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성폭력 사건의 항소심, 시작됐습니다.

안희정 성폭력 사건 재판 방청기-5

by MEI

‘여름의 폭염과 겨울의 한파, 어느 게 더 나은지 모르겠네요.’


11월 29일, 서울 고등법원 서관의 6번 출입구 앞에서 줄을 서 있다가 나는 가볍게 불평의 메시지를 입력했다. 1심 재판 때, 문도 열지 않은 법원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리는 내게 작은 손선풍기 바람을 쐬어주던 연대자 분께 던지는 농담이었다. 그 분은 나보다 일찍 와 앞줄에 서 있었는데, 그 분과 두어사람을 사이에 두고 안희정 측 변호인도 서 있었다. 왜 방청권을 기다리는 일반인들 사이에 변호사가 서 있었을까. 나는 힐끔대며 괜히 목소리를 낮췄다.


안희정 성폭력 사건 항소심은 시작 전부터 부침이 있었다. 1심 때도 재판부가 피고인과의 연고로 인해 한 차례 변경된 적이 있었는데 항소심 역시 안희정 측이 재판부와 연고있는 변호인을 ‘새로’ 선호하는 바람에 변경된 것이다. 사실 최초에 배당된 재판부의 강승준 부장판사는 최근 대법원 판결까지 난 조덕제 사건에서 1심 무죄를 뒤집고 항소심 유죄(집행유예)를 내린 인물이었다. 왜 하필, 이미 개인변호사 까지 있는 상태에서 재판부와 연관 있는 새 변호사를 임명했을까. 재판 방청을 다니다 보니 답없는 질문이 많아진다.

첫 공판준비기일에 다녀와서... 맥주가 필요했다.


그렇게 항소심이 시작됐다

11월 29일과 12월 7일, 두 차례의 공판준비기일을 지나서 12월 21일 첫 공판이 열렸다.


공판준비기일은 말그대로 증거목록을 확인하고 앞으로의 공판 일정등을 조율하는 준비절차다. 피고인이나 피해자도 출석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일반 방청객의 관심도 적은 편이지만 재판부의 성향을 파악하고 앞으로의 재판 진행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다른 연대자분이 설명해주셔서 나도 1심 때부터 꼬박꼬박 방청했다.


두 차례의 공판준비기일에서 기록해 두어야 할 것은 두 가지로 요약될 것 같다.


먼저, 검찰은 재판 비공개를 요청했고 재판부 역시 받아들였다.

1심에서는 피해자 측 변호인단에서 비공개를 요청했으나 서울 서부지법 부장판사 조병구 씨“형사 재판은 공개가 원칙이라..”고 갸웃거렸고 당시 검찰도 역시 ‘그러시면 뭐..’하고 비공개 재판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결국 피해자 심문과 비공개를 요청한 증인(대부분 피해자 쪽)만 비공개로 진행되었고 가해자 측 증인 심문은 공개로 진행되면서 그야말로 1심 재판 과정이 피해자에 대한 루머와 2차 가해를 생산하는 장이 되고 말았다.

홍동기 부장판사는 공판 개시일의 모두발언, 최후변론과 선고 등 공개하도록 되어있는 공판을 제외하고는 모든 재판을 비공개로 진행하겠다고 했으며 또한 공개로 진행될 경우에도 구체적인 피해 사실 적시 등,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안길 수 있는 발언은 삼가하라고 강조했다. 공판준비기일 조차도 일부 비공개로 진행된 것을 봐도 항소심 재판부는 1심 재판 과정의 문제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듯 보였다.


두 번째, 홍동기 부장판사가 여러 번 거듭 강조했던 부분이 있다.

“피해자를 16시간씩 심문했다는 게... 말이 안 된다. 또한 증인 심문 때 동시에 여러 사람이, 같은 사안을 다각도로 질문 하는 것 역시 적절치 않다. 전체적인 질문이 끝난 뒤에 보충 질문은 허용하겠으나,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질문해서는 안 된다.” 는 것이었다.


1심에서 피해자 심문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미루어 짐작할만 했다.

무려 16시간 동안, 안희정 측 너댓명의 변호인들이 동시다발로 하나의 사안을 여러 각도로 캐물어 증언의 오류를 유도해 냈을 그 상황이...


그 날, 증거 목록(증인 포함) 등을 확인하는 과정 때문에 방청객들은 복도로 나왔는데 방음 취약한 문 너머로 간간히 ‘16시간은 말도 안 된다’라고 말하는 부장판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1심 재판 기록을 보고 어지간히 놀라셨던 모양이지.

오세요, 방청연대.


12월 21일, 첫 공판.

예고한대로, 인정신문과 모두진술까지 공개되고 이후는 비공개로 전환되었다.

첫 공판에서 인상적인 것을 쓰자면 다시 두 가지인데...


첫째, 피고인 안희정은 주거가 불안정하다.

인정신문 과정에서 안희정은 현재 주민등록상 주소지에 거주하지 않고 있음을 확인했다. 판사는 재차 묻더니, 만약 재판 관련 송달을 제대로 수령하지 않거나 소환에 응하지 않으면 구인할 수 있다, 는 취지의 말을 했다.


둘째, 검찰은 항소 이유에서 1심 재판의 문제를 꼬집어 다시 한 번 재판부의 엄정한 소송지휘권 행사와 성인지 감수성을 요구했다고 ... 생각되었다.

물론 형사재판에서 항소심이라는 게 1심이 적절치 않으니 다시 하는 거니까, 아마도 보통 검찰의 항소이유가 그런 걸 수도 있다. 그저 내가 법이나 재판을 잘 모르니까 그런 인상을 받았을 수도 있지만...


검찰은 우선 이 사건이 권력형 성폭력임에도 불구하고 1심 재판이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지 못했음을 지적하며 세 가지의 항소이유를 밝혔다.


1. 법리 오해 : 위력에 의한 간음의 범위를 판례보다 축소한 점
2. 사실 오인: 피해자의 진술 신빙성을 합당한 이유 없이 인정하지 않은 점.
3. 심리 미진: 성폭력 사건으로 관계 법령에 따라 엄중히 진행되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은 점.


1번의 경우, 실제 안희정 1심 이후 오히려 [위력에 의한 간음] 사건에서 유죄가 선고되는 사례들이 속속 나오고 있음을 봐도 알 수 있다.

2번의 경우... 비전문가인 나조차도 1심 판결문을 읽으며 가장 황당했던 부분이 피해자의 진술은 이유없이 신빙성이 부정되고 피고인의 진술은 근거없이 신빙성이 인정된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판결문 행간에서 부장판사 조병구 씨가 갖고 있는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이중잣대도 눈에 띄었다. 그러니까 사건 직후, 피해자의 기억이 또렷하고 행동이 평소와 같으면 ‘피해를 당하고 경황없는게 피해자 다운 건데 어떻게 그렇게 침착해?’이라고 의심하고 기억이 흐릿하거나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고 하면 ‘이것봐, 잘 기억도 못 하잖아. 거짓말이지?’ 라고 고개를 가로젓는 거다.

아, 진짜... 어쩌라고... (심한 욕)


내가 중요하다 생각한 건 3번.

항소이유에 재판의 공정한 진행, 다른 형사재판과 다른 차원의 엄정함을 요구하는 검찰의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1심 때 검찰 보다 성폭력 사건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것으로 보였달까. (아, 1심 때 가장 믿음직했던 검사 분은 2심 때도 참여한다.) 약간 기대해 본다. 섣부른 인상평도, 기대도 삼가하려 해보지만 달라진 재판정의 공기에 자꾸 기대를 하게 된다.





1월 4일에는 증인심문(모두 비공개)이 있고 1월 9일, 드디어 안희정 씨에 대한 심문(1심 재판부는 안희정에게 묻지 않았다)이 있으며 이 역시 비공개로 진행된 이후 변론종결절차는 공개로 이루어진다.

방청연대 참여를 원하는 분들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서 안희정 성폭력 사건 공대위 소속 단체의 계정을 팔로우 하면 좋을 듯 하다. (한국여성민우회,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등)


선고는 2월 1일.


우리는 한 사람도 더 잃을 수 없고, 더 이상 질 수도 없다.

미투 고발자들이 우리에게 더 안전한 세상을 만들어 주고 있으니, 우리는 그들이 보다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작은 연대로나마 함께 해야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