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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a Lee Jan 15. 2020

아일랜드, 다 끝나지 않은 이야기

2부를 엮어낼 새로운 시작을 준비합니다

긴 잠에서 깨어 보니 내 몸뚱어리는 브레이의 내 방 침대 위에 놓여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다시 아일랜드로 돌아와 있었던 것이다. 겨우 3주 떠나 있었을 뿐인데,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듯한 느낌이었다.

‘아마 감기약 때문일 거야. 몸이 좀 나아지면 기분도 일상도 다 정상으로 돌아갈 거야.’

무언가 설명하기 힘든, 오묘하게 침울하고 허전한 기분을 괜히 감기약 탓으로 돌려본다. 화려한 무대의 막이 내린 뒤, 관객이 떠난 빈 객석을 바라보는 배우의 마음이 이런 것일까. 내가 주인공으로 무대 위에 있었던 순간이 까마득히 멀어지고, 마치 나를 향해 박수를 쳐주던 사람들의 기억에서조차 지워진 존재가 되어버린 것 같다. 게다가 수 년 동안 매달려 있던 있던 일이 끝나 속이 시원할 줄만 알았는데 , ‘출간’으로는 해결하지 못할 밥벌이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고, 이제 두번째 책쓰기를 시작해야 한다는 부담까지 더해져 모든 게 막막하기만 하다.


고국을 찾는 일은 매번 특별하지만 이번 한국행이 더욱 특별했던 이유는 내 첫책의 출간 시기와 맞물렸기 때문이다. 존이 “이제까지 한국에서 보낸 시간 중 최고의 시간이었다”고 여러 번 말했을 만큼, 우리가 함께 애써 준비한 출간 기념 북 콘서트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성황리에 잘 끝났고, 다행히 책에 대한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더욱이, 시기상 크리스마스와 연말 연시를 끼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도 덩달아 들뜬 분위기를 타고 정신 없이 행사를 치러낸 것 같다.

그렇게 감사한 마음으로 한해를 마무리하고 가족들과 오붓하게 새해를 맞은 후, 존은 일터로 복귀하기 위해 1월 첫째 토요일 먼저 아일랜드행 비행기를 탔다. 그리고 나는 출국 전 남은 일주일 동안 바쁘게 친구들을 만나고 병원에 가서 아일랜드에 가져갈 비상약을 타고,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다듬고 염색을 했다. 그런데 너무 욕심을 부렸나 보다. 출국 이틀 전 몸이 무리했다는 신호를 보내오기 시작했다. 아일랜드의 비싼 병원비를 생각해 감기약이나 타갈까 하고 들른 병원에서 뜻밖에 에이형 독감 판정을 받고 이틀 동안 끙끙 앓다가 겨우 비행기를 탔다.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더블린까지 오는 긴 비행이 전에 없이 힘들고 외로웠다. 더블린 공항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또 그만큼 고마운 적도 없었다. 새벽 2시쯤 브레이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존은 곤히 잠이 들었고, 나는 그의 옆에 누워 뜬 눈으로 한국의 아침을 앓았다. 아침 8시쯤 존이 출근한 후에야 감기약을 먹고 잠이 들었는데, 눈을 떠 보니 저녁 6시가 지나 있었다. 하늘은 벌써 캄캄했고, 열을 내리느나 쏟아낸 땀으로 등허리가 축축했다.

꿈 속에서 여러 번 커다란 짐을 싸고 풀었던 것이 생각났다. 아무리 여행을 많이 다니고 한국을 오가도 짐을 싸고 푸는 것만큼은 늘 어렵고 스트레스가 많은 일인데, 아마도 그동안 견디던 압박감 때문에 그런 꿈을 꾸었나 보다.


창밖으로 많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태풍 브랜단이 지나가고 있다고 했다. 익숙한 아일랜드의 겨울 풍경이었지만, 마음까지 태연해질 만큼 익숙해지지 않으니 나에게는 늘 견디고 싸워야 하는 외로움이다. 하지만 아일랜드의 날씨에 대한 이야기는 벌써 책 한권 속에 넘치게 담아냈으니, 이제 그만할 때도 되었지.

앞으로는 브런치에 이제까지 내가 써온 글들과 조금 다른 아일랜드의 이야기들을 써보려고 한다. 아일랜드를 여행하면서 발견한 아름다운 장소, 흥미로운 사건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 하겠지만, 그밖에는 아일랜드의 동시대 연극과 영화를 통해 발견한 흥미로운 사실들을 바탕으로 개인적 성찰을 더한 ‘문화적 시선의 아일랜드’를 좀 더 깊이 있게 다뤄보고 싶다. <아일랜드에서 멈추다 2>의 출간을 겨냥한 새로운 시도라 할 수 있겠다. (모쪼록 부족한 작가의 느린 행보에 격려의 채찍질을 아끼지 말아주시길!)

빨리 독감을 털고 일어나 새로운 일상의 모험을 시작할 수 있기를 기도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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