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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수파 Oct 30. 2019

소년, 소녀가 되다

<걸> 2018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6살은 '라라(빅터 폴스터)'에게 남다른 나이다. 드디어 '빅토르'라는 남자의 삶을 벗고, 여자로서의 삶을 시작할 수 있게 된 때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새로운 학교로 전학을 가고, 여자 무용수로 발레 학교에 입학하며, 성기 수술을 위해 호르몬 치료를 받는 라라. 그러나 학교 선생님은 '라라가 같은 탈의실을 쓰는게 불편한 학생이 있으면 손들어보라'며 결정적으로 라라를 '다른' 사람 취급하며, 아이들 역시 라라에게 은근한 거리감과 이질감을 나타낸다. 발레는 쉽기라도 한가? 다른 여자아이들이 유아 때부터 해온 걸 이제와서 하려 하니 될리가 없다. 그래서 선생님은 라라의 발을 두고 "절대 바꿀 수 없는 것이 있다"고 말하는데, 라라는 어쩐지 그것이 자신의 발만 가리키는 말 같지가 않다. 


결국 남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당연하게 얻은 걸, 라라는 두 배로 노력하고 투쟁해서 얻어내는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아이들 사이에서 남들과 다른 자신의 몸이 들킬새라, 잔뜩 몸을 웅크리고 긴장한 그녀의 모습은 마치 결의에 가득 찬 작고 연약한 새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그녀는 단 한번도 불공평하다고 불평하거나, 힘들다고 우는 법이 없다. 목소리는 언제나 불안하게 떨리고, 눈동자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지만 끝내 울먹임이나 눈물이 나오는 일은 없다. 대신 그녀는 눈물을 삼키고 끝없이 인내한다. 아침마다 성기를 테이프로 칭칭 감은 채로 수업과 발레를 하고, 발에 무리를 덜 가게 하기 위해 굶고, 아이들의 따돌림과 멸시를 묵묵히 감당하며, 그 와중에 동생 '루이스'를 엄마 대신 챙기기까지 한다. 그녀가 얼마나 오랫동안 참고 기다리는 일에 이골이 났는지 엿볼 수 있는 장면들이다.



아마도 그것은 드디어 여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 부여한 힘이었을 것이다. 라라는 오로지 자기 자신이 되기위해, 온 세상과 싸우고 있다. 그러나 영양 실조로 발레 무대와 수술대 모두 오르지 못하게 되자 라라는 서서히 무너져간다. 무엇보다 아버지와 상담의는 그녀가 이미 여자로 보인다고, 여자가 다 되었다고 말하지만 매일 자신의 몸에서 이질적인 성기가 느껴지는 라라에겐 충분할리가 없다. 트렌스젠더에게 '굳이 수술까지 해야하느냐'는 말을 함부로 던져서는 안되는 이유다. 그래서 아이들로부터 성기를 내보이라고 강요당하고, 좋아하는 남자아이 앞에서 발기를 하게 되는 일들은 라라를 한계에 다다르게 만든다. 그리하여 라라의 칼 끝은 이 모든 일의 원흉, 자신의 성기를 향하고야 만다.


올해 칸 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한 <걸>은 부산영화제 상영작 중 필자의 최대 기대작이었다. 과연 주연을 맡은 '빅토르 폴스터'는 남성임을 눈치채기 어려울 정도의 외모와 실제 무용으로 다져진 육체, 거기에 첫 작품임에도 뛰어난 연기력으로 높은 싱크로율을 선보인다. 그가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것에 대해 반박할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 이유다. (실제 오디션 역시 남성, 여성의 구분 없이 누구나 지원할 수 있게 이뤄졌다는 후문이다.)  무엇보다 트렌스젠더의 삶과 심리를 한치의 자극성 없이 이토록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을 본 적이 없다는 점에서, <걸>이라는 영화의 존재가치는 충분하다. 다만 그것을 1시간 49분 동안 너무 섬세하게 그려져있다보니, 관객도 라라와 함께 인내심을 시험당하는 기분이 든다는게 흠이다. 이마저도 어쩌면 감독의 의도였을까? 편집을 통해 몇몇 장면을 걷어냈다면 관객에게 더 쉽게 다가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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