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하드 카르텔을 마주한 우리의 절망에 대하여
재판 방청을 가서
법원 화장실을 이용할 때도,
나도 모르게 '구멍'을 찾았다.
지하철 화장실에서 늘 문과 벽에 뚫린 이유 모를 구멍을 마주한다. 어떤 곳은 앞서 이용한 누군가가 휴지로 막아두었다. 가끔 집 현관문을 열다가도 주변을 한 번 둘러보고, 열어뒀던 창을 닫을 때 창가에 올려진 것이 없는지 확인하게 된다.
여성들의 공포가 과연 '과민'일까.
휴지통에 쓰레기로 위장한 불법촬영용 카메라가 발견되고, 문 앞에 카메라를 설치해 비밀번호를 훔치고 침입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며 웹하드에는 '국산야동'이 유통되고 있다. 무엇이 '과민'일까.
사이버성폭력 근절에 애쓰는 활동가들은 불법촬영 동영상(흔히 리벤지 포르노라 불리는 동의없는 성관계 영상 유포를 포함해)삭제와 범인을 잡아달라는 고발장을 들고 경찰에 갈 때마다 절망감을 느꼈다고 했다.
"이거 못 잡아요."
"본인이 피해자에요?"
"이렇게 많이 가져오면 우리가 어떻게 다 해요."
정말 못 잡을까? 어느 미대의 수업시간 중 남성 누드모델의 사진이 올라왔을 때 검거속도는 빨랐다. 동의없는 성관계 영상의 유포자는 성관계 당사자 남성으로 특정됨에도 불구하고 잡지 못한다던 경찰이, 미술 수업에 들어온 사람으로 용의자가 한정되어 있으니 잡기 쉬웠다고 말하니 우리는 황당했다.
그렇게 경찰과 국가가 손놓은 사이 불법 촬영물의 피해당사자인 여성이 죽고 ‘유작'만 남는다. 웹하드의 '국산야동'에는 "이 여자 죽었답니다."라는 댓글이 농담으로 달리고, 그건 상품가치를 높이는 셀링포인트가 된다.
악명높은 '위디스크'의 양회장이 직장내 갑질로 검거되고 노동계와 언론이 '갑질에 멍드는 IT인재'라는 말로 불법촬영 영상 판매의 공모자들을 동정할 때, 우리는 '국산 야동'이 '유작'이 되어버린 어떤 여성들을 생각했다. 수년 간, 활동가들과 피해자들, 그리고 여성들이 싸워왔던 일은 묻히고 '갑질'로 남은 웹하드 카르텔.
그러던 중, 지난 11월 6일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와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단체연합, 녹색당 등이 [웹하드 카르텔 규탄 긴급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기자회견은 그동안 불법촬영물로 돈을 벌던 웹하드와 정책에 협조하는 척하며 사실상 불법의 가림막이 된 웹하드 필터링 업체, 그리고 또다른 핵심인물 '김경욱'에 대한 것이었다.
김경욱.
그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까르프-이랜드의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을 이끌었던 노조위원장 출신으로 만화 [송곳]은 그를 모델로 주인공 이수인을 만들었다.
한사성 등은 김경욱이 2009년 한국네트워크기술원에 입사, 2013년에는 뮤레카의 법무이사가 되었으며 언론과 법조계 정치권에 뻗어있는 인맥 등을 이용해 웹하드의 불법성을 보호해왔다고 주장했다.
한 때, 여성 비정규직과 함께 싸웠던 인물. 그 투쟁으로 쌓아올린 이력과 명성으로 여자들을 팔아 돈을 버는데 일조했다는 의혹은 너무도 참담한 것이었다.
또다른 기사에서는 현 여당의 당직자 출신 역시 양회장의 회사 중 한 곳에 임원으로 있다고 했다. 전직 노조위원장과 전직 당직자는 왜 필요했을까.
어느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에서는 때 웹하드 업체에서 일했던 이가 '수사당국의 단속 전, 삭제 지시가 내려왔다'는 말을 했다. 그러니까 불법을 감시해야할 기관과 웹하드 업체 사이에 단속 정보가 공유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 정보는 어디서 왔을까. 수사당국에도, 언론에도, 정치권에도 면이 서는 인물들이 그 연결고리였을까?
자, 이래도 '과민'인가.
어떻게 불법촬영 영상이 '국산야동'으로 이토록 질기게 소비되었나.
누군가는 찍고, 누군가는 버젓이 팔고, 필터가 되어야할 국가는 손을 놓았으며, 법은 여자들의 고통을 외면했다. 앞에서는 서로 감시와 적대의 눈을 했으나 뒤로는 손을 굳게 잡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왜 경찰들이 '니가 피해자냐, 이걸 어떻게 잡냐, 다 잘 거르고 있다지 않냐'며 활동가들이 내민 고발장을 튕겨냈는지... 웹하드 카르텔의 실체 앞에서 우리는 이제야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여자들이 죽어가도 응답하지 않던 세상의 어떤 진실을.
여담으로, 김경욱이라는 인물에 대한 고발이 나왔을 때 일부 노동계 인사들이 트위터에서 “진보진영을 싸잡아 ‘똑같다’고 말하지 말라”거나 “만화 [송곳]이 그리는 노동자의 투쟁마저 부정하지 말라.”는 볼멘 소리를 뱉었다.
국가가 방조하고 공모한 폭력 앞에 방치된 여성들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진보진영’의 어설픈 정의감이라니.
죽어간 피해자들 앞에서도 진영을 찾는 그들의 흑백티비 같은 뇌구조에 사실 좀 놀랐다.
덕분에 만화 [송곳]이 까르프 투쟁에 참여했던 대다수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을 축소하고 김경욱(이수인)이라는 인물의 영웅서사가 되었다는 비판이 다시 제기되었으며 김경욱에 대한 데이트폭력 고발 당시에 남발된 피해자와 연대자들을 향한 고소 고발, 그리고 그를 편들어 2차 가해에 해당하는 내용을 퍼나른 노동계 인사들에 대한 비난까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결과를 낳았다.
만화[송곳] 속 이수인, 아니 그 모델이 된 김경욱을 부정하는 것이 실제 까르프-이랜드 투쟁을 훼손시킨다는 건 어불성설. 오히려 김경욱과 당시의 투쟁을 분리시키지 못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우리 2018년 #metoo 운동을 지나며 이미 합의한 것 아니었던가. 성폭력 가해자의 예술작품은 향유되어서 안 되며, 그의 명성은 거두어들여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