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교사들을 인터뷰 하면서 나는 한가지 이해되지 않는 점이 있었다. 그것은 폴란드 교사들의 반응이었다. 폴란드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회상하면서 끊임없이 눈물을 흘렸다. 70년 가까이 지난 일이고,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저 보람된 일을 했던 청년기의 한 기억일 수 있는데, 아이들과 나눈 사소한 기억까지 보관하며 왜 저토록 생생한 슬픔에 붙들려 있을까..?
호기심을 참지못해 던진 나의 미숙한 질문에 양육원 원장인 요제프 브로보비치 씨(91세)는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우리가 기차역에서 아이들을 처음 만났을 때, 아이들은 생전 처음 보는 까만 머리, 까만 눈의 동양 아이들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아이들이 누가 누구인지도 분간할 수 없었죠. 그러나 우리가 확신할 수 있었던 건, 그 아이들은 우리의 유년시절의 일부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선생님이 아닌 엄마, 아빠가 필요하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죠…”
교사들 역시 아이들의 나이에 전쟁의 아픔을 겪었고, 그 상처가 매개가 되어 아이들을 진실한 사랑으로 품을 수 있었던 것이다. 교사들의 눈물은 그저 한 때 자신들이 양육했던 타국 땅의 아이들을 향한 눈물이 아닌, 자신들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이자, 가슴으로 길러낸 자식들을 향한 그리움과 염려였던 것이다.
3년 후 폴란드로 보내진 아이들은 다시 북한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북한으로 돌아간 아이들은 폴란드 교사들에게 2년간 손편지를 보내왔다. 조국으로 돌아가 노동에 동원된 아이들은 북한의 힘든 현실과 폴란드로 돌아가고픈 마음을 담은 내용의 편지들을 지속적으로 보내왔다. 이 편지들은 교사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고, 61년도에 편지가 중단 된 이후, 교사들은 아이들의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
역사의 시련기에 필연적으로 고통을 겪는 아이들이 있다. 그러나 역사가 치유되고 봉합되는 과정에서 이 아이들은 잊혀진다. 역사는 미래로 가기 위해 이 아이들을 지운다. 역사는 상처를 지우려 애쓴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를 통해 상처를 둘러싼 관점을 새롭게 조명하고 싶었다. 그것이 역사의 상처이든, 개인의 상처이든, 그것으로부터 선한 것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상처는 마치 연금술처럼, 우리의 양심 안에서 타인을 향한 긍휼로 변화될 수 있는 숭고한 재료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우리는 한국전쟁을 통하여 무엇을 얻었는가? 우리에겐 어떤 성찰이 남았는가. 단지 대적을 증오하는 마음 외에 무엇을 얻을 수 있었는지 묻고 싶다.
전쟁의 90%는 비극일 수 있지만 그 이면의 10%에는 귀한 것들도 있다. 전쟁의 고통을 수습해 준 파란 눈의 사람들의 우정이 우리 역사의 시간에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념을 초월한 것이었다. 우리의 견고한 프레임들을 벗을 때 그 10%의 이면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한국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의 시작이 그러했듯 통일은 우리 민족만의 이슈가 아닌 전세계인들이 여러 모양으로 동참해야 하는 우주적 평화의 사안일 것이다. 나는 이 영화가 통일로 가는 여정에 작은 씨앗으로 뿌려 지길 소망하며 그 날을 겸허히 기다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