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넉넉한 품이 제일 좋아
12월은 크리스마스와 함께 시작된다.
반짝반짝 빛나는 전구, 상점마다 울려 퍼지는 캐럴, 알록달록 예쁘게 꾸며진 크리스마스트리까지.
아직 한 참 남은 12월 25일이 코앞에 다가와 있는 것 같다.
2020년,
나는 너와 아홉 번째 크리스마스를 맞이한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러나 싶어 깜짝깜짝 놀란다.
너와의 첫 만남은 머나먼 곳이었다.
전 세계 어느 곳에서나 쉽게 찾을 수 있는 세이렌이 마스코트인 카페에서 너를 만났고 나는 그만 첫눈에 반해 버렸다.
수줍은 하얀 빛깔의 깨끗한 너의 모습에 나는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그때부터 나는 언제나 너와 함께 했다.
그렇게나 많이 떠돌아다니면서도 나는 언제나 너를 가장 먼저 챙겼다.
혹시나 네가 깨어질까 봐 겹겹이 싸매고 소중하고 조심스럽게 다루었다.
내가 좋아하는 커피를 가득 담을 수 있는 너의 넉넉한 품도 마음에 들었지만
언제나 크리스마스 떠올릴 수 있는 너의 하얗고 빨간 빛깔이 내겐 너무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며칠 전 나는 그만 너를 떨어뜨렸다.
나는 너무 놀라 비명을 질렀다.
"안돼!"
바닥에 떨어진 너는 '쨍그랑'같은 높고 얇은 음이 아닌
'퉁'하는 낮고 무겁고 둔탁한 소리를 내었다.
그 소리 덕분이었을까.
너는 깨어지지도 않고 금이 가지도 않았다.
멀쩡한 너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네가 깨졌다면
어쩌면 나는 꽤 오랫동안 나를 미워하고 원망했을지도 모른다고.
9년이라는 시간은 짧은 시간이 아니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그 무엇과 함께한 시간과 순간은 추억으로 남는다.
지난 9년 동안
매일 아침 나는 너를 만났고
네게 가득 담긴 따뜻한 커피로 나의 하루를 시작했다.
애착은 가질 수 있되 집착은 하지 않으려 하지만
너와는 오래오래 함께 하고 싶다.
그건 아마도 너의 빨간 빛깔과
너의 잔에 담긴 은빛 눈송이가
매일 아침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기분을 느끼게 해 주어서 일 것이다.
고맙다.
나를 미워하고 원망하지 않게 해 주어서.
매일 아침 내게 크리스마스 같은 기쁨과 설렘을 선물해 주어서.
그리고 너와의 아홉 번째 크리스마스를 맞이 할 수 있게 해 주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