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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NKNOWN Nov 20. 2020

극장을 그리워하게 만드는 '영화적 체험'을 떠올리며

영화관 없이 영화를 보는 시대에서


마틴 스콜세지는 <아이리시 맨>을 개봉하며 관객들에게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볼 것을 권고했다. 큰 화면으로 보는 것이 이 영화를 제대로 감상하는 방식이라 말했다. 하지만 대 OTT 시대가 열린 지금,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은 어느새 피곤함이 됐다.


볼거리는 손바닥만 한 스크린에도 가득하다. 굳이 영화관에 갈 필요가 없다. 거기다 원한다면 언제든지 일시정지를 누를 수 있고, 주변에 어떠한 방해 없이 영화를 즐길 수 있다. 극장이 집보다 나은 점은 큰 화면, 강한 사운드 둘 뿐이다.  오직 '영화광'들만이 극장을 그리워한다.



영화관이 주는 '영화적 체험'을 재정의하다


하지만 코로나 19 사태가 지속될수록 사람들은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일'에 대한 애틋함이 생겼다. 아무 계획 없이 영화관에 뛰어들어 "아무 영화! 제일 빠른 거 주세요!"라고 외치던 순간이나 팝콘 맛을 고민하던 시간까지도 추억하게 됐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영화적 체험은 다시 정의될 필요가 있음을 느낀다.


영화적 체험은 본디 영화를 보는 그 자체를 의미한다. 시각과 청각을 통해 영화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순간이 영화적 체험이다.  극장은 이런 영화적 체험을 극대화시켜준다. 압도적인 화면과 소리가 관객들을 스크린 안, 이야기 속으로 끌고 간다. 그렇지만 오로지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일'만이 영화적 체험이라면 사람들은 이 일을 그렇게 애틋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장루이 셰페르는 일찍이 "관객 각자의 삶과 경험의 일부를 형성하는 일"을 영화적 체험으로 정의했다. 그는 주머니 속 빵 부스러기의 감촉과 특정한 장면에서 보인 몸짓까지도 영화적 체험이라 여긴다. 심지어는 영화관을 오가는 거리의 날씨까지도 영화적 체험에 포함시킨다. 기존의 정의보다 확장되고 총체적인 이 정의는 사람들이 극장을 그리워하는 일을 설명해준다.



가장 먼 곳의 <반지의 제왕>


나의 경험 중에도 영화적 체험을 설명할 만한 일이 있다. 2001년은 <반지의 제왕>과 <해리포터>가 개봉한 해였다. 판타지 영화의 두 대작이 영화관에 걸리던 날, 나도 극장에 있었다.  그 당시 나는 타 지역의 극장에서 <반지의 제왕: 반지원정대>를 봤다. 그곳은 내가 태어나서 가장 멀리 온 곳이었다. 그때 영화 속에서는 '샘'이 이런 대사를 한다. "여기만 넘으면 살면서 가장 멀리 나가는 거예요. " 이 대사는 <반지의 제왕>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사가 됐다.


<반지의 제왕>에 줄거리를 말하라 하면 사람들은 다 다른 이야기를 할 것이다. 아라곤이 왕이 되는 이야기, 중간계가 평화를 되찾는 이야기, 절대반지를 파괴하는 여정. 하지만 나는 그 날 가장 먼 곳에서 그 영화를 봤다는 이유로 전혀 다른 줄거리를 말하게 됐다. 보잘것없는 호빗이 자신의 세상 밖, 먼 곳으로 갔다 오는 이야기. 이게 내가 기억하는 <반지의 제왕>이다. 아마 타지에서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그 타지가 내게 아주 가까운 곳이라면 이런 대답을 하지 않았을 거다. 극장으로 가 영화를 보고 나오는 모든 과정이 내게 '영화적 체험'이 된 거다.



영화관 그 조명, 온도, 습도


사람들은 일시정지를 누를 수 없다던가 다른 관객이 방해를 한다던가 그런 것들을 싫어한다. 하지만 멈출 수 없기 때문에 이야기를 몰입해서 볼 수 있고, 다른 관객들이 있기 때문에 함께 웃고 울 수 있는 경험을 사랑한다. 손바닥 안의 스크린과 방 안의 극장이 줄 수 없는 체험들을 영화관은 줄 수 있다. 그곳으로 가는 일련의 사건들 또한 영화에 영향을 미친다. 영화관의 영화는 그런 식으로 관객들에게 재미를 선사한다. 모두가 집에 갇혀야 하는 이 시대에 그게 그립지 않을 리 없다.


<반지의 제왕>이 개봉한 지 15주년이 되던 해, 나는 다시 극장으로 가 재개봉한 <반지의 제왕: 반지원정대>를 보았다. 곳곳이 비어 있었지만 F열만큼은 꽉 차 있었다. 그 극장에서 가장 시야가 좋은 줄이었다. 나는 그 중심에 앉아 있었다. 거의 4시간이 되는 러닝타임인데도 F열 사람들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오르자 나의 왼편에 앉은 사람은 주먹을 입에 넣고 울었다. 오른쪽 사람은 벌떡 일어나 박수를 쳤다. 그게 웃기면서도 큰 공감이 갔다. 영화까지도 더 사랑스럽게 여겨졌다. 영화적 체험이 가진 최고의 기능은 사람들이 또다시 극장에 오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거다.


나 또한 그때를 떠올리면 사람들이 가득한 극장으로 가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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