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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a Lee Jun 21. 2020

스페인어공부는 왜 그렇게 하는데?

6월 18일 : 그곳에 닿고 싶은 마음의 순전한 열망을 따라

Dear diary.


고민 끝에 결국 다음주에 시작하는 스페인어 과정을 등록했어. 딱 일주일이지만 무려 하루에 5시간씩 진행되는 집중코스야. 코로나 때문에 많은 어학 수업이 온라인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덕분에 스페인 알리깐테의 한 어학원에서 진행하는 온라인 수업을 아일랜드 브레이에서 들을 수 있게 된 거야. 솔직히 결정하는 순간까지 할 것이냐 말 것이냐 얼마나 고민을 많이 했는지 몰라. 2주 전 이미 일주일 동안 하루 3시간씩 하는 수업을 해본 뒤라, 하루에 5시간 스페인어 수업이 얼마나 빡셀 지 짐작하고도 남았거든.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수업이라 아무래도 집중도가 떨어지고 기계를 통해 대화를 주고받아야 하니 긴장은 더 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생각하면 온라인 강의에 익숙해져야 하지만 난 아직도 온라인 세계가 영 맘에 안드니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아. 어쨌든 이렇게 등록을 하고 수업비까지 송금하고 나니 온몸에 힘이 쫙 풀리더라.


이쯤 되면 너도 의아해질 거야. 스페인에 사는 것도 아니면서 왜 그렇게 열심히 스페인어 공부를 하는 거야? 사실은 나도 가끔씩 생각해. 꼭 해야 하는 외부조건이 없는데도 순전한 내적 열망으로 수 년째 스페인어를 손에서 놓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처음 시작은 인생 버킷리스트인 남미여행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필요하다는 이유였어. 남미에서는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고, 영어가 얼추 통하더라도 현지언어를 쓸 수 있을 때 확장되는 관계와 경험의 기회, 문화적 배움의 깊이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아일랜드 살이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으니까. 버킷리스트인 만큼 내가 더욱 풍성하게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고, 언제가 될 지는 모르지만 그날을 위해 차근차근 준비하고 싶었어.


하지만 막상 시작은 했는데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게 쉽지는 않았어. 물론 아주 재미있었지만 어학원비도 내 형편에는 만만치 않았고, 수업을 따라가려면 꽤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야 했거든. 6개월 걸려 기초를 떼고 나니 잠시 정체기가 왔어. 프리토킹은 안돼도 이제 서바이벌 스페인어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계속 이렇게 열심히 해야 하나? 그 시간에 돈 벌 궁리를 하거나 글쓰기에 좀 더 집중해야 하는 거 아닐까? 언어천재도 아니고 기억력도 그닥 좋지 않은 내가 스페인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정도까지 하려면 최소 몇 년은 걸릴 텐데, 차라리 영어공부를 더 해서 하나의 외국어라도 완전히 마스터하는 게 실리적이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졌고, 그래서 잠시 스페인어공부 휴식기도 가졌지만 어느 날 보니 내가 다시 스페인어 교재를 뒤적이고 있는 거야. 내가 정말 잘하고 싶구나, 다른 사람이 알아주든 아니든 내 마음이 그만큼 원하고 있구나, 깨달았지. 멕시코, 페루, 콜롬비아, 과테말라, 온두라스, 칠레, 아르헨티나... 각 나라를 여행하며 거리 거리에서 만나게 될 사람들과 스페인어로 대화하는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고 설렜어. 그래, 그러면 열심히 해야 한다는 부담감, 짧은 시간에 잘 하고 싶다는 욕심을 버리고 다시 시작해 보자. 딱 내가 소화할 수 있을 만큼만 조금씩, 대신 얼마가 걸리든 손에서 놓지않고 꾸준하게. 그러다 보니 여기까지 온 거야.


살다 보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계획을 세워 실행하며 실질적으로 준비해야 할 때도 있지만, 원하는 것이 조금 모호하고 이상적일 때는 목표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순수한 열망을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도 나는 좋다고 생각해. 남들보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거야. 앞으로 이렇게 살고 싶다, 반복해서 꿈꾸고, 꿈꾸다 보면 어느새 그런 삶을 살고 있다고 하잖아? 정말 그 말이 맞는 것 같아. 코로나 때문에 올 여름 멕시코를 여행하려던 계획은 무산됐지만, 그러면 다시 꿈꾸면 되는 거지! 코로나 포스트 시대 여행의 미래를 암울하게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배낭이랑 우쿨렐레 둘러메고 남미여행을 떠나는 꿈을 꾸며 다음주 아주 즐겁게 수업을 할 거야. 매일 다섯 시간씩 빡세게 헤매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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