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태양이 늘 다정한 건 아니야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정오 넘어서부터 목 앞쪽이 근질근질하기 시작하더니 점점 더 가려워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거울 속을 기웃거려봐도 눈에 띄는 증상이 없더니만 몇 시간 후 드디어 목둘레로 불긋불긋 작은 돌기들이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망할 놈의 햇빛알러지. 아일랜드에 사는 동안 내 몸이 햇빛에 적응하는 법을 잃어버린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아일랜드의 추위에 익숙해진 것도 아니면서.
난 레알레호(Realejo)라는 동네에 있었다. 알함브라 궁전으로 오르는 언덕에 기댄 동네로, 그라나다의 유대인 쿼터로 알려져 있다. 8세기 그라나다에 정착한 아랍의 무어족과 평화롭게 공존하다가 가톨릭 교회가 힘을 얻으면서 아랍인들과 함께 쫓겨났다. 레알레호는 그 후 얻은 새 이름이다.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지니고 선 희고 노란 집들을 지나 인터넷에서 보고 궁금했던 채식레스토랑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스페인에 있는 채식레스토랑들은 대체로 히피 분위기가 많이 나고 작은 골목길에 숨어 있는데, 그에 비해 가격은 그리 싼 편이 아니다. 난 간단히 당근호박스프와, 빨간무, 사과, 생강을 갈아 만든 쥬스를 시켰는데, 무엇보다 오랜만에 부드럽고 따뜻한 스프를 먹을 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사실 음식을 먹으면서도 목에 돋아난 것들이 더 고약하게 번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심해지는 가려움 때문에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결국 점심을 먹고 언덕길을 돌아내려오는 길에 첫 번째 발견한 약국에 들어가 피부를 진정시키는 크림과 햇빛알러지를 완화해주는 영양보충제를 샀다. 그 자리에서 영양보충제 한알을 삼키고 목에 크림도 듬뿍 발랐다. 돈 좀 아껴보겠다고 5유로짜리 점심을 먹었는데 결국 약 사느라 30유로를 썼다. 이 따위가 뭐라고 난 이렇게 안절부절 못하는 건지. 그냥 신경 안쓰고 즐겁게 돌아다니고 싶은데 타고난 성격이 그게 안 되었다.
피곤해서 더 그런지도 몰랐다. 그라나다에 도착하고 나서 지난 며칠 잠을 제대로 못잔 탓이다. 더위와 바뀐 잠자리 등 환경적인 변화에 최근 형부의 암이 뇌까지 퍼졌다는 소식까지, 육체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내 몸에 일어나는 증상의 80% 이상은 심리적인 원인이었다. 타고난 예민함을 스스로 미워하기도 했지만, 결국은 껴안고 다독이며 가야하는 것도 내 자신이었다.
까끌까끌한 혓바늘을 입천장에 쓸어내리며 집으로 향했다. 일단 집에 가서 찬물로 샤워를 하고 낮잠이라도 조금 자면 기분이 나아질 것 같았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방 창문의 철제 블라인더를 내려 햇빛을 쫓아내고, 차가운 샤워 줄기 아래 서서 오래도록 몸을 식혔다. 그리고 방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강풍으로 돌아가는 선풍기 날개 앞에 주저앉았다. 몸은 개운했지만 물기가 마르면서 자극이 되어 그런지 목둘레가 샤워 전보다 더 가려웠다. 손을 데지 않으려고, 다른 일에 집중하며 가려움을 잊으려고 노력했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모든 신경이 목둘레에 모여있는 것만 같았다. 잠을 자보려고 침대에 누웠지만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만 점점 더 선명해졌다. 한달 동안 스페인어를 배우면 얼마나 배운다고 여기까지 와서 이 고생인가 싶었다. 편안한 내 집도 아니고 남편도 없는 이 외딴 곳에서.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매력적인 태양 아래 여러 나라 젊은이들과 어울려 스페인어 공부를 하는 상상은 즐겁고 신나는 것이었지, 이렇게 독방에서 홀로 피부 가려움과 싸우는 고독한 시간은 들어 있지 않았었다.
아직 학교는 시작도 안했는데 아일랜드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서럽고 무서워 눈물이 나왔다. 할 수 있는 게 기도밖에 없었다. 누워서 기도를 하는데, 형부 생각이 났다. 매일매일 생명을 건 싸움을 하고 있는 가족이 있는데 겨우 땀띠 가지고 죽을 것처럼 괴로워하는 내가 싫었다. 그렇게 하늘에 올리는 기도와 내 생각을 번갈아 하는 사이 까무룩 잠이 들었던가.
똑똑똑. 누군가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첫날 밤 늦게 집에 들어와 다음날 아침에야 제대로 인사를 나누었던 독일남자 스벡이었다. 20대 학생들 틈에서 버거울 뻔 했는데 나보다 나이 많은 50대 남자가 있다는 게 은근히 안심이 된다. 독일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는 스벡은 휴가차 한달 예정으로 그라나다에 머물고 있었다. 어학원은 'fun'으로 다닌다는데, 남미를 여러 번 여행했다는 그는 스페인어를 이미 꽤 잘했다. 여름휴가가 긴 유럽에서는 스벡처럼 20대 여행 스타일로 혼자 휴가를 즐기는 중년 남자나 여자를 쉽게 볼 수 있다. (우리나라였으면 '아재'라고 안 끼워줬을 텐데, 그만큼 싱글 중년에 대한 편견으로부터 자유롭다는 뜻일 거다.)
"오늘 금요일인데 저녁 때 뭐해? 빈센트와 리카는 나갔어. 오늘밤에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서 뮤직페스티벌 한다기에 난 거기 가볼 생각이야. 혹시 생각 있으면 같이 가도 좋아!"
빈센트와 리카도 독일인이다. 주말에 떠난다고 하더니, 아마도 학교 친구들과 환송파티를 하러 나간 모양이었다. 이틀밖에 함께 안지냈지만 좋은 애들 같았는데, 인연이 짧아 아쉽다.
몸도 아픈데 혼자 있어 외로웠나 보다. 함께 가고 싶냐고 물어주는 그의 뜻밖의 제안이 가슴뭉클하게 고마웠다. 생각해 보고 답해주겠다고, 초대해줘 고맙다고 했다.
저녁 8시반이 넘으면 해도 없고 선선하니 기분 전환 겸 따라갔다 올까 생각도 해봤지만, 이번에는 생리통이 발목을 잡았다. 아침에 먹은 진통제 덕분에 심한 통증은 가셨지만 여전히 컨디션이 바닥이었다. 결국 9시쯤 집을 나서는 스벡을 혼자 보내고 난 집에 남기로 했다.
낯선 방, 낯선 동네, 낯선 도시...그리고 울긋불긋한 돌기들로 가득 덮힌 낯선 몸뚱어리. 가려움을 잊기 위해 일찍 잠을 청해 봤지만, 정신은 오히려 말똥말똥해졌다. 기울고 있는 그라나나의 태양이 반쯤 열린 창문 틈새로 기어들고, 낡은 선풍기는 방안의 적요 속에 탈탈탈 소음을 내며 돌았다. 공기는 여전히 후덥지근했고 가려움은 사그러들 줄 몰랐다.
불금. 하지만 나에게는 고금. 예상치 못했던 어떤 고독한 금요일이 아주 느리게 지나가고 있었다. 마치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느리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