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성폭력 사건 재판 방청기-6
많은 사랑과 기대를 받는 정치인으로서
무한한 책임감과 반성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1월 9일 수요일 밤, 서울 중앙지법 312호.
피감독자에 대한 위력에 의한 간음과 강제추행으로 기소된, 한 때 가장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였으며 본인이 밝힌 바에 따르자면 현직 백수인 안희정 씨는, 항소심 결심공판 최후진술에서 두 번이나 ‘정치인으로서’를 운운했다.
뭐랄까, 속에서 구역질이 올라오기도 하고 혀 끝에서는 욕이 간질거려서 어쩔 수 없이 나는 “푸하!”하고 (작게... 끌려나갈 순 없으니까 작게..) 웃었다.
그는 마치, 전성기일 때 자신이 표방했던 포용과 부드러운 리더쉽의 정치인으로 돌아간 듯 ‘고소인의 마음을 존중하고 위로해주고 싶지만’이라고도 했다.
한 때 그를 지지했고 그래서 그의 연설이나 강연을 자주 들었던 내게는 익숙한 단어 선택, 문장 전개... 그래서 더 역겨웠는지도 모르겠다.
1심 결심공판에서 최후진술로 “어떻게 사람이 지위를 이용해 다른 사람의 인권을 해칩니까.”라고 해서 크게 비웃음을 사긴 했지만 최소한 그때는 정치인, 이라는 정체성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랬던 그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법원을 떠나면서 이렇게 말했지
“다시 태어나도록 노력하겠다.” 고.
서부지법 부장판사 조병구 씨가 안희정을 다시 태어나게 했나보다.
안희정 씨는 부활하여 청운의 꿈을 꾸는 걸까?
그는 여전히 자신이 정치인이며 정치인의 미래가 있다고 믿는 듯했다.
사실 주워들은 이야기도 있긴 했다. 여전히 그의 곁에는 ‘대권’을 운운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너무 역겨운 이야기라 재차 따져 물어보지도 않고 고개를 돌려버렸지만, 1심 무죄가 안희정과 그 주변 정치 낭인들의 마음을 들뜨게 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안희정 씨, 뜻대로 될까요?
1심 선고가 났던 8월 14일 저녁이 떠올랐다. 내 기억이 맞다면 폭염이 기승이던 지난 여름, 마지막 열대야의 밤이었다. SNS를 통해 급하게 알렸지만 서부지법 앞에는 6백여명의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인도의 일부만 허용된 집회에 다닥다닥 붙어앉은 사람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함께 분노했다. 그리고 며칠 뒤, 토요일에 열린 집회에도 2만여명이 참가했다.
그런데 어떻게 안희정은 내일을 꿈꾸나.
정치병 말기 환자의 현실 모를 최후진술로 끝난, 안희정 성폭력 사건 항소심의 결심공판에서 인상적이었던 것 몇 가지만 우선 적어보려 한다.
우선, 안희정 측의 오선희 변호사는 꽤나 말을 아꼈다.
1심 결심공판에서 변호인 오선희 씨는 피고인측 증인이 제공한 카카오톡 메시지(해당 증인과 피해자 간의 대화내용)를 적극 활용했으며 피해자가 제출한 피고인 안희정과의 텔레그램 메시지 역시 활용해 최후 변론을 했다. (아, 안희정은 사건 발생 직후, 본인 휴대전화를 폐기했으므로 그가 제출한 증거는 없다. 이 사람 증거인멸 했는데 왜 구속 안 됐나)
피해자의 메시지에서 글로 적혀 있는 ‘넹’이라는 대답을 콧소리 섞어 재연하던 변호인의 목소리가 지금도 또렷하다.
그러나 항소심에선 이러한 변론이 허용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미 재판이 공개로 진행될 때 범행에 관한 구체적 진술과 2차가해가 될 만한 말은 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기 때문에 안희정 측은 피해자의 피해자 답지 못한 행실에 대한 의견을 ‘판사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서면으로 제출하겠다’고 줄여 말해야만 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지겹도록 ‘고학력’ ‘혼인경력’ 운운... 덧붙여 ‘성적으로 개방적인’ 여성이라는 말도 끼워넣기 위해 애썼지만 1심만큼 원껏 2차 가해를 하진 못했다.
검찰이 구형에 앞선 낸 최종의견도 인상적이었다.
서부지검의 김석순 검사는 ‘우리는 피고인이 정치인이라는 사실에 관심없다’는 취지로 말했다. 아마도 안희정 측이 “유력 정치인이었다는 이유로, 관심이 집중되었다고 검찰에서 무리하게 기소하고 단죄하려 한다”고 여러 차례 우는 소리를 했기 때문인 듯 하다.
검찰은 ‘안희정이 유력 정치인이라서가 아니라 그에게 범죄 혐의가 있어 기소했다.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니까’라고 최종 의견을 마무리하며 징역 4년을 구형했다.
검찰의 구형, 안희정 측의 최후 변론 후에 피해자 측 변호사에게도 발언이 주어졌다.
꽤 긴 발언이었는데 그 중 가장 기막혔던 건, 안희정 측에서 김지은 씨를 ‘서지현 검사를 뛰어넘는 metoo의 아이콘이 되고자 허위 고발한 사람’ 으로 몰았다는 사실이다.
미투의 아이콘이라... ‘꽃뱀 몰이’의 최신판인 모양이다.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고발함으로써 부와 명예를 얻은 여성이 하나라도 있었단 말인가.
당장 성폭력 사건이 폭로 될 때마다 피해자를 향해 줄줄이 달리는 악플은 어떤가. 성폭력 생존자가 겪는 고립과 2차 피해가 무슨 권세가 되나.
안희정 씨가 양평 친구의 집에서 무위도식 전원생활을 즐기며 캠핑장비나 사러 다닐 때, 피해자는 생계를 위한 사회생활은커녕, 친구도 만나지 못하고 식사도 수면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데.
안희정 성폭력 사건의 선고공판은 2월 1일 예정되어있다.
경험많은 연대자 분이 ‘판결을 뒤집는 건, 재판부로서는 부담이 큰 일이다.’며 자꾸 기대감에 들뜨는 나를 진정시켰지만.... 기대를 접을 수는 없다.
나는 강간이 데이트였고 썸이었고 섹스였다고 말하는 사회에서 더이상 살고 싶지 않으니까. 아니 살 수 없으니까.
미투를 통해 여성들은 더이상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강간문화를 용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는데, 사법부가 답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어떻게 내일을 꿈꿀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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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방청연대로 참여한 어느 트위터리안은 ‘책에 나온 성폭력 가해자들의 방어논리가 그대로 법정에서 재현되는 것에 크게 충격을 받았다.’는 감상을 남겼다.
나 역시 처음 방청연대로 참여했을 때 같은 이유로 놀랐다. 안희정 성폭력 사건 재판에서 나타난 너무도 교과서적인 ‘가해자다움’에 대해서는, 결심공판을 중심으로 최근에 읽은 <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라는 책과 함께 적어볼까 한다. (언제 쓸지는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