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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매이 Dec 24. 2020

무대 위의 여자들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고 나발이고 무대 위에 자리가 없다

즐겨 보는 공연 관련 유튜브에서 연말을 맞이해 구독자들과 함께 올해의 공연 관련 투표를 했다.

물론 이후 구글폼 활용 등 더 많은 관객이 참여할 수 있는 방법으로 어워즈를 하겠다고 했지만 '무쓸모 투표'로 명명된 실시간 투표에 연극 뮤지컬 마니아들은 진심을 다해 4시간 이상 라이브 방송을 함께 했다.


당연히 그 투표의 참여자가 연극 뮤지컬 전체 관객을 대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 공연계에서 코어 관객이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해보면 (실제 코로나 시국에서도 공연계를 지탱한 건 이 코어, 회전문 도는 마니아들이었다. / 기사 참조: '보고 또 보고 코로나도 막지 못한 뮤지컬 덕후') 해당 유튜브 계정의 '무쓸모 투표'가 연뮤덕들의 선호를 파악하는 데는 유의미한 이벤트라 생각했다.


내가 놀란 건 캐릭터 투표였다.

90개의 작품에서 38개의 작품을 추리고 다시 그 개별 작품에서 두 개의 캐릭터를 후보로 올렸는데 압도적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남성 캐릭터(혹은 남성 배우가 주로 연기하는)가 많았다.

물론 남성 타이틀롤 작품이 많은 건 알고 있었고 대학로 소극장에는 올 남캐극이 흔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극 중 캐릭터들을 펼쳐놓고 골라 본 적이 없으니 캐릭터의 성 편향이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그 와중에 남캐 2, 여캐 1인 혼성 3인극에서 남캐 2가 선정되어 후보에 오르기도 했고 (덧붙여 렌트에서도 남성 캐릭터 둘만 올라간 건 렌트 회전러였던 나에겐 아주 충격이었다.) 결국 12강까지 추려지자 여성 배우가 연기하는 여성 캐릭터는 하나도 남지 않았다.


대체 왜 일까.




벡델 테스트를 만든 앨리슨 벡델의 자전적 이야기를 극화한 뮤지컬 [펀홈)


매력적이고 입체적인 여성 캐릭터가 적기 때문?


내가 본 극이 많지 않으니 열심히 극을 본 2019-2020 시즌에서만 한정해서 말하자면, 관객이 사랑할 만큼 '매력적이고 입체적인 여성 캐릭터'가 적다는 말도 맞는 것 같다.

고전적으로 보면 [지킬 앤 하이드]의 엠마와 루시처럼 성녀와 창녀 이분법 속에 갇힌 여성 캐릭터들이 참 많다. 그렇게 여성을 재현하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의 문제도 있겠지만 그들이 오직 남성 주인공의 서사를 보조하기 위해 조형되었다는 점도 문제다. 당연히 독자적인 캐릭터로서의 매력이 떨어지고 관객은 남성 캐릭터에게 시선이 쏠리고 이입할 수밖에 없다. 관객이 문제가 아니라 극이 문제다.


그런데 '매력'은 뭘까.

어떻게 해야 관객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까.


무대 위에는 고뇌하고 실패하고 좌절하고 그럼에도 나아가는 인간이 있다. 현실을 재현하는 거니까 무대 위의 캐릭터들도 불완전하고 불완전해야 하며 약하고 악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인간적 약점들이 매력이 되는 건 남성 캐릭터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 같다. (단정치 못한 외모에 염치없는 발언을 해도 철없고 허술하다며 귀여움 받는 어느 웹툰 작가처럼...)


뮤지컬 [시라노]를 볼 때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순간이 있다. 1막 마지막에 여성 주연(사실 시라노라는 남성 캐릭터 원탑극이지만)인 록산이 결혼식 직후 전쟁터로 끌려가게 된 남편 크리스티앙의 안전을 군대의 대장이자 오랜 친구 시라노에게 부탁하는 씬이 있다. 시라노는 록산을 짝사랑하고 있는데 록산은 이 사실을 모른다. 시라노에게 '크리스티앙의 방패가 되어 지켜줘요'라고 록산이 말하자, 옆 자리에 앉은 관객이 질렸다는 듯 "뭐야~"하고 짜증을 냈다. 연극 뮤지컬에 두 여자를 사랑한 남성 주연은 넘쳐나는데도 불구하고, 여성이 두 남자 사이에서 고민하거나 상대의 감정에 대해 전혀 짐작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우연히 삼각관계의 한 꼭짓점이 되면 어장관리녀로 비난받는 것이다.

그리고 뮤지컬 [아이다]에서 아이다가 마지막에 조국과 연인 사이에서 갈등하고 탈주 직전에도 연인을 찾는 행동에 비판점이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었다. 왜 좀 더 대의에 헌신하는 여성 캐릭터가 아닌가, 는 문제제기인 것이다. 극의 첫 넘버가 'Everystory is Love Story'인 데다가 그런 아이다와 라다메스의 선택이 전쟁을 멈추었다는, 결국 대의를 이루었다는 결말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래서 창작자들의 고민이 이해가 된다.

우선 오랫동안 여성 혐오적 문화에서 길러진 보통의 인간들은 자기 안의 편견과 싸워야 하는데 무엇이 학습된 허상의 여성인지를 구별해 내는 것부터 쉽지 않다. 게다가 록산의 예에서 처럼 여성 캐릭터들은 쉽게 비난받는 처지에 서기 때문에 캐릭터 조형에서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학습만화처럼, 옆에서 남자 캐릭터가 사고를 치고 멍청한 소리를 할 때 등장해서 똑똑한 말을 하는 여성 캐릭터를 만들게 된다. 말하자면 개념녀가 되는 것이다. 두 남자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서도 안 되며 성적으로 문란해서도 안 되고 자신의 욕망을 위해 누군가를 희생시켜서도 안되고 등등... 욕먹지 않는 여자를 만드는 게 기본이 되는 거다.

하지만 정의롭고 신념 있는, 진취적이기만 한 여캐는 딱히 맛이 없는 건강식처럼 매력이 떨어진다.


모순적인 말이지만 의식적으로 여성 캐릭터를 늘리고 조형에 고민을 더 해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여성이 아닌 그냥 인간으로 캐릭터를 만들고 읽어내야 하는데 이게 어렵다. 솔직히 그냥 관객인 나도 너무 어렵다.

창작자들도 관객들도 여성 캐릭터 앞에서 갑자기 '여자도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은 듯 서툴어지고 낯설어한다.

여성4인극 뮤지컬 [리지]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 건,

무대 위에 일단 여자가 있어야 '매력'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지난해 여성 영화제에서 [우먼 인 할리우드 This changes Everything]을 봤다. 내게도 익숙한 성공한 할리우드의 여성 배우들이 전면에 나와 영화계의 성차별을 증언하는 것도 인상적이었지만 무엇보다 내 눈과 뇌를 번쩍 뜨이게 만들었던 건 통계였다.

2005년 배우 지나 데이비스와 페미니즘 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함께 설립한 미디어 젠더 연구소는 안면 인식 등 다양한 기술을 이용해서 미디어 속 캐릭터의 성비 불균형을 통계로 만들었다. 그 결과 가운데는 영화 속에 남성 캐릭터의 대사량이 70%가 넘는다는 데이터가 포함되어 있다.  (*현재 연구소 홈페이지에 정리된 2019년 통계를 보면 좀은 나아지고 있나 보다. Geena Davis Institute on Gender in Media 홈페이지)

 

영화 [우먼 인 할리우드]

불평등을 숫자로 확인하며 통계의 힘이 이렇게 강하구나, 생각했다. 모든 변화는 현상에 대한 진단으로부터 시작되니까 정책을 수립하기 전에는 통계 조사가 필수적으로 선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연극 뮤지컬에서는 주 관객층이 2030 여성이라는 통계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예매처 홈페이지만 들어가 봐도 나와있다) 정작 무대 위의 성비에 대한 통계는 없다. 나는 찾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서두에 언급한 유튜브의 캐릭터 투표는 막연하게 남캐 중심 극이 많다는 의심이 현실이라는 걸 깨닫게 해 준 것이다.


와우, 남캐가 이렇게 많다니! 여캐가 이렇게 없다니!! (그리고 인기도 없다니...)


이 현실을 보고 있자면 진정한 여성 서사라느니 매력적이고 입체적인 여성 캐릭터 같은 말이 모두 부질없이 느껴진다. 일단 무대에 여성 캐릭터가, 여자 배우가 설 자리가 있어야 하지 않은가.

일단은 어느 정도 양적 팽창이 선행되어야 질적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법이다.

수적으로 절대적인 열세인데 그 가운데에 다양성을 운운해봤자 그게 무슨 생산적인 담론이 될까.


남성 서사라는 말은 없지만 여성 서사라는 말이 존재한다는 것도 사실 여성 캐릭터 중심극이 얼마나 소수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가뭄에 콩 나듯 그동안 남성 배우가 연기해 오던 캐릭터를 여성 배우가 하는 젠더 프리 캐스트가 발표되면 시선이 집중된다. 비록 그것이 토크니즘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지금 그런 걸 따져 골라 먹을 만큼 차려진 음식이 많지 않은 것이 이 바닥의 상황이다.

일단 토양이 갖춰져야 싹이 틀 수 있고, 충분한 공간이 주어져야 뿌리를 뻗고 가지를 뻗고 큰 나무로 성장할 수 있을 텐데 무대 위의 여성 캐릭터들의 자리는 너무 협소하다.

아직 제대로 된 통계조차 없고 '무대 위의 성별 불균형'에 대한 문제의식도 제대로 공유되지 않으니 우리는 아직 씨를 뿌릴 밭조차 갈지 않은 상태일지도 모르겠다.



젠더프리 캐스팅: 연극 [아마데우스]에서 살리에리를 연기하는 차지연 배우 (콘스탄체 역은 홍서영 배우)




관객으로서 여성 주연극을 의식해 챙겨 관람하는 행동을 하거나 남성주연극에서도 여성 캐릭터들을 다분히 의도적으로 부각해 후기를 쓰는 행동을 유난이라고, 심하면 PC충 또는 잘못 먹은 페미니즘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다. (실제로 직간접적으로 들어본 말임.)

솔직히 말하면 난 올 남캐극은 웬만하면 피하는 데다가 캐스팅이 발표되면 성비부터 확인할 만큼 누군가의 기준으로 굉장히 편협한 사람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신영복 선생은 [나무야 나무야]에서 미운 아이에게 떡 하나 더 주는 건 그동안 누적된 마이너스를 상쇄하는데도 턱없이 부족하다, 는 말을 한 적 있다.

여성극에 대한 의식적인 소비, 무대 위 성비에 대한 문제제기를 계속하는 건, 미움받아온(혹은 소외된) 아이에게 어떻게든 떡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은 인지상정 같은 것이기도 하고 기울어진 운동장의 경사도를 조정하려는 노력이다.


게다가 극은 무대 위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다.

CSI효과라는 말이 있다. 미국 드라마 시리즈인 CSI에 여성 법의학자가 등장하는데 이 드라마 이후 법의학 전공자의 여성 비율이 크게 늘었고 현장 성비도 반반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극을 극으로만, 캐릭터를 캐릭터로만 보자는 건 너무 순진한 생각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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