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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a Lee Jan 16. 2021

진짜로 개가 되는 상상

남편이 나의 별명을 부르기 시작하면서 생긴 일          

존과 나는 둘 다 개를 좋아한다. 물론 고양이도 좋아하지만 개와 고양이 둘 중에 키운다면 단연 개다. 요즘 대세인 고양이의 시크한 매력을 부인할 수 없고, 존과 나처럼 외출이 잦은 사람들에게는 고양이가 키우기 조금 더 수월하겠지만 말이다. 게다가 내가 살고 있는 아일랜드는 개의 천국이다. 어릴 때 영국을 개, 프랑스를 고양이에 비유해 두 나라의 앙숙관계를 소개한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영국의 이웃나라라서 그런가 정말 개를 키우는 사람이 많다. 개의 수와 사람의 수가 맞먹을 것 같다. 개의 종류도 가지가지, 거의 박물관 수준이다.

어쨌든 개를 키우고 싶은 마음은 늘 굴뚝인데 우리 여건을 생각하면 아직 엄두가 나지 않아 보류 중이다. 조금 더 나이가 들고 아파트가 아닌 마당이 있는 집에 살게 되면 큰 개 한 마리 꼭 키우고 싶다.


사실 우리가 개를 좋아한다는 말을 하려고 개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아니다. 요즘 내가 경험하는 재밌는 상상력의 산물을 나누고 싶어서다. 우리가 개를 키우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언젠가부터 집에 개가 존재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드는 이유랄까.

사건은 결혼 초 내 별명이 블랙독(검둥개)이라는 걸 알게 된 존이 종종 나를 이름 대신 '헤이, 독(dog)', 혹은 블랙독의 애칭인 '블래키'라 부르면서 시작된다. 듣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보통 부부 사이의 호칭인 '허니'나 '베이비'보다 신선하고 재밌고, 뭔가 둘만의 친밀하고 특별한 애정이 묻어나는 것 같아 좋았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존은 내 호칭만 '블래키'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나의 행동이나 나의 상황, 나의 모습 등 모든 영역을 개에 비유해 표현하기 시작했다. 한 마디로, 우리가 사물이나 동물을 인간의 행태에 비유해 의인화 하듯 '의견화'를 하는 거다.

예를 들어 내가 점심 먹고 침대 위에 누워 쉬고 있으면, "저기 래브라도 한 마리가 배 깔고 누워 있네. 배도 부르겠다, 따뜻한 바닥에 엎드려 있으니 세상 행복하지?"라고 하고, 길을 가다 마주친 개가 나한테 반갑게 다가오면 "쟤도 블랙독을 알아보는거야."라고 한다. 한번은 저녁 먹는 식탁에서 그의 버릇에 대해 몇 마디 투덜거리는 소리를 하는데, 내 얼굴을 보면서 "으릉..으르르..." 성질 난 개가 으르렁 거리는 소리를 내더니 "유 아 어그레시브 독!"(이 개 성깔 있네!) 했다. 난 그 표현이 재밌어 크게 웃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처음에는 그냥 재밌기만 했던 그의 '의견화'가 서서히 내 의식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존의 관찰력과 표현력에는 아주 절묘한 데가 있었다. 그가 작가 뺨치는 생생한 묘사로 내가 하는 말이나 행동을 개에 빗대어 이야기할 때마다 나는 내 자신이 진짜 개가 된 것 같은 기분에 빠졌다. 나의 상상 속에서 나는 때론 순하고 덩치 큰 래브라도가, 때론 작고 똘망똘망한 테리어가, 또 때론 성깔 있는 불독으로 변신했다.

특히 감정이입이 많이 될 때는 그가 이런 개의 비유로 애정표현을 할 때다.

"Blacky! You are a good dog, lovely dog ..." 하고 말하며 그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 웃음이 나면서도 가슴이 따듯해진다. 침대속에서 "Give me your paws.."라며 내 발을 찾아 주물러줄 땐 이곳저곳 맨 발로 다니느라 굳은 살이 박힌 개의 작은 발바닥이 생각나 마음이 짠해지고, 기분이 우울할 때 존이 장난스럽게 "Hey, dog. What are you worrying about? I'll always look after my dog!" 하고 말하면 금세 마음이 촉촉해지며 힘이 난다.


존이 나를 부른다. 헤이 블래키, 산책하러 갈 시간이야!

난 왈왈, 두 번 크게 짖고 달려나갈 준비를 한다. 정말 존이 키우는 개가 되어 아무 걱정 없이 먹고 자고 자유롭게 잔디밭을 뛰어다니고 싶다는 게으르고 철 없는 생각을 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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