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8월 관극 정산
총 3개 작품 8회 관극
-뮤지컬 [렌트]
긴 후기를 쓴다던 다짐만 하고 해를 넘기게 생겼다. 7월 5일은 [렌트]20주년 홈커밍 데이라 밤공에 이전 시즌 출연자들이 함께 무대에 올랐다. 죠앤의 부모 역할로 초연의 남경주, 최정원 두 분이 올라와 크게 환호를 받았고 크리스마스 벨 씬에서도 박준면 배우를 비롯해 여러 배우들이 무대에 올랐다. 커튼콜 때는 모두 마이크를 잡고 렌트와 무대에 대한 절절한 애정을 고백하기도 했고. 내가 애정 하는 배우들도 커튼콜에서 만날 수 있어서 행복했던 홈커밍데이.
-뮤지컬 [펀홈]
올해 하반기 최고의 기대작이었던 [펀홈]. 올해 라인업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얼른 원작인 앨리슨 벡델의 [펀홈]을 사서 읽었는데 원작에서는 앨리슨이 화자이다 보니 도드라지지 않았던 것, '이것은 앨리슨 벡델의 성장기다'라는 게 극에서는 굉장히 잘 드러난다.
알려진 내용처럼 앨리슨 벡델은 레즈비언이고 처음 부모님에게 커밍아웃한 직후, 아버지 브루스가 클로짓 게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것에 대해 아버지와 제대로 대화를 나누기도 전에 브루스는 죽는다. 앨리슨은 그 죽음을 자살이라 믿는데 혹시 그것이 자신의 커밍아웃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버지가 죽었던 나이 언저리가 된 앨리슨은 남은 편지며 어머니의 증언 등을 통해서 아버지와의 기억을 복원해간다. 그리고 그 안에서 모든 상처를 껴안고 성장하는 건 앨리슨 자신이다.
9세 앨리슨과 19세 앨리슨, 43세 앨리슨은 연령이 다른 세 배우가 연기하는데 두 개의 넘버에서 서로를 응시하고 응원과 애정의 눈빛을 주고받는 장면은... 지금 쓰면서도 눈물이 난다.
-유니버셜발레단의 [오네긴]
얼마만의 발레인가. 심지어 이렇게 재밌다니! 취미 발레를 배우게 되면서 가끔 공연을 보는 수준이라 사실 발레에 대해 잘 모른다. 여전히 연극 뮤지컬을 볼 때처럼 서사를 위주로 보는 것에서 별로 벗어나지 못했다. 어쨌든 그런 내가 보기에 [오네긴]은 클래식 발레 중에서 드물게 내 복장을 터뜨리지 않는 극. 지젤이나 라 바야데르 보고 나면 끝나고 나오면서 "그 새끼를 죽였어야 하는데"라고 이를 갈게 되는데 오네긴은 그게 없다.
남주 오네긴은 대놓고 오만한 바람둥이(다른 극에서 남주들이 바람피우고 피해자인 척하는 것과 달리)이고 타티아니는 문학을 사랑하는 여성이며 자신이 반한 남자에게 먼저 고백의 편지를 쓸 만큼 적극적이다. (물론 로맨스 소설에 빠진 순진한 소녀, 로 취급될 수도 있다.) 오네긴에게 무례하게 거절을 당한 타티아니는 다른 남자와 결혼해서 사교계 명사가 되는데 2막에서 이렇게 눈부신 타티아니를 몰래 훔쳐보는 오네긴은 완전 개그캐. 쳐다보다가 타티아니가 돌아보면 갑자기 화분 만지고 ㅋㅋ 타티아니와 오네긴의 2막 파드되는 진짜 아름답고 열정적인데 그 결론은 더욱 맘에 든다. 오네긴 최고!!! 매년 올려줘라!!
총 3개 작품 14회 관극
-뮤지컬 [렌트]
아 렌트 생각하면 난데없이 우는 사람 된다. 8월 즈음 코로나19 2차 유행이었다. 뮤지컬 [렌트]는 락뮤지컬임에도 이미 함성을 빼앗겼고, 극 중 모린쇼에서 관객과 함께 '음메~'를 외치는 것도 금지되어 음메 대신 박수만 치던 와중이었다. 하지만 광화문 집회로 문제가 된 종교단체가 "공연은 왜 안 잡냐!"라고 지금껏 2차 감염 없이 안전 수칙 지키며 (문진표-체온측정-마스크착용-극장내 생수섭취까지 금지-애초에 숨소리도 크게 안내는 연뮤 덕들) 공연을 진행해왔던 공연계는 갑자기 타깃이 됐다. (심한 욕) 이 때문에 [렌트]는 8월 23일 예정이었던 폐막을 하루 당겨 갑자기 22일 조기 폐막을 하게 된 것이다. 22일 공연장 가는 길에 이미 눈물이... 1막이 시작되고 배우들이 무대에 등장하는데 로저 등장에서 박수 1회는 통상적인 반응이었지만 이후 다른 배우들 등장에 다시 박수가 길게 이어졌고 무대 위의 배우들도 결국 눈물이 터졌다.
그야말로 객석도 울고 무대도 울고.
모린쇼에서 '이곳 사이버 월드에 진짜는 없어. 외양간도 공연장소도'라는 가사가 있는데 공연장소를 말할 때 전나영 모린의 목이 매는 게 느껴졌다. (나는 또 울고.. 이거 쓰면서도 운다) '음메~'는 가진 것 없이 떠도는 뉴욕의 노숙자들, 예술가, 보헤미안의 유일한 저항수단이었는데 그것조차 외칠 수 없어서 박수를 치는데 그것도 너무 서러워서...
너무 사랑했던 나의 렌트. 잘 가.
-뮤지컬 [마리퀴리]
3월에 너무도 사랑했던 그 극 [마리퀴리]가 극장 사이즈를 키워서 다시 왔다.
애정 했던 만큼 참 아쉬움이 많았던 재연인데... 그래도 대학로에 처음 온 옥주현의 마리 퀴리를 봐서 좋았다. 라듐송을 지앤하의 얼라이브2처럼 부르는 옥마리를 봐서 좋았어.
-뮤지컬 [펀홈]
10월까지 예정되어 있던 펀홈도 코로나 시국에 조기종영을 택했다. 이렇게 가면 언제 다시 올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8월은 거의 펀홈에 다 털어 넣었는데 역시 그래도 아쉽다. 방진의 앨리슨과 성두섭 브루스의 텔레폰와이어, 이아름솔 헬렌의 데이즈... 그리고 시현앨과 가은앨의 링 오브 키... 다시 듣고 싶어. 너무 소중했던 8월 이해랑 펀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