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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ram Nov 28. 2021

시간의 주인으로 살고 있니

미하엘 엔데, <모모>

모든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시간을 갖고 있거든.
시간은 진짜 주인의 시간일 때만 살아 있지.
-미하엘 엔데, <모모>



재인아, 뉴스가 하나 있어. 엄마가 드디어 알아냈어. 엄마가 늘 바쁜 이유, 딱히 하는 일도 없는 거 같은에 언제나 시간이 모자르고 잠잘 시간이 부족한 이유. 놀라지 마. 엄마는 그동안 회색 신사들에게 엄마의 시간을 뺏기고 있었던 거야. 

회색 신사들이 누구냐고? 그 사람들은 아주아주 무서운 사람들이야. 사실 사람들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게, 인간들의 시간을 빼앗아 살아가는 존재이지. 아주 탐욕스럽고 교묘한 수법으로 인간들을 자극하고 꾀어내서 시간을 빼앗아가는 놈들이란다. 그놈들은 인간들에게 쓸데없는 일을 하지 말고 시간을 절약해서 사용하면 아낀 시간은 60세가 넘은 다음에 10배 넘게 돌려받을 수 있다고 꼬시지. 그놈들이 말하는 쓸데없는 일에는 늙고 병든 어머니를 돌보는 일, 손님 하나하나에게 정성을 쏟는 일, 좋아하는 여자를 위해 꽃을 사고 얼굴을 보는 일을 모두 포함한단다. 오직 생계를 위해 일하는 것에만 집중하도록 사람들을 조종하고 남은 시간은 깡그리 쓸어 모아 가져가버리지. 

휴. 엄마가 이 사실을 알고 얼마나 소름이 끼쳤는지 아니. 엄마도 모르게 엄마 또한 회색신사들의 조정을 받고 있던 거였어. 근데 이걸 어떻게 알았냐고? 모모가 그랬어. 


모모가 누구냐고? 그럼 지금부터 모모를 소개할께. 모모는 내 친구야. 동시에 너의 친구가 될 녀석이기도 하지. 모모의 특기는 '경청'! 맞아, 모모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줘. 사람들은 마음이 무겁거나 걱정거리가 생기면 늘 모모를 찾지 그리고 그 해결책을 얻어가곤 해. 모모는 그 동네의 최고의 카운셀러였어. 모모의 비결은 잘 들어주는 것, 그것 뿐이었지만 모모를 만나고 나면 사람들은 마음에 평화와 문제의 해결책을 얻어가곤 했지. 잘 들어주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재인이 너도 알 거야. 오히려 말을 하고, 의견을 주는 건 쉽지만 찬찬히 말하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며 들어주는 건 어지간한 인내와 포용력이 없다면 힘든 일이라고. 그 째깐한 모모가 근데 그 일을 해낸다는 거 아니겠어?


그런 모모에겐 친구가 많아. 또래 꼬마들부터 아주머니, 아저씨, 할아버지까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와 친해지고 모두모두 모모를 사랑하지. 모모에겐 가족도 집도 없지만 늘 모모를 찾고 챙겨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모모는 외롭지 않았어. 그런데 그러던 어느날 회색 신사들이 찾아와서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아가기 시작했어. 사람들은 예전의 여유로움을 그리워했지만 이전으로 돌아갈 용기는 내지 못했어. 늘 일을 했고 언제나 바빴지. 경제적으론 나아지고 있었지만 시간에 쫓겼고 친구를 만나거나 가족과 보낼 시간을 늘 하위 순위로 밀리곤 했지. 어떠한 문제든 간에 이해득실을 따져서 유리한 쪽으로만 움직였어. 마음이 시키는 쪽 대신 늘 머리의 의견을 따랐지. 모모 주위에 남은 건 아이들 뿐이었어. 아이들은 부모님이 바빠져서 오히려 시간이 많아졌거든. 아이들은 모모를 찾아왔고 모모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어. 옛친구들을 그리워하면서 말이야.


그러다 모모는 회색인간들의 존재를 알게 되고 사람들에게 그러한 사실을 알리려고 노력하지만 실패하고 말았어. 모모를 돕던 베프할아버지와 기기, 그리고 아이들도 각각의 이유모 모모의 곁을 떠나고 말지. 회색 인간들은 모모가 자신들에게 위협이 된다는 걸 깨닫고 모모를 없애려하고 모모는 카시오페아라는 거북이를 통해 시간관리자인 호라를 만나게 돼. 그리고 카시오페아와 함께 회색인간을 없애고 사람들에게 시간을 되찾아줄 계획을 세우지. 그 계획은 여러차례의 위기를 거쳐, 성공해. 참 다행이지 뭐야.


그런데 있지, 재인아. 엄마는 회색 신사들이 아직 살아 있다고 생각해. 그것도 엄마와 아주 가까운 곳에 말이야. 엄마도 재인이도 똑같이 24시간을 사는데, 재인인 바쁘지 않잖아. 유치원도 다니고, 엄마가 내준 숙제도 하고, 책도 읽고, 만들기도 하고, 그리기도 하고, 아인이와 놀아주기까지 하는데도 언제나 시간이 많은데 엄마는 바빠. 아침에도 점심에도 저녁에도 바빠서 심지어 밤에 잠을 자지 않고 남은 일을 하기도 해. (이 글도 새벽에 쓰고 있단다.) 아마 엄마는 하루에 10시간쯤은 회색인간들에게 아직도 뺏기고 있는 것 같아. 어떻게 해야 이 회색 인간들과 헤어질 수 있는 걸까? 어떻게 하면 내 시간의 주인이 될까?


답은 이미 모모가 이야기해줬어. 지금, 바로 지금을 살아야 한다는 거지. 과거에 얽매이거나 미래에 집착하는 대신 현재의 삶을 살아야 진짜 시간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말이야. 재인아 근데 있지, 그게 말은 참 쉬운데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해. 안타깝게도 엄마는 아직도 회색신사들이 주입한대로, '무언가 대단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거 같아. '옛날에 왜 이랬을까. 그걸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난 이러이러하게 살아야 해' 하고 엄마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사는 것 같아. 물론 무언가를 위해 노력을 한다는 것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그 노력이 현재의 무언가를 희생하면서 이루어지고 있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일이지. 얻는 게 있다면 잃는 것도 있는 것이 삶의 절대 진리이지만, 그 잃는 것이 과연 잃어도 좋은 것인가는 꼭,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해. 그런데 미래의 이루고자 하는것에 지나치게 매달리면 잃어버리는 것의 가치가 잘 안보이거나 작게 느껴질 수 있어. 엄마가 경계해야 할 것은 바로 그런 점 같아.


미하엘 엔데 작가의 <모모>는 아이들을 위해 쓰여진 동화이지만 엄마 같은 어른들에게 큰 울림과 자극을 주는 것 같아. 무지무지 찔리고 반성되고 얼굴 뜨거워지는 장면들이 많았어. 재인이에겐 이 소설이 어떻게 읽힐지 궁금하다. 회색인간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대부분의 어른들이 재인이처럼 아이들 눈엔 어떻게 보일까? 재인아, <모모>는 너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참 많은 책이야. 네가 이 책을 읽고 나면 적어도 한두시간 정도는 엄마에게 줘야 할거야. 너에게 묻고 싶은 게 참 많거든.  그럼 편지 기다릴게.


시간의 주인이 되고 싶은,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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