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스친 눈빛과 대화의 호흡이 남기는 관계의 시작점
최근, 나의 심기를 크게 불편하게 한 관계가 있었다.
어쩌면 첫 만남부터 크게
호감이 가지 않았던 탓이었을까.
남녀 관계를 떠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에서,
누군가는 눈빛만으로도 호감이 생기지만
또 누군가는 아주 큰 이유 없이 무매력이 되기도 한다.
어투, 태도, 눈빛이 한 번에 흡수되면서
‘이 사람은 나랑 잘 맞겠다’ 혹은
‘이 사람의 속도는 부담스럽다.’는 느낌이 든다.
본능적으로 내 안전지대를 재빨리 캐치하는 능력은
아마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다만 반응이 둔하거나, 너무 민감하거나—
사람의 기질에 따라 그 정도는 다르게 나타난다.
나는 특히 이 부분이 첫 만남에서
어느 정도 정해지는 편이다.
상대의 가치관을 먼저 파악하려 하거나,
이미 본능적으로 가늠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첫 단계에서 호기심이 생기면
자연스레 그것이 호감으로 이어지고,
다음 만남을 기다리게 된다.
하지만 호기심이 생기지 않을 때도 있다.
좋은 사람 같지만 공통점이 보이지 않거나,
대화가 지루하거나,
옆에 두고 싶지 않다는 느낌이 들 때.
그렇다고 이런 첫 느낌에만 의존하다 보면
놓치는 인연도, 오해도 분명 생길 수 있다.
20대 소개팅 시절,
첫 만남이 별로여도 남자는 세 번은 만나봐야 한다고 하던
선배들의 말이 떠오른다.
그건 이성뿐 아니라 동성 관계에도 필요한 시간이다.
상황에 따라, 그 시간 안에서 관계는 다르게 해석되고
다르게 보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몇 달 전 읽은 말콤 글래드웰의 『타인의 해석』에서도
우리가 ‘맞다’고 느끼는 해석이
의외로 틀릴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를 봤다.
물론 머리로는 알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를 함부로 평가하지 않으려 경계한다.
또, 늘 내가 좋은 사람만 만나고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살 수는 없는 게
사회라는 것도 안다.
그래서 첫 느낌이 좋지 않았음에도
수동적인 감정 노동을 하며 관계를 이어가야 함을
피할 수 없는 것도 안다.
그런데 대체로 첫 느낌이 결국 맞는 경우가 많았다.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이건 순전히 내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다.
동물도 자기가 누울 자리를 보고 눕는다.
고양이도 자신을 보호하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간택’한다.
그처럼 나 역시 본능적으로 선택을 하는 것 같다.
물론 편견에 가까운 비과학적 이야기일 수 있다.
서두에 언급한 최근 일화를 적어봐야겠다.
평소 가볍게 알고 지내던 지인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이사한 바로 다음 날, 점심 모임을 하자는 제안이었다.
나는 셀프 포장이사를 했고,
다음 날은 짐을 풀어야 했기에
정중히 어렵다고 거절했다.
하지만 상대는 내 거절에 불쾌함을 드러내며
되레 모임을 밀어붙였다.
“왜 꼭 이사 다음 날 짐을 풀어야 하느냐”는
식의 반응에
그 순간, 나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태도에서
깊은 불쾌감과 차가운 거리감이 밀려왔다.
나는 유연한 사람이 좋다.
상대의 감정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 좋다.
이 글은 지극히 나만의 해석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극히 자기식대로만 관계를 만들려는 사람’을 보며
오랜간만에 진한 피로감을 느꼈던 이야기다.
그래서 다시금 든 생각을 솔직하게 담아본다.
경계와 직감 사이에서 마주한,
누군가와의 첫인상은 결코 가볍지 않다.
처음 스친 눈빛과 대화의 호흡은
앞으로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거리와
가까워질 수 있는 가능성을 동시에 알려준다.
어쩌면 그 시작점에서 이미,
많은 것이 조용히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