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1. 26.
베로나-쥴리엣의 집
오션뷰, 마운틴뷰 보다 네온사인뷰가 더 좋다는 영탑리의 딸을 위한 네 시간의 쇼핑으로 진이 빠졌지만, 이탈리아에 온만큼 국어 교사 부부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빼먹을 수가 없다.
누구는 실제 줄리엣의 집이 아니라고 하고 , 영화 속의 장면과 다르다고도 하고, 복제품이라고도 이야기하지만 셰익스피어가 그려낸 세기의 사랑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처럼 꿈꿔보지 않은 젊음은 없을 것이다.
베로나는 제노바나 피렌체보다 ZTL이 더욱 심하다고 들었기에 차를 숙소에 두고 버스로 이동하기로 했다.
아디제 강은 그 굽이친 모양부터 낭만적 사랑의
울렁임과 설렘을 가졌다. 굽이굽이 돌아가는 강을 사이에 두고 사랑으로 상징되는 소도시가 시작된다.
해가 아직 지기 직전의 시간이었지만 에르베 광장엔 이미 가판대가 설치되어 기념품이나 소품들, 먹거리를 팔고 있다. 사각기둥의 시계탑도 인상적이었지만 에르베 광장의 많은 건물의 창에는 발코니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쥴리엣의 발코니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보니 들어갈 때는 보지 못했던 것이 보인다.)
줄리엣의 집의 벽에는 알록달록한 껌들과 사랑의
메모가 가득하다. 추측해 보자면 우리나라 엄마들이 입시 때에 대학 입구에 엿을 붙였던 것처럼, 사랑하는 그 사람과 '껌딱지처럼 딱 붙어있고 싶다. 떨어지거나 헤어지디 말자.' 그런 의미이겠거니 싶다.
하얀 쥴리엣의 발코니 아래엔 로미오가 아니라 쥴리엣의 동상이 서있다. 집을 들어서자 동상과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웅성웅성했다. 쥴리엣의 동상의 오른쪽 가슴을 만지면 새로운 사랑을 만나거나 , 영원한
사랑을 이를 수 있다는 속설이 있다는데,
전 세계 여행객들의 손길로 인해 동상의
가슴은 반질반질 윤이 난다는 말을 들었었다. (복제 전 본래의 동상은 가슴 부분이 닳아서 구멍이 났을 정도라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 방문한 대부분의 사람은 그녀의 가슴을 만지며 사진을 찍는다. 어떤 사람은 양쪽 가슴을, 키가 작은 소년은 까치발을 들고 , 내 남편도 아들도 한 번씩. 물론 내 딸과 여성 관광객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게 참 안 되는 이유가 뭘까? 표정 없는 그녀의 모습이 슬퍼 보이는 이유는 뭐였을까?
내가 너무 진지한가? 그냥 동상일 뿐인 것을 말이다. 그렇다고 쥴리엣의 가슴을 만지며 사진 찍는 사람들을 나쁘다고 생각하거나, 그렇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녀의 표정이 나에게 슬퍼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