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아나, 우리가 결정하는 우리의 운명
영화 <모아나 2> 리뷰
<모아나 1>이 질문에 답하는 영화였다면, <모아나 2>는 포부를 밝히는 영화였다. 전편에서 모아나는 영화 내내 민족의 정체성을 찾아다닌다. '우리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모아나는 고군분투했고, 그는 자신이 항해하고 모험하는 민족이었다고 답해낸다. 반면 <모아나 2>는 질문받지 않는다. '우리의 운명은 우리가 결정짓는다'라고 단언할 뿐이다. 답변이 아닌 포부이기에 <모아나 2>의 스토리는 <모아나 1>보다 느슨하다. 답변은 질문에 맞춰 논리를 갖춰야 하고, 답변의 정당성을 증명해야 한다. 하지만 포부는 그럴 필요가 없다. 낙관과 자신감으로도 충분하다. 커다란 포부를 이야기하느라 <모아나 2>는 전편에 비해 노래도 스토리도 부족했지만, "난 공주가 아냐"라고 당당하게 외치는 모습은 충분했다.
<모아나 2>의 당당한 모습을 보며, 상상 속 이야기가 때로 아픈 현실을 보듬는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마블의 <블랙팬서>가 그랬던 것처럼 <모아나 2> 역시 어떤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블의 <블랙팬서>가 유독 흑인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끈 건 단순히 흑인 히어로여서가 아니다. 그간에도 강하고 멋진 흑인 캐릭터들은 그 수가 부족했지만 늘 존재해 왔다. <블랙팬서>의 위력은 그 배경에서 드러난다.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처럼 보이지만, 사실 지구에서 가장 강한 나라라는 '와칸다'의 설정이 아프리카계 흑인들의 마음을 울린다. 식민 지배와 노예의 역사를 경험한 민족들에게는 '강한 나라'에 대한 열망이 있다. 나라라고는 하지만 사실 '뿌리'에 가깝다.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답하기 위해 거슬러 올라간 그 뿌리에 '흔들리지 않는 강인함'이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고 우리의 뿌리가 외세에 의해 바스러졌다는 걸 떠올리면 열망은 곧 고통이 되곤 한다. '와칸다'는 이 고통을 해소한다. 가상의 국가라 하더라도 우리가 될 수도 있었던 모습을 그려보는 건 위로가 된다.
<블랙팬서>에서 와칸다가 존재 그 자체로 강인함을 보여주며 흐뭇하게 만들어준다면, <모아나 2>는 모아나의 행동을 통해 '우리가 선택한 개방'에 대한 환상을 심어준다. 영화 내내 모아나는 자신의 부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찾아다닌다. 그 사람들이 자신을 찾아올 거라 기대하지 않고, 부족민과의 상의를 통해 스스로 외부와 연결되고자 한다. 그리고 그러한 선택의 배경에는 조상의 전언이 있다. "고립은 안 된다"는 조상의 말과 젊은 족장 후계자인 모아나의 행동은 부족 전체를 '개방'으로 이끈다. 외세에 침략을 받지 않고 우리가 선택하는 개방은, 식민 지배를 받아 본 모두가 상상 속에서나 그려본 일이다. 한국도 그렇다. 조선이 더 일찍 스스로 개방했다면 어땠느냐는 질문은 지금도 우리를 따라다니곤 한다. 우리의 힘으로 해냈다면 지금보다 덜 상처받았을 거 같았다는 한탄도 해본다. 모아나는 이뤄지지 못하는 상상 앞에 선 모두에게 선언한다. '우리의 운명은 우리가 결정지을 수 있다'
주역 중 한 명인 '마우이'의 모델이 하와이 독립운동가였다는 점을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모아나 2>는 계속해서 '민족의 구성과 주체성'에 대해 말한다. 모아나가 백인 캐릭터가 아니라서 식민지배와 연결한 건 아니라는 의미다. 전편에서 모아나는 자신들이 항해하는 민족이라고 말했지만, <모아나 2>에서는 그럼에도 우리는 바다를 떠돌 수는 없다는 걸 보여준다. 항해와 개척은 중요한 정체성이지만 그것만으로 민족을 완성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민족의 구성을 잃은 모습은 모아나가 아닌 코코넛을 쓴 카카모라 부족이 보여준다. 이들은 나름의 전통과 언어를 지키며 즐겁게 항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땅을 잃고 바다를 떠도는 중이었다는 게 드러난다. 바다는 민족의 요람이 될 수 없다. 모아나 역시 민족의 운명을 결정하려고 신과 싸움을 벌이는 순간에는 계속해서 써오던 '바다'의 힘을 쓸 수 없게 된다. 대신에 모아나는 마우이와 조상들의 영혼, 자신의 지혜와 용기로 그 싸움을 이겨내고 '섬'을 들어 올린다. 민족은 땅과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우리만의 문화, 조상들이 증명하는 역사 그리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싸우는 사람이 있을 때 완성된다는 걸 보여준다. 여기서 문화는 마우이를, 역사는 조상신을, 사람은 모아나를 상징한다. 이 구성 요소들이 모두 모일 때 비로소 민족이 되고, <모아나 2>의 메시지 역시 선명해진다. 모아나는 자신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를 궁금해하지만, 모아나의 이야기는 항해가 아니다. 멀리 갔다가 돌아오는 것까지가 모아나의 이야기다. 우리의 뜻으로 외부와 연결될 수 있고, 우리의 힘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것까지가 모아나가 선사하는 위로다.
모아나의 위로는 따뜻하지만, 가상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씁쓸함을 남기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 민족은 모아나처럼 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 마음속에서 고개를 든다. 모아나 역시 그런 좌절감을 느꼈다. 모아나는 조상의 전언에 따라 외부와 연결되기 위해 항해하는 과정에서, 조상들의 실패를 목격한다. 이름도 없는 섬에서 산산이 부서진 조상의 배를 보며 모아나는 주저앉는다. 조상이 하지 못했기에 자신 역시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든다. 하지만 모아나는 조상들이 실패한 바로 그 지점에서, 그 실패의 잔재들을 끌어모아 자신의 배를 정비하고 일어선다. 조상들이 남긴 실패까지 끌어다가 운명에 도전하러 간다. <모아나 2>는 실패한 민족에게 환상만 보여주지 않는다. 비록 우리 조상들이 우리에게 남긴 게 실패와 그 잔재뿐일지라도 우리의 힘으로 극복하고 그 실패 지점에서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응원한다. 주체성을 잃어버려 난파된 민족들에게 다시금 희망을 준다.
역경을 이겨내고 숙원을 이뤄낸 모아나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여동생을 껴안는다. 침략받지 않고 우리의 의지로 개방한 우리, 식민지가 아닌 동등한 주체로서 외부와 교류하는 우리라는 새로운 운명을 가져온 영웅을 안아주는 건 미래라는 의미다. 모아나의 여동생은 언제나 모아나가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지배당하지 않은 우리가 꿈꾸던 모습 중 하나다. 조상신이 수호하고, 후손들이 기대하는 우리의 민족. 언젠가 잃어버렸지만 언제나 다시 찾고 싶은 민족의 모습이다.
<모아나 3>에서는 모아나의 이야기가 더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모아나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또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