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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수파 Oct 30. 2019

최악의 사기가 된 최고의 축제

<파이어> 2019


2017년, 미국과 SNS에서 안 좋은 의미로 크게 화제가 되었던 '파이어 페스티벌'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2년 만에 나왔다. 얼마나 이슈였으면 또 다른 스트리밍 서비스인 'Hulu'에서도 자체 다큐멘터리가 나왔을 정도다. 대체 파이어 페스티벌이 뭐길래 난리냐고? 파이어 페스티벌의 공동주최자인 '빌리 맥팔레인'은 원래 유명인들을 생일파티, 클럽 등에 직접적으로 섭외할 수 있는 '파이어 앱'을 내놓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그 유명인들을 데리고 음악축제를 열면 끝내주겠다!'라는 직원 말 한마디에 꽂히고는, 개발하던 앱을 때려치우고 즉흥적으로 '파이어 페스티벌'로 갈아타버린다. 그리곤 아름다운 섬에서 슈퍼모델들을 잔뜩 섭외해 지상천국 이미지를 연출하고, 유명인들을 빌미로 SNS에 엄청난 홍보를 하기 시작한다.


과연 이 홍보는 사람들의 눈과 판타지를 자극했고, 하나에 무려 4000달러(한화로 약 480만원)에 달하는 티켓이 전부 매진될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사실 축제는 말만 유창하고 껍데기만 화려할 뿐, 전기부터 수도, 화장실, 숙소, 음식, 쓰레기 처리, 무대 그 무엇 하나 제대로 준비된 것이 없는 상태였다. 세상에서 본 적 없는 파티를 속삭이는 그들은 정말로 존재하지도 않는 환상을 팔고 있었던 것이다.


사기극의 주범들인 빌리 맥팔레인과 자 룰.


파이어 페스티벌은 면면을 살펴보면 더 기가 막힌다. 축제 직원들은 베테랑도 어려워하는 음악 페스티벌을 단 한 번도 열어본 적 없는 이벤트 담당자, 불과 6개월 전에 면허를 따고 비행기를 구입한 조종사, 한 번도 연예인을 섭외해본 적 없는 섭외 담당자들로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니 축제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그러나 가장 문제는 주최자인 빌리 맥팔레인이었다. 긍정적이다 못해 안일했으며, 독재적이기까지 했던 그는 '아몰랑 다 잘 될 거야'만 앵무새처럼 읊으며 주변의 현실적인 조언으로부터 귀를 닫고, 심지어 합당한 우려를 표하는 직원들을 모조리 잘라버렸기 때문이다. 불과 축제 몇 주 전에 말이다.


거기다 빌리를 비롯한 책임자들의 말실수로 인해 예정되었던 섬에서 쫓겨나는 바람에, 바하마의 한 지역을 급하게 섭외한 후 무인도처럼 포토샵 처리를 하기까지 했다. 바하마 현지인들을 섭외해 미친 듯이 급하게 지은 텐트들 역시 홈페이지에 그려진 럭셔리 숙소와는 하늘과 땅 천지였다. 그러나 하늘은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어보이는 축제를 위해 클라이맥스를 준비해두고 있었으니... 하필 축제 당일날에 엄청난 폭풍우가 닥치는 바람에 그나마 준비해둔 것들마저 엉망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직원들도 어이가 없어 밤새 웃을 정도였다.



축제가 이 지경이었다면 준비과정에서 이미 말이 나오지 않았을까, 왜 사람들은 그럼에도 축제에 참가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미 파이어 페스티벌에 의문을 품은 한 사람이 '파이어 페스티벌 사기'라는 이름의 SNS를 만들어 축제의 실체를 폭로했으며, 축제의 주요 관계자 역시 보다 못해 직접 손님들에게 축제의 실상을 고백하고 오지 말라는 권고의 이메일을 보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충격적이게도, 이미 축제가 약속한 환상에 눈이 먼 손님들은 이런 쓰라린 진실은 보려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손님들은 창문이 손으로 뜯길 정도로 허접한 비행기를 타고 섬이 아닌 섬으로 향했으며, 시골 학교에서 쓸 것 같은 노란 스쿨버스를 타고, 더러운 데다 그마저 충분하지도 않은 난민 텐트에 도착했다. 사람들은 컨테이너 트럭에 쓸어 담아 넣은 짐들 중 자신의 것을 찾기 위해서 서로를 짓밟아야했으며, 한 밤중에 매트리스와 텐트를 차지하기 위한 전투가 벌어졌고, 월급을 받지 못해 분노한 현지인들의 폭행과 인질의 대상이 되었다. 한마디로 돈을 받아도 가고 싶지 않은 <파리대왕>같은 무인도 지옥을 무려 400만원 가량을 내고 몸소 체험하러 온 셈이었다. 결국 이미 상황을 수습하기엔 늦었다 판단한 빌리 맥팔레인과 직원들은 손님들의 빗발치는 항의와 취소 요구를 피해 007 작전처럼 섬을 빠져나가고, 남겨진 손님들은 이 지옥을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기 위해 발을 동동 굴렀지만 축제 측에서 나갈 비행기를 준비해놓지 않은 탓에 공항에 갇히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따로 없었다.



이 정도 되면 축제가 어디까지 추락할까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지켜보게 되는데, 실제 축제 현장이 지옥일수록 정작 축제를 가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선 축제가 벌어졌다. 무인도 축제 하나를 가기 위해 400만원 가량을 지출할 수 있는 이들이 곤경에 처한 모습을 보면서 대중들은 고소함과 통쾌함을 느꼈던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파이어 페스티벌은 끝난 뒤에도 끝나지 않았다. 멍청한 사장 때문에 개고생만 한 직원들은 월급을 받긴 커녕 상당수의 빚을 져야 했기 때문이다. 특히 부하직원들을 바하마에서 계속 봐야 하는 처지라, 비상금을 털어 그들의 월급을 대신 줘야 했다며 눈물 흘리는 바하마 아주머니의 모습은 정말 안타깝더라. 돈을 받아도 될까 말까 한 상황에서 돈을 주고 일하다니... 그렇게 파이어 페스티벌은 손님들에게도, 직원들에게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악몽으로 남았다. 단, 주최자들만 빼고 말이다(!)


사실 빌리 맥팔레인은 파이어 페스티벌 이전에 '매그니시스'라는 사업을 펼친 적이 있었다. 매그니시스는 다른 사람들에게 있어 보이는, 뭔가 특별한 일을 하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는 신용카드였는데, 이것을 일종의 상류사회처럼 멤버십 클럽으로 전환했다. 파이어 앱이 파이어 페스티벌로 커진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매그니시스 역시 파이어 페스티벌처럼 똑같이 거짓말과 사기로 점철되어 끝이 났다.



그러니까 빌리 맥팔레인은 존재하지도 않았던 페스티벌처럼, 겉으로만 있어 보이는 신용카드처럼 본질이나 진실보다는 겉으로 보이는 껍데기와 허상만이 중요한 사람이다. 비싼 자동차를 끌고, 슈퍼모델을 옆에 끼고 광란의 파티를 즐기며 상류사회를 누리는 것만이 인생의 목표이자 전부이며, 그렇기에 이를 위해서라면 거짓말과 사기를 비롯한 그 무엇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 때문에 애꿎게 피해를 본 사람들에게 보상을 하거나 책임을 지긴커녕, 다른 사람을 내세워 또다시 존재하지도 않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사인회나 멧 갈라 티켓을 판매한다는 내용의 사업(사기)을 펼친다. 그것도 파이어 페스티벌 손님들을 대상으로 말이다. 이 정도면 뻔뻔한 걸 넘어서 정신병 수준이 아닌가 싶은데, '그는 소시오패스'라는 직원의 단호한 대답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다.


결국 FBI에게까지 쫓기던 빌리 맥팔레인은 6년간 감옥에 갇히게 되었지만, 영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빌리 맥팔레인에게 속고, 그라는 괴물의 몸집을 키워준 사회와 우리 자신에게 묻는다. 현실과 괴리된 환상만을 전시했던 파이어 페스티벌과 SNS, 빌리 맥팔레인은 사실 매력적이지 않은 진실보다 화려한 허상을 보기를 택한 우리 자신과 닮아있지 않느냐고 말이다. 그래서 영화는 빌리 맥팔레인이란 괴물과 파이어 페스티벌 같은 사기극은 언제든 또다시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블랙코미디를 방불케 하는 재미 뿐 아니라 자본과 SNS, 허상에 중독된 현대인들에게 날카로운 메시지까지 던지는, 내가 꼽는 올해 최고의 다큐멘터리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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