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1일: 락다운 5단계에서 살아남는 법
Dear diary.
그동안 잘 지냈니? 새해가 한달이나 지나서야 소식 전한다. 그동안 별다른 사건사고가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누군가에게 들려줄 만한 특별한 이야기가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겠지. 그래도 오늘은 평범하지만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순간을 기록하고 싶어서 펜을 들었어.
거의 매일 흐린 하늘, 차가운 빗줄기와 바람으로 가득한 아일랜드의 겨울이 난 정말 싫어. 특히 크리스마스의 흥분과 설렘이 가라앉고 새해를 맞이하는 두런거림이 반짝 스치고 지나가버린 1월의 한복판에서는 쉽게 길을 잃곤 해. 아일랜드 사람들이 '제뉴어리 블루스(January Blues)'라는 말을 쓰는 걸 보면, 아일랜드의 1월이 혹독하긴 이 나라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인가봐.
코로나 확진자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백신을 둘러싼 나라 간 잡음이 가득한 이곳, 아일랜드는 아직도 상점, 학교, 공연장, 도서관 등 거의 모든 시설이 문을 닫고 음식점과 카페는 배달과 테이크아웃만 가능한 5단계 락다운 상태야. 다른 카운티로의 이동도 금지되고 존의 직장도 100% 자택근무로 전환된 상황이라, 식료품을 사거나 산책을 하러 나갈 때를 제외하고는 하루종일 집에 있어. 친구를 만나도 갈 곳이 없으니 존 말고 다른 사람 얼굴 본 지도 오래. 며칠 전 3월 말까지 5단계 락다운이 연장된다는 뉴스를 듣는 순간 마음을 딱 접었지. 친구들 보고 싶은 마음도,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도, 카페에 앉아 여유롭게 커피를 홀짝이고 싶은 마음도 다.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한 허황된 희망은 아예 품지 않는 게 나으니까. 그 바람들은 모아모아 두었다가 세상이 다시 열리는 날 정말 신나게 펼쳐주리라! 속으로 외치면서 말야.
그래, 오히려 이렇게 마음을 내려놓고 나니 마음이 담담해지는 것 같아. 내가 바꿀 수 없는 환경에 대해 걱정하기보다 내가 바꿀 수 있는 일상과 나의 마음에 집중하려고 노력하고 있어. 종일 비가 오고 날이 흐려도 우울해하기보다 새로운 하루를 선물처럼 여기며 감사하려 노력하고,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시간을 보내기보다 그냥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사는 거지.
사랑은 느낌이 아니라 선택이고 결심이라고 하잖아? 결혼을 하고 살다보니 그 말이 정말 맞더라.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도 시간이 흐르면 처음의 설레고 들뜨는 감정이 점차 무뎌지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그런 느낌에 기대 사랑한다면 계속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나야만 할 거야. 익숙하고 편안해진 후, 특히 수많은 단점까지 다 들켜버린 서로를 계속 사랑할 수 있는 힘은 그 사람을 오늘도 사랑하기로 선택하고 결심하는 거야. 그럼 신기하게도 감정과 느낌이 따라 오더라. 그 사람이 더 사랑스러워 보이고, 곁에 있는 그의 존재가 새삼 소중하고 고마워지는 거야.
삶을 사랑하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 아침에 눈을 뜨고 새로운 날을 맞이할 때마다 오늘 하루를 즐겁게 보내기로 마음 먹는 거지. 비와 바람이 성질 사납게 유리창을 흔드는 날도, 차가운 공기를 뚫고 해가 반짝 얼굴을 내미는 날도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로 선택하는 거야.
1월의 마지막날. 오늘 아침에는 뒷산에서 풀을 뜯는 말들을 보며 아침을 먹었어. 검정색, 흰색, 검정색과 흰색이 달마시안처럼 흩어진 점박이말까지 여섯마리가 함께였어. 비가 꽤 많이 내리고 있었는데도 그애들은 그 빗속에서 참 태연하고 맛있게 풀을 먹더라. 나는 갓 구운 토스트에 볶은 버섯을 얹고, 아보카도와 토마토를 곁들여 먹었지. 따뜻한 커피가 비 오는 아침과 제법 잘 어울렸어. 아침밥을 함께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새삼 참 좋더라.
난 2월이 기대돼. 발렌타인데이도 있고, 설날도 있고, (내 생일도 있고!) 무엇보다 봄에 조금 더 가까워지는 시간이잖아. 코로나 때문에 지루하고 답답한 일상, 매일 똑같아 보이는 하루지만, 우리 순간순간 즐겁고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고 누리자. 그렇게 선택하고 결심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