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ya Lee Aug 28. 2020

북아일랜드의 아프고 아름다운 이름, Derry

8월12-14일 : 처음 만난 도시 데리와 사랑에 빠지다

Dear diary.


셋째날 아침, 우리는 스티브표 아침식사와 가벼운 산책을 마지막으로 더니골과 다음을 약속하고 데리로 향했어. 머물렀던 곳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이동할 때면 늘 아쉬움과 설렘이 교차하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 그게 여행의 묘미이기도 하고.

어쨌든 데리로 향하는 마음은 조금 더 특별했어. 단순히 도시의 이동이 아니라 아일랜드에서 영국의 일부인 북아일랜드로 넘어가는 여정이, 진짜 먼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었거든. 보이지 않는 국경을 지그재그 넘나드는 동안 휴대폰 신호가 IR과 UK 사이를 촐싹맞게 오가더니 데리로 넘어가면서 UK 신호로 바뀌며 "당신은 현재 UK에 있습니다"라는 로밍메시지가 떴어. 도로 위 차들의 노란색 입간판, 비슷한 듯 다른 건물들의 모습 속에서 미묘하게 달라진 공기를 느낄 수 있었어. 우리가 예약한 호텔은 저렴한 비즈니스호텔이었는데 멋은 없지만 시내 중심에 있어 들락날락하며 돌아다니기에는 딱 좋았지.


아직 체크인 시간 전이라 우리는 먼저 점심을 먹기로 했어. 데리가 고향인 친구 헬레나가 추천해준 브런치 레스토랑 <히든 시티 카페>는 이름처럼 성벽 뒤편 조용한 골목에 자리잡고 있었어. 내가 인터넷에서 보고 찜해둔 곳이기도 해서 200% 확신을 가지고 갔는데, 음식 맛도 서비스도 우리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어. 파프리카와 토마토 맛이 진하게 우러난 국물에 코코넛 향이 살짝 감도는 스프도 맛있었고, 두툼히 썬 비건 치즈와 구운 두부, 생야채를 듬뿍 넣은 샌드위치는 고소하고 신선했어. 호텔로 돌아가 체크인을 하고 빳빳하고 새햐안 침대시트 위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뒹굴뒹굴 달콤한 짧은 휴식. 그리고 우리는 슬슬 동네 구경을 나섰지.

데리는 고대에 지어진 긴 성벽과 시내 중심을 동서남북으로 통과하는 4개의 성문(Shipquay gate, Bishop gate, Butcher gate, Ferryquay gate)을 완전한 형태로 유지하고 있는 독특한 도시야. 아일랜드에서는 보기 힘든 모습이라 신기했어. 북아일랜드가 아닌 프랑스나 스페인의 중세도시에 와 있는 기분이랄까.

워킹투어를 예약한 오후 4시에 맞춰 시내 중심에 있는 쇼핑센터 앞으로 갔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투어를 신청했더라. 가이드의 강한 데리 억양이 알아듣기 쉽지는 않았지만 열심히 따라 다니며 도시 구석구석을 둘러봤어.

4개의 성문을 중심으로 쇼핑센터, 호텔, 레스토랑, 카페, 가게들이 늘어선 시티센터는 다른 도시의 모습과 비슷했지만, 성곽 위에서 내려다본 '프리 데리'의 모습은 내가 '데리'에 왔음을 실감하게 했어. 프리 데리(Free Derry)는 구교(가톨릭)와 신교(기독교)의 대립이 극심했던 1960년대 말~1970년 대 초 아일랜드의 독립을 외쳤던 구교파가 자신들이 모여사는 구역에 대해 자체적으로 독립을 선포하면서 붙여진 이름이야. 건물 옆벽 전체에 그려진 커다란 벽화들이 집들과 나무들 사이사이 눈에 띄었어. 당시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으로 현재도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는 '105일 포로사건'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어. 구교도의 봉쇄로 105일 동안 약 3만 명의 신교도들이 성곽 안에 갇혀 있다가 1689년 7월 28일 극적으로 포일 강을 건너 탈출에 성공했다고 해. 지금도 매년 그날을 자축하는 퍼레이드를 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가톨릭교도들의 반대에 부딪치기도 했었대. 성곽 뒤편 골목에 당시의 상황을 소개한 시쥐 박물관(The Seige museum)이 있다고 하니, 우리는 다음날 가보기로 했지.

다음날 오전 존과 나는 프리 데리의 모습을 좀 더 가까이서 보기로 했어. 그림들은 지속적으로 복원작업을 하는지 색채도 윤관선도 아주 선명하게 남아 있었어. 주로 당시 영국정부와 자칭 평화군이 얼마자 잔인하게 구교도들을 차별하고 핍박했는지를 폭로하는 그림들이었지. 우리나라 80년 대 군부독재타도를 외치던 대학생들이 벽에 걸었던 걸개그림처럼 다소 선동적이고 정치적인 분위기. 그리고 그 동네가 시작되는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있는 회전교차로에 '여기서부터는 프리 데리입니다'라고 쓰인 벽화가 있었어.

기독교인이지만 가톨릭에 대해서는 어떤 반감도 없이, 오히려 같은 신을 믿는다는 친밀함을 가지고 살아온 나로서는 신구교의 분열이 드러낸 잔인함이 처음에는 잘 이해되지 않았어. 하지만 아일랜드에 살면서 영국과 아일랜드, 북아일랜드의 갈등이 단순히 신,구교의 종교적 갈등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는 걸 알게 됐지. 종교의 이름을 이용한 사회적 차별과 억압, 정치적 이해관계 등 복잡하게 얽혀 있은 이들의 관계에 대해 조금씩 더 이해하게 되었어. 특히 영국과 아일랜드 대립의 최접전지였던 데리에 직접 와보니, 보이지는 않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깊은 상처와 아픔이 꽤나 생생하게 느껴졌어.

우리는 이 '프리 데리 선언'과 관련된 사건을 전시해 놓은 프리 데리 박물관, 그리고 성곽을 올라 어제 찜 해둔 시쥐 박물관을 둘러본 후 테라스가 있는 카페에서 진한 커피와 달콤한 초콜릿케이크를 나누어 먹었어. 며칠째 거짓말처럼 화창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었지. 코로나 따위 생각나지 않는 이 여행이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중, 존이 말했어. "나 데리와 사랑에 빠진 것 같아!" 그 순간 깨달았지, 나 역시 그렇다는 걸. 아픔 많은 대상에 끌리는 우리 부부의 이상한 공통점 덕분에 언젠가 꼭 다시 데리에 오게 되리라는 예감이 들었어.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