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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ram Nov 19. 2021

너와 세계여행을 간다면

쥘 베른 <80일간의 세계일주>

선량한 영국인은 이처럼 진지한 내기에 절대 농담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가 80일 안에, 그러니까 1920시간 아니, 11만 5200분 안에 지구를 한 바퀴 돌 수 있다는 데 2만 파운드를 걸겠습니다. 받아들이겠습니까?
-쥘 베른 <80일간의 세계일주> 중에서





<80일간의 세계일주>의 주인공 필리어스 포그는 꽤나 이성적이고 정확한 사람이야. 일상을 꼼꼼하게 계획했고 주변을 정돈하는 사람이었지. 프랑스 작가인 쥘 베른이 주인공을 영국인으로 설정한 건 아마 포그의 냉철한 성격을 조금 더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일거야.

주인공 필리어스 포그는 80일간의 세계일주를 떠나게 돼. 재인아, 어쩐지 안 어울리는 것 같지 않니? 면도물이나 마시는 물의 온도까지 매번 같은 온도의 물로 사용할 정도로 정확하고 딱딱한 성격의 포그와 세계여행이라니 말이야. 엄마에게 세계여행은 자유로움의 대명사 같은 느낌이거든. 지루한 일상과 갑갑한 역할의 굴레에서 벗어나 전 세계를 누리며 현지인과 소통하고 24시간의 주인이되어 사는 삶, 그게 바로 세계여행 아니겠어? 엄마는 사실 그런 보헤미안 느낌의 주인공을 떠올리며 책을 펼쳤는데 책 속엔 엄마의 생각과 전혀 다른 인물이 등장하고 있었어.


@Pamjpat

필리어스 포그는 개혁 클럽 회원들과의 내기를 계기로 세계여행을 떠나게 돼. 80일만에 세계일주를 할 수 있다는데 2만파운드를 건 포그와 절대 불가능하다는데 각각 4천 파운드를 건 개혁클럽 회원들간의 내기였지. 당시는 비행기도 차도 없던 시절이거든. 배와 기차에만 의존해 과연 80일만에 세계일주를 마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기도 했지만 정확한 성격의 주인공답게, 모든 변수들을 고려한 계획이라 하니 믿어볼 수밖에.  

철두철미한 포그의 성격과 달리 여행은 다이나믹 그 자체였어. 도착하는 도시들마다 사건과 사고가 발생해. 같이 동행한 하인인 파스파르투는 포그와 달리 상당히 외향적인 사람이었는데 그가 가끔 어이없는 사고를 치는 바람에 일촉측발 상황에 처하기도 하고, 영국 형사인 픽스는 포그를 영국 은행을 턴 도둑으로 오인하여 그의 여행에 곤란한 일을 만들기도 하지.


근데 있지, 재인아. 엄마 생각엔 말이야. 여행이란 본래 그런 것 같아. 아무리 계획을 세운다고 해도 뜻밖의 일과 마주할 수 밖에 없어. 일상 속의 계획도 철두철미하게 지키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데, 하물며 익숙하지 않은 낯선 여행지에서의 계획은 애초에 그대로 지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지 않을까? 누구를 만나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물론이거니와 뜻하지 않게 몸이 아플 수도 있고, 날씨가 생각과 다를 수도 있거든. 모든 건 변수 투성이! 

포그가 계획한 세계 일주는 영국의 런던을 출발하여 프랑스의 파리, 이집트의 수에즈, 예멘의 아덴, 인도의 뭄바이와 콜카타를 거치고, 싱가포르와 홍콩, 일본의 요코하마,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와 뉴욕, 영국의 리버풀을 지나 다시 런던으로 돌아오는 긴  여정이었어. 그 여정 동안 포그는 기차가 끊겨 코끼리를 타기도 하고, 배에서 배로 갈아타기도 하고, 썰매를 타고 이동하기도 하고, 해적이 되기도 하지. 그 뿐이야? 뜻하지 않게 불행에 빠진 여인을 구하기도 하고, 법정에 서기도 하고, 총을 들고 결투를 하기도 하지. 그 정확하고 계획적인 포그가 이정도였으니 아마 일반적인 사람의 여행이란 어떨지 상상이 가지? 여행은 변수 투성이야. 

근데 여행에 있어 재미있는 게 뭔줄 아니 재인아? 지나고 나면 계획했던 일이 잘 맞아떨어졌던 기억보다 그 골치덩이 변수가 더 추억이 된다는 점이야. 길을 잃고 헤매다 발견한 골목의 멋진 풍경, 우연히 만났던 다른 여행자와의 대화, 맛집을 찾다 줄이 너무 길어 포기하고 들어갔던 식당의 뜻밖의 별미... 이런 계획하지 않은 즐거움은 추억이란 이름으로 우리 마음속에 오래오래 머물지. 절대 절대 계획할 수 없는 여행의 우연한 선물이야.  

포그도 그랬을 거야. 결국 포그는 우여곡절 끝에 내기에 이기게 돼. 포그는 이 여행이 끝난 뒤 내기에 이긴 걸 중요하게 생각할까? 아닐 거야.  사랑하는 아내 아우다 부인과의 운명적 만남, 고용된지 하루만에 세계여행을 함께했던 파스파르투의 충성스러움(다소 사고뭉치였던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자신을 도둑으로 몰았던 어처구니 없는 픽스 형사의 오해를 떠올리며 피식- 웃곤 하겠지. 


픽사베이 @StockSnap

엄마는 언젠가 재인이 너와 세계여행을 하고 싶어. 세계일주는 아니더라도, 각자 가고 싶은 도시를 골라 차례로 방문하고 싶어. 너의 여행스타일은 어떨까? 하나부터 열까지 계획하는 스타일일까, 그날 그날의 날씨와 기분에 맞춰 움직이는 무계획 스타일일까. 엄마는 후자거든? 그런데 네가 어떤 스타일이어도 상관없어. 엄마가 좀 아까 이야기 했지? 계획을 하든 계획을 하지 않든 여행이란 생각보다 내마음대로 되는 게 없거든. 그래서 재미있고, 그래서 피곤하지만, 그래서 또 가고 싶지. 


엄마는 재인이가, 네가 사는 도시와 여행지의 바람과 공기의 차이를 느낄만큼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지만, 현지의 누구와도 서스름없이 어울리는 포용력 있는 그런 여행자로 자라주면 좋겠다. 이 두 가지만 있으면 어딜 가든 너만의 즐거움을 찾게 될거라고 엄마는 생각해.  엄마도 그런 여행 동반자가 되어 줄게. 


-너와의 세계여행을 꿈꾸는,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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