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ya Lee Apr 11. 2020

‘사회적 거리’를 두면서 ‘마음의 거리’를 좁히는 시간

아일랜드에서 함께 코로나대유행의 어려운 시절을 건너갑니다


안녕,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니?

종일 비 오고 흐리던 날들은 다 어디로 간 건지 어제 늦은 오후 잠깐 흩뿌린 비를 제외하면 일주일째 이렇게 날이 좋을 수가 없어. 밖으로 돌아다닐 때는 비가 지겹게 오다가 집에만 있어야 할 때는 이렇게 눈부시게 화창하다니, 머피의 법칙이 딱 맞아 떨어지는 요즘이야. 그래도 봄볕이 내리는 창가에서 햇빛에 반짝이는 나뭇잎들을 보며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하다.


그러고 보니 어느덧 4월이네... 새봄과 함께 코로나바이러스가 싹 물러가주면 참 좋으련만, 아일랜드를 비롯한 유럽은 아직 코로나와의 전쟁이 한창이야. 뉴스를 보면서 가장 괴로운 순간은 “이 사태가 언제쯤 끝날까요?”라는 리포터의 질문에 “아무도 모릅니다.”라는 전염병전문가의 답을 들을 때야. 끝나는 때를 알면 참고 버티는 게 조금은 쉬울 텐데, ‘알 수 없다’는 모호함이 마음을 불안하게 하고 열심히 싸우려는 의지를 흔들곤 해. 하지만 언제일지 정확히는 몰라도 이 상황이 언젠가는 끝날 것이고, 백신도 개발될 것이고, 다시 온 가족이 모여 밥을 먹고 친구들과 펍에서 맥주잔을 부딪칠 수 있는 날이 곧 올 거라는 희망으로 하루하루 힘을 내는 거지.


아일랜드에 첫 확진자가 보고된 것은 지난 2월 29일. 그리고 2주 후인 3월 13일 모든 학교가 일제히 휴교에 들어갔어. 처음에는 2주 동안이라고 했지만 곧 부활절 휴가 끝나는 4월 19일까지 연기되었지. 그즈음 아일랜드정부의 가장 큰 고민은 아일랜드 최대 축제일인 3월 17일 ‘성패트릭스데이’에 간판행사인 퍼레이드를 예정대로 진행할 것이냐 말 것이냐였는데, 처음에는 예정대로 하겠다고 했다가 결국 여론에 떠밀려 취소했어. 250여년 축제 역사상 처음으로 퍼레이드도, 떠들썩한 파티도, 초록옷의 물결도 없는 텅 빈 거리는 공상과학영화의 한 장면처럼 비현실적이었어. 무서울 정도로 조용하고 우울했어.

이후 확진자와 사망자가 늘어나면서 규제도 점점 강화되었지. 대규모 행사가 줄줄이 취소되고 펍, 레스토랑, 카페, 극장 등도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했어. 손 씻기와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에 대한 안내문이 경고장처럼 이곳저곳에 나붙고, 소셜미디어에서는 “제발 집에 있으라”는 간곡한 부탁이 ‘Stay at Home’이란 해시태그를 달고 빠르게 퍼져나갔어. 4월 7일 현재 슈퍼마켓, 약국, 주유소, 세탁소를 제외한 모든 상업공간이 문을 닫았고,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집에서 2킬로미터 이내로 이동을 제한하고 있어.

그런데 말이지, 오랜 세월 인간이 견고히 세우고 지켜온 질서체계가 와르르 무너지고 나니, 그동안 미처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고 느껴지기 시작해. 특히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자발적으로 고립된 생활을 하면서, 우리가 사는 세계가 얼마나 복잡하고 미묘하게 관계 맺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돼.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 국가와 국가, 심지어 COVID-19 같은 바이러스까지, 이 우주에 공존하는 모든 것들이 말이야.코로나 때문에 전 세계 공장들이 문을 닫고 사람들이 경제적 불안감으로 소비를 줄이면서 지구의 대기오염 농도가 눈에 띄게 줄었다는 기사를 봤어. 아이러니하지 않아? 인간의 경제적 위기가 자연에게는 숨통을 틔워주었다는 게. 지금 우리 인류가 당하고 있는 고통만큼 그동안 자연도 많이 아팠다는 거잖아. 코로나바이러스도 결국 인간이 자연생태계의 균형을 깨트렸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지금껏 유지해온 생산과 소비의 방식과 친환경적인 삶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할 때인 것 같아.

그런가하면 가족들이 하루 종일 집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면서 나타나는 반응도 갖가지야. 그동안 각자의 생활에 바빠 등한시 하던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고 더욱 친밀해졌다는 사람들 이야기에 웃음 짓다가, 가정폭력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는 뉴스를 듣고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이상한 나날이야.

바다를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


세상과 거리를 두며 지내다 보니 그리운 것들이 자꾸만 늘어나. 매일같이 들러 모닝커피로 아침을 시작하던 단골카페, 친구와 맛있는 샌드위치를 먹으며 즐겁게 수다 떨던 오후, 바쁘게 보낸 하루의 수고를 토닥이며 친구들과 펍에서 부딪치던 맥주잔의 경쾌한 소음, 가끔씩 멋진 레스토랑에서 남편과 기분 내던 특별한 저녁, 휴가 때마다 마음을 비우고 새롭게 채우기 위해 떠나던 짧은 여행 따위들. 지루할 만큼 평범했던 일상이 이토록 그리워질 줄 누가 알았을까?

그 중에서도 가장 그리운 건 ‘사람’이야.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는 물론이고, 그냥 알고 지내던 사람, 심지어 모르고 스쳐가던 사람들조차 그리워져. 얼굴과 얼굴을 마주한다는 것, 눈과 눈을 마주친다는 것, 손을 잡고 어깨동무를 하고 서로를 안아주는 온기의 행위가 사라진 세상은 참 허전하고 쓸쓸하다.그래도 이럴 때 온라인 세상이 있어서 다행이야. 물론 직접 만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그리운 얼굴을 화상으로라도 마주할 수 있어서, 목소리를 들으며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게다가 좋은 점도 있어. 각자 생활에 바빠 한 장소에 모이기 힘들었던 사람들이 다들 집에 있으니 같은 시간에 온라인 플랫폼에서 모이는 게 조금 쉬워졌거든. 모두 같은 어려움을 공유하다 보니 그동안 소홀했던 서로의 안부에 더 마음을 기울이게 되는 것 같아. 메시지나 전화로 그리움을 나누고 격려하며, 이 낯설고 혼란스러운 시간을 함께 건너가는 거야.

산책을 하다 만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눌 때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SNS를 통해서도 코로나로 인한 고통을 나누려는 다양한 활동이 세계적으로 활발히 일어나고 있어. 의료시스템이 열악한 나라에 부족한 의료장비를 지원하기 위해 기부캠페인을 벌이고, 음악가들은 자신의 노래와 연주를 인터넷 플랫폼에 무료로 공유해 사람들의 지친 마음을 위로해. 매일 같은 시간 아파트 발코니에 모여 수고하는 의료진에게 박수와 환호성으로 고마움을 표현하는 스페인 사람들, 코로나 투병 중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경험한 세계 각국 사람들의 이야기가 SNS영상을 통해 사람들의 지친 마음에 희망을 전해 주고 있어.이번 바이러스 대유행이 한두 나라에서만 일어나고 끝났다면 이렇게까지 전 세계가 한마음이 될 수 있었을까? 아마 아닐 거야. 자신이 직접 겪어보지 않은 고통은 깊이 이해하기 어려운 법이니까. 신체적으로는 온기를 느낄 수 없는 2미터 거리를 유지해야 하지만 이렇게 마음으로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지난 주에는 브레이를 살짝 벗어나 조금 긴 드라이브를 했어. 마음대로 돌아다니지 못하니 차를 타고 가는 동안이나마 꽃구경 좀 실컷 하고 싶었거든. 하늘은 새파랗고 구름은 뭉게뭉게, 막 돋아나기 시작한 나뭇가지의 연둣빛 새순들이 가슴 시릴 만큼 예뻤어. 개나리와 목련, 벚꽃처럼 한국에서 많이 보던 꽃들을 보니 갑자기 한국의 봄날이 그리워지더라. 아일랜드는 봄만 되면 히스라는 노란색 덤불꽃이 지천이야. 주로 산등성이를 타고 번지듯 피어나서 멀리서 보면 산 전체가 노랗게 보였어.

존과 나는 페어뷰공원이 시작되는 길에 차를 세우고 함께 공원을 가로질러 바닷가를 따라 걸었어. 바닷가라지만 개펄이 넓어서 마치 드넓은 모래벌판을 걷는 기분이었지. 등 뒤편에서 바람이 엄청 세게 불어왔어. 몸에 힘을 빼고 바람에 기대도 쓰러지지 않을 만큼 강한 바람이 나를 계속 앞으로 밀어내고 통에 내 발은 저절로 뛰어가듯 빨라졌어. 그 느낌이 재미있어서 양팔을 활짝 벌리고 아아아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마구 달려갔지. 저 멀리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어떤 지점, 어쩌면 지구의 끝을 바라보면서. 바람이 만들어내는 모래 회오리가 영화의 하늘로 치솟다가 공기 중에 흩어졌어.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그 풍경 속을 사람들이 마치 모래사막을 건너는 수행자처럼 띄엄띄엄 떨어져 걷고 있었어.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어. 오랜만의 비라서 그런가, 왠지 반갑고 시원하더라. 이 비에 코로나도 다 씻겨 나가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어. 언제 끝날지는 모르지만 이 코로나 위기도 언젠가는 지나갈 테고, 그러면 사람들은 다시 펍과 카페에 모여 수다를 떨고 공원에 삼삼오오 모여앉아 소풍을 즐기겠지. 그때, 사람들이 지금 우리가 힘들게 건너온 시간이 가르쳐준 것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어쩌면 전 인류가 사회적 거리를 두며 보내는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그동안 당연하게 누렸던 것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때가 아닐까? 가족과 친구들, 이웃나라들, 우리를 둘러싼 자연... 이 우주 안에서 나와 관계 맺고 있는 모든 존재들과 더욱 평화롭게 살아가기 위해 내가 할 일을 고민해 보는 소중한 시간으로 보내고 싶어. 그때까지 계속 따뜻한 일들이 일어나길 바라며, 너의 안전과 평안을 기도할게. 그럼 이만 총총. **

작가의 이전글 발렌시아의 플라멩코 댄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