름을 단비처럼 내려주시길 빕니다.
아멘.
정원가의 열두 달(펜연필독약), 113p
채소밭 정원가들의 즐거움을 깰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채소를 재배하면 자신이 기른 것들을
입안에 마구 욱여 넣어야 하는 순간이 온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만일 내가 기른 장미를 먹어야 한다거나 은방울꽃을 우물거려야 한다면,
나는 지금만큼 그들을 존중하며 대하지 못할 것 같다.
정원가의 열두 달(펜연필독약), 116p
하지만 나는 매일같이 주말농장에 나가 물을 주고, 우리 남편도 주고, 내가 못가면 우리 아빠까지 보내 물을 줬다. 옆 밭의 사람들이 상추, 깻잎, 방울토마토 같은것들을 심고 매주 상추를 산더미같이 따갈때도 우리 밭은 듬성 듬성 했다.
3월에는 얼어죽을 것 같아서 최대한 기다렸다가 4월 중순이 넘어 옮겨심은 스위트피는 난대없는 꽃샘추위에 한방에 갔고, 갈때마다 10cm씩 자라는 것 같은 잡초에 비하면 모종으로 구해 심은 스토크는 꽃시장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앉은뱅이만했다. 쭈구리고 앉아서 뒷걸음을 치며 원수같은 쇠비름을 캐내다가 싹이 난지도 몰랐던 플록스를 장화로 무자비하게 밟아버린 기억도 생생하다.
그리고 나는 '정원가의 열두 달'에서 내가 쓰지 않은 나의 정원 분투기를 그대로 보았다. 내가 이 책을 펼치고 가장 먼저 웃음을 빵 터뜨린 구절은 이것이었다.
' "온실의 온도를 점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과다." 그래, 나도 정말 그러고 싶지만 온실이 없단 말이다. 가드닝 책이란 이처럼 거의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
내 말이. 유명한 가드닝책을 보아도 나에게 주어진 것과는 너무 차이가 나서 알겠는데, 모르겠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토질을 좋게 만들어주는 수백 수천가지 것들을 알고 있지만, 천만다행히도 그중 정원가가 당장 구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역시나 동감!
'바라는 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면 정원가는 아직도 땅이 꽁꽁 얼어 있다고 욕설을 퍼붓는다. 또 정원이 눈으로 뒤덯인 동안에는 철창 속에 갇힌 사자처럼 사납게 집안을 휘젓도 다닌다.'
나는 3월 중순쯤 주말농장의 밭을 갈러 첫걸음을 했었는데 그때 땅 주인 할아버지가 꽤 한심한 눈으로 '4월도 일러.'라고 말하며 휙 지나가버렸던 적이있다. 결론적으로는 그의 말이 맞았지만 3월의 불안정한 날 중에서도 '웬일로 봄날?'이라고 이름 붙일만한 날이 되면 궁뎅이가 들썩여서 어쩔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씨앗을 파종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서도 무릎을 치며 동감했다. 가드닝 책에서는 모종을 구하기 어려운 것은 씨앗을 구하는 것이 좋고 더 싸다고 하지만 씨앗을 구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고, 심어놓은 씨앗 중 싹이 트는 건 일부 뿐이다. 너무 화가나서 씨앗 봉투 속 모든 씨앗을 촘촘히 심으면 모든 씨앗에서 싹이튼다. 나는 10개 정도만 필요했는데 싹이 150개 정도 나면 옮겨심을 곳도 없고, 그 중에 잘난 것만 골라서 50개쯤만 옮겨 심으면 살아남는 건 2개 정도.....?
카렐 차페크 역시 비슷한 과정을 거치는 내용이 나온다. 식물집사들이 다들 이런가 싶었다.
모든 가드닝 책에선 "모종은 직접 씨앗을 뿌려 키우는 게 가장좋다"고 알려준다. 하지만 씨앗과 관련한 특별한 자연의 법칙까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씨를 뿌리는 경우 모두 쭉정이거나 아니면
모두 닥치는 대로 싹이 트거나 한다는 사실 말이다.
...(중략)....
어느덧 모종을 땅에 옮겨 심을 때가 되었다.
그런데 160포기나 되는 엉겅퀴들을 어떻게 감당하지?
빈자리마다 꾸역꾸역 채워 심었지만 그래도 130포기나 남았다.
뭐라고요? 이렇게 애지중지 길렀는데 어떻게 내버리란 말씀입니까?
정원가의 열두 달(펜연필독약), 98p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주기적으로 한 일은 소리나게 키킥거리는 것이었다. 푸풋 또는 키킥.
작가의 정원은 나의 정원이었고, 작가의 열두 달은 내가 겪은 열두 달이었다. 나는 봄이 와서 모종판에 씨앗을 심을 때마다 생각한다(몇년 되지는 않았다).
'내가 이걸 몇번이나 할 수 있을까? 내가 겪을 봄은 몇번이나 남았을까?'
나의 노화가 최대한 느리게 찾아온다 해도 100번이 되지 않는다. 아니 40번도 많다. 나는 올해로 마흔 한살이되었으니까.
내가 꽃을 심고, 흙바닥에 퍼질러 앉아 잡초를 뽑으며 뒷목으로는 햇빛을 따갑게 느끼는 순간이 겨우 40번이라고 생각하면 모든 봄이 소중하고, 모든 봄이 초조하다. 그리고 내가 빨리 숙달된 꽃농부가 되지 못하는 것이 속상하다. 매년 실패하는 나를 보며 엄마가 혀를 차며 '또 심게?'라고 말할 때도 나는 나에게 남은 봄의 숫자를 생각하면 너무 너무 아쉽다. 나는 연습을 하고, 또 해도 죽기 전까지 내가 키워보고 싶은 꽃들을 모두 키울 수 있을지, 꽃시장에 나오는 멀쩡한 상태의 꽃을 기를 수 있을지 몰라 새로운 씨앗을 사고, 모은다.
정원을 가진 사람은 사유재산 소유 계급이 될 수밖에 없다.
정원에 장미가 핀다면 그건 그냥 장미가 아니라 ‘그의’장미가 된다.
또 ‘벚나무에 벌써 꽃이 피었네’가 아니라
‘나의 벚나무에 벌써 꽃이 피었네’라고 생각하고 또 말하게 된다.
정원가의 열두 달(펜연필독약), 86p
나는 꽃도 팔고, 화분도 파니까 그런 얘기를 자주 듣는다.
"꽃은 비싼데 금방 시들어서 돈이 아까워요."
"저는 식물을 키우면 항상 죽여요. 차라리 안키우는 게 나은 것 같아요."
꽃은 식물 생애의 정점에서 만들어 내는 최고의 결과물이다. 평균적으로 대부분의 꽃은 10일 안팎으로 시든다. 뿌리가 있든, 없든 상관 없이말이다. 꽃은 시들어야한다. 그래야 씨앗을 만들 수 있고, 다음 생을 기약할 수 있다. 꽃이 비싼 이유는 키워보면 알 수 있다. 당신이 직접 장미 한 송이를 키워본다면 내가 만원을 주며 그것을 팔라고 할 때 절대로 팔지 못한다. 아마 십만원을 줘도 안판다고 할 것이다. 꽃을 키운다는 건 그런 것이다. 어렵고, 까다롭다. 태생적으로 비쌀 수 밖에 없다.
늘 말하지만 시든다는 것은 꽃의 본질이다. 그들이 의미가 있는 이유는 시들기 때문이다. 시들지 않는 꽃은 진짜 꽃이 아니라 조화일뿐이다. 조화는 예쁘게 색칠한 플라스틱일 뿐.
또 사온 식물이 툭하면 죽는 것은 당신이 똥손이어서가 아니다. 그저 그 식물에 대한 관심이 다른 사람보다 적었다는 뜻이다. 물을 주어야할 정확한 때를 알지 못하는 것, 그것을 찾아볼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 그 식물이 자라는데 햇빛이 얼마나 필요하고, 환기는 얼마나 자주 해줘야하는지, 더운 곳을 좋아하는지, 서늘한 곳을 좋아하는지, 뭐 그런 문제다. 단순히 운이 나빠서 죽는 게 아니라.
하지만 그런 과정을 겪는 게 늘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책을 읽고 인터넷을 찾아보는 공부를 통해 무언가를 배우지만, 누군가는 직접 경험을 하고 배운다. 애를 쓰는 중에도 그 식물이 죽어버렸다면, 하지만 그 이유를 그것이 죽고 난 뒤 알았다면, 그 식물은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어느 정도는 가졌다고 본다. 그냥 단순히 '나는 똥손'이라는 결론에 도다른 식물집사를 만난 애들에 비하면 말이다.
1월과 2월은 당장 무언가를 심고싶은 마음이 가득차 발을 동동 구르지만 언 땅은 녹지 않고, 주말농장의 분양도 시작하지 않는다. 3월은 봄이라 부르지만 눈도 오고, 서리도 여전하다. 4월도 중순은 넘어야 그나마 추위에 강한 아이들을 심을 수 있고, 5월이 제일 좋은 달인데 뭔가를 심고 키우기에는 너무 짧다.
6월에는 더위가 시작되지만 아직은 견딜 수 있고, 7, 8월에는 이른 아침이나 해가 떨어지기 직전이 아니면 물을 줄 수도 없다. 해가 쨍쨍할 때 물을주면 오히려 다 타서 죽는다. 그리고 나도 함께 타 죽을 것 같고.
9월이 되면 더위는 조금 참을만해지는데 이미 7~8월을 겪는동안 애지중지하던 꽃들은 거의 죽고, 분명 박살 내버렸다 생각한 잡초들은 내 키만하게 큰다. 내 밭과 다른 사람의 밭 사이의 길은 잡초들이 가로막아 보이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 안에 바글바글한 모기는 팔토시를 해도 뚫고 들어온다. 10월이 되면 그나마 조금 남아있던 꽃들이 약간의 위로가 되고, 11월 말쯤 씨앗을 채종하며 내년을 기악해야 한다. 이게 꽃밭을 가꾸던 나의 일년이었다.
이 책을 1월에 만난 것이 너무나 다행이었다. 2월의 초입에 모두 다 읽은 것도 행운었다. 책을 읽으며 왠지 초조하고 마음이 바빠졌던 나는 책장을 닫자마자 작년에 쓰고 조금 남은 압축상토를 물에 불리고, 역시나 작년에 심고 남은 스카비오사 씨앗을 모두 다 심어주었다.
그리고 스튜디오 한쪽에 조금 남은 공간에 설치할 조립식 나무 화단을 주문하고, 방수페인트를 앞뒤로 세번씩 발라 말려 벽한쪽에 세워두었다. 3월이 오면 남편에게 부탁해 조립식 화단을 함께 설치하고(작년에 설치한 화단도 그와 함께 만들었다), 40L짜리 흙포대를 4~-5개쯤 붓고, 싹이 튼 스카비오사를 옮겨 심을 것이다. 그때까지 날이 풀리지 않는다면 낡은 미니 비닐 하우스도 덮어주려고 창고에서 꺼내왔다.
이 책은 정원을 가꿔본 사람, 식물을 키우며 전전긍긍해 본 사람, 매년 봄마다 무언가를 심고 실패하기를 반복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깔깔거리며 웃을 포인트가 한 곳 이상되는 책이다.
만약 단 한번도 그런 경험이 없다면?
책을 내려 놓으며 인터넷에서 씨앗을 주문하거나, 집근처 꽃집에서 화분을 들여오고 싶어질 것이다. 그리고 나서 다시 이 책을 본다면 그때는 깔깔 웃을 수 있을 거고.
나는 카렐에게 그가 꿈꾸던 정원을 아주 작은 형태로 만들어 선물하고 싶었다. 구근식물쟁이도, 선인장쟁이도 덩굴식물쟁이, 암석정원매니아, 그 어떤 정원가든 만족할 수 있는 모두가 행복한 정원을 표현하고자 했다.
이건 카렐 차페크에게 헌정하는 마야의 정원이다. 그가 꿈꿨던 모든 것을 담고자했다. 작은 암석정원과, 열매들,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여러 계절을 아우르는 꽃들이 계절에 상관없이 한대 피어 있는 모습이다. 다만 수선화와 개나리, 코와니와 마가렛 등으로 봄에 조금 더 힘을 줘 보았다.
그리고 그냥 덧붙이는 말.
알려고 해서 안 건 아닌데, 카렐 차페크의 '정원가의 열두 달'이 저작권이 소멸된 컨텐츠라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그래서 '정원가의 열두 달' 이후 같은 작가의 같은 책이 다른 출판사에서 약간 다른 제목으로 출간되었다는 것도.
'정원가의 열두 달' 이후 출간된 다른 출판사의 다른 제목은 '정원 가꾸는 사람의 열두 달'이라고 한다. 신문기사로도 나왔던 이야기라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들었을 수도 있다.
음....
나는 출판사의 생리나 저작권에 대한 건 잘 모른다. 처음 이 책을 들여온 출판사에서는 꽤 짜증나는 일이었겠다 정도 밖에는.
저작권이 없으므로 또 다른 출판사에서 또 약간 다른 제목으로 같은 책이 또 나올 수도 있다. 심지어는 나도 할 수 있다. 번역을 새로 해야하기는 하지만.
다만, '정원가'와 '정원 가꾸는 사람'이 완전히 다른 것이라는 건 알겠다. 앞뒤 상황은 잘 몰라도 카렐은 분명 '정원가'였을 것이다. '정원 가꾸는 사람'이라고 하기엔 뭔가가 잘 맞지 않는다. 그는 그러 저러한 사람이 아니라 그냥 정원가였다.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표현할 가장 적합한 단어를 찾아낸 출판사에게 심심한 위로를 건내고 싶다.
(체코어사전에는 정원사라고 되어 있는 'zahradník'가 굳이 '정원 가꾸는 사람'이 된대에는 카렐이 '정원사'가 아니라는 것에 대한 자각과 동의가 있었겠고, '정원 가꾸는 사람'이 된데에는 '정원가'를 쓸 수 없었던 사정이 있었겠지라고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