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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a Lee Apr 24. 2019

발렌시아의 플라멩코 댄서

마지막 숨까지 쏟아내는 열정

부활절 휴가를 맞아 스페인으로 떠났습니다. 마드리드에서 여섯밤, 발렌시아에서 네밤을 자는 여정이었지요.

우습게도 비가 참 많이 왔습니다. 전 춥고 축축한 아일랜드의 겨울 같은 봄을 피해 온 참이었는데 말이예요. 신이 우리에게 농담을 건네듯 아일랜드는 아주 화창한 날들이라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스페인의 태양아래 광합성을 즐기려던 계획은 물건너 가고, 우린 플라멩코 공연을 한다는 작은 카페로 몸을 숨겼습니다. 비 오는 거리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더니 감기기운까지 도지는 것 같았어요. 여행보다 내집의 편안한 침대가 그리워지려 했지요.


플라멩코 기타 연주가 시작되자 떠들썩하던 주위가 한순간에 고요해졌습니다. 덩치가 산만한 남자연주자가 다섯손가락을 자유자재로 놀리며 기타줄을 부드럽게 튕겨내자 플라멩코음악 특유의 슬프고 구성진 가락이 카페 전체를 채웠습니다.

그의 옆에서 중간중간 박수와 추임새로 흥을 돋우던 두 명의 가수가 기타 연주에 맞춰 노래를 시작했습니다. 가사 하나하나에 온 힘을 다 실어 내는 것이 한국의 창 가락과 비슷했지요.

그리고 그녀가 등장했습니다. 분명 집시여자 카르멘의 피를 이어받았을, 거침없고 매혹적인 몸짓으로 말이죠. 그녀는 구두 탭과 손뼉으로 음악에 리듬을 맞추며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긴 치마 앞단을 들썩일 때마다 촌스러울만큼 붉은 꽃이 어지럽게 피었다 지었습니다. 손목을 360도로 꺾어 돌리며 두팔을 세차게 앞으로 위로 뻗어낼 때마다 힘을 모으는 그녀의 들숨 소리가 들렸습니다. 리듬이 점점 빨라지면서 그녀의 구두굽 소리도, 손뼉소리도, 숨소리도 점점 가빠졌습니다. 허리는 꺾어질 듯 뒤로 옆으로 빠르게 빙빙 돌고, 얼굴에는 어느새 땀이 비오듯 흐릅니다. 그리고 그녀의 표정.

고통과 환희가 뒤섞인 듯한 그 표정이 저에게 말을 겁니다. 숨이 턱에 찰 만큼 내 몸과 마음을 다 쏟아낸 적이 있냐고. 그렇게 최선을 다했을 때, 고통의 순간을 넘어 찾아오는 환희를 기억하냐고.

공연이 끝나고 무대 위 예술가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생각했습니다. 그녀가 보여준 열정을 제 삶의 자리에서 꼭 기억하겠다고요. 여행이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아무리 사소하고 평범한 시간이라도 생각없이 그냥 흘려버리지 않고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해 살고 싶습니다. 플라멩코 춤의 절정처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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