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그렇다는 그 고유성을 알고 나면?

어딘가 마음이 불편하다면, 각자의 고유성이란 사실을 바라보자.

by Maybe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낸 날들이 있었다.

그때는 그것이 나를 위한 삶의 태도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마음이 다가온다.

삶은 단맛과 쓴맛을 구분하는 일이 아니라,
그 모든 맛을 지닌 고유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라는 것을ㅡ.

그래서 이 브런치북의 연재 제목도〈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내어 준 날>로 정했던 것이다.
생각보다 더 유약한

나의 마음을 돌아보기 위함이었다.

글을 쓴다는 건 결국 삼켜둔 것을 꺼내어 내어놓고,
다시 나를 다독이며 받아들이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살아가며 새롭게 배웠다.
달아도, 쓰더라도 가끔은 ‘삼키고 받아들여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누구에게든, 원래 그런 성질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나면,
평화를 찾을 수 있는 쪽은 바로 내 쪽이다.

이해할 수 없는 상대를 두고ㅡ
“왜 저렇게 생각하고, 왜 저렇게 말할까”라는 시선은 되려 나를 힘들게 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사실 상대, 아니 누구도 세상엔—

영원한 악역도, 완벽한 아군도 없다고 생각한다.
단지 나를 불편하게 했다는 사실만으로

누군가를 함부로 규정할 수 없는 것 또한, 불편한 진실이다.


물은 0도가 되면 얼어붙고, 100도를 넘으면 끓는다.
그것은 그저 물의 성질일 뿐, 착하다거나 못되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사람도 마찬가지다.
원래 그런 성질을 지닌 존재일 뿐이다.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내 마음은 복잡할 이유가 줄어든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불필요한 확대 해석을 덜어내고,
그 사람의 ‘고유한 성질’을 관찰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마치 과학자가 물질의 성질을 기록하고 분석하듯,
있는 그대로를 이해하려는 태도 말이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관계 속에서

나의 위치도 명료해진다.

예를 들자면 초콜릿이 달기도 하고,

달면서 쓴맛이 섞이기도 한다.
다크 초콜릿의 경우엔 쓴맛이 더 강하게 남듯이,
사람에게도 저마다의 맛과 색이 고유하게 섞여 있다.
그 사실을 인식한다면,
나는 지나치게 방어적이지 않으면서도 상처받지 않고,

적당한 간극의 거리를 스스로 찾아가며

나의 고유성을 이해하고,

상대의 고유성도 더불어 존중할 수 있다.

그렇게 관계는 단순히 “착하다, 나쁘다”로만

간단하게 정의할 수 없다.

상대적이기도 하고,

때로는 주관적으로 비칠 때도 있으며,

여러 각도에서 해석될 수 있는 것일 뿐이다.

백 퍼센트 누군가를 이해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니,

고유성만이라도 존중하자는 (존중이 어렵다면,

그래 넌 그렇게 너답게 생각하겠지 정도까지)

생각에 이르니

어딘가 불편하던 내 마음이 편안해진다.

무엇보다도, 이 단순한 자각과 인지만으로도
관계는 훨씬 심각하지 않고 가벼워졌으며,
복잡하던 생각이 놀라울 만큼

간결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내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ㅡ
그 맛의 고유함,

너와 나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거기서 또 다른 마음의 다스림과

통찰을 넓혀가는 일에 노력해야 함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