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9일 : 코로나 이후 첫 펍나들이, 첫 외식
Dear diary.
지난 몇 주, 난 코로나로 시작된 락다운 생활 이후 가장 바쁜 시간을 보냈어. 2주는 매일 5시간씩 온라인으로 스페인어 수업을 듣느라, 나머지 한 주는 6월 안에 마감해야 하는 존의 회사 과제를 도와주느라 하루 종일 책상 앞에 붙어 있었던 것 같아. 평생 기타와 요리라는 손 기술로 먹고 살았지, 컴퓨터 쓰는 일을 해본 적이 없는 존이 한 달 안에 파워포인트와 워드로 5개 주제의 수업자료를 만들어야 했거든. 결혼 생활 7년 중 존이 이때 만큼 일 스트레스로 괴로워하는 것은 처음 본 것 같아. 나도 별로 나을 것 없는 컴맹이라 도울 수 있는 것은 간단한 문서작업 정도였지만 양이 만만치 않았어. A4 70페이지 가까이 되는 내용을 타이핑하느라 종일 자판을 두들기며 잔뜩 신경이 날카로워진 남편 옆에서 덩달아 스트레스를 팍팍 받았지. 어쨌든 중요한 사실은 지난 금요일 마감일에 맞춰 지긋지긋 우리를 괴롭히던 프로젝트를 모두 끝냈다는 거야!
덕분에 우리는 오랜만에 아주 홀가분한 마음으로 지난 주말을 보냈어. 토요일에는 어수선한 집안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저녁에는 맛있는 인도커리와 프랑스 와인을 사와서 우리의 그동안 수고를 위로하고 프로젝트를 무사히 마무리한 것을 자축했지. 일요일에는 바람이 정신 없이 불고 비까지 바람 따라 물뿌리개처럼 뿌려대는 이상한 날씨 때문에 평소보다 짧은 산책을 한 후 이니스케리 방향으로 차를 몰았어. 날씨 때문인지 둘 다 즉흥적인 기분이 되어서는 목적지를 두지 않고 무작정 달려보기로 한 거야. 여러 개의 이름이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며 나타날 때마다 우리는 일부러 낯선 이름이 가리키는 길로 들어섰어. 샐리 갭(Sally Gap). 언덕길로 구불구불 올라간 지 얼마나 지났을까, 우리는 온통 초록에 둘러싸여 있었어. 우리는 차를 길 한편에 세우고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을 바라봤지. 장엄한 위클로 산자락에 푸르스름한 구름 그림자가 걸려 있고, 저멀리 발 아래로는 호수가 깊은 파랑으로 빛나고 있었어. 빛과 어둠이 처음으로 나뉘던 창조의 그날처럼, 한쪽 하늘은 검은 먹구름으로 덮혀 있고, 반대편 하늘에서는 눈부신 빛줄기가 산등성이와 초록 들판 위로 쏟아져 내려왔어. 사람과 일에 치여 지낸 지난 2주 동안 딱딱해졌던 마음이 자연의 위로로 서서히 말랑말랑 부드러워지는 것을 느꼈어.
그리고 월요일인 오늘, 아일랜드 전체가 3단계 락다운 완화조치에 들어가면서 사실상 모든 상업시설이 다시 문을 열었어. 마지막 주자였던 대형 쇼핑몰과 펍까지 문을 열고, 그동안 테이크아웃만 허락되었던 카페와 레스토랑은 테이블 간격이 넓어진 실내로 손님을 맞기 시작했지. 존이 자택근무 일정을 마친 오후 4시쯤, 우리는 차를 가지고 브레이 씨프런트로 갔어. 도시가 다시 활기를 찾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었거든.
아직은 서로 분위기를 보며 조심하는 분위기라 카페도 펍에도 빈 자리가 많았지만, 모처럼 테이블에 앉아 커피와 맥주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행복해 보였어. 우리는 예전에 종종 가던 마르텔로 펍으로 갔어. 한국과 달리 마스크가 생활화되어 있지 않은 이곳에서 마스크를 쓰고 주문을 받는 직원들의 모습이 낯설더라. 다이어트 하는 사람들의 치팅데이(cheating day)처럼, 우리는 오늘 하루 그동안 피해오던 '덜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우리에게 허락하기로 했어. 우리는 맥도날드보다 조금 비싼 햄버거와 감자칩, 존을 위한 맥주와 나를 위한 와인을 한 잔씩 시켰어. 곳곳에 붙어 있는 거리두기 사인과 테이블 사이 사이의 플라스틱 가림막들이 어색하고 어쩐지 서글프기까지 했지만 우리는 그렇게라도 그리웠던 코로나 이전의 일상을 다시 찾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서둘러 확인하고 싶었던 거야.
한국을 비롯해 아일랜드보다 먼저 완화조치에 들어간 나라들에서 확진자 수가 다시 늘어나고 있는 것을 보면 결국 아일랜드도 피해갈 수 없는 가까운 미래라는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미리 겁 먹고 집에만 있고 싶지는 않아. 물론 코로나가 다 사라진 것처럼 무감각하거나 될 때로 되라는 식의 무책임도 경계해야 하겠지. 그래서 나는 개인적으로 지켜야 하는 기본수칙을 열심히 시키면서 지금 허락된 자유를 기쁘고 감사하게 누리려고 해.
곧 7월이야. 내가 아일랜드의 열 두 달 중 가장 사랑하는 달. 초록빛으로 가득할 7월의 날들이 너무나 기대 돼. 빛나는 아일랜드의 여름이 나에게 건네는 위로가 코로나와 지난한 싸움을 하고 있는 전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흘러가기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