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실 건가요? 물론 1초의 고민도 없이 ‘이거요!’ 할 수 있는 확신의 취미를 가진 분도 계실 테지만 대부분 멈칫하시겠죠? 누군가는 너무 많아서, 누군가는 딱히 없어서 ‘뭘 적지?’ 하실 거예요.
취미라는 게 일상에서는 딱 뭐다 정하고 살지 않는데, 살다보면 누군가가 묻거나 어딘가 기재해야 할 때가 많아요. 제가 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거의 학기 초마다 적어서 냈던 거 같고, 각종 설문조사에도 많이 써서 냈죠. 쉬운 질문 같아 보이지만, 막상 닥치면 생각보다 답하기 쉽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질문을 받고 그제야 고민을 시작하는 거죠.
‘아, 내가 평소에 뭘 하면서 지내하더라?
취미의 사전적 의미는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 그러니까 언제든 기꺼이 즐겁게 하는 일, 다른 일보다 즐겁게 하는 일을 말하는 거겠지요? 어때요? 답이 좀 쉬워지셨나요?
저는 이 ‘취미’에 대해서만큼은 고민한 적이 없어요. 매번 같은 답을 적어내곤 했거든. 자신 있게 ‘독서’라고 적어 넣곤 했어요. 독서 앞이나 뒤로 다른 항목을 추가한 적은 있지만 독서가 빠진 적은 제 기억엔 없어요. 물론 기억력이 다소 빈약한 관계로 다른 걸 적은 적이 있을 수도 있지만 뭐 제가 유명인도 아니고 아무도 확인할 길 없는 고로 '확신의 없음'으로 밀고 나가겠어요. 근데 진짜 없을 겁니다. 어떻게 다른 걸 쓸 수 있겠어요. 누가 뭐래도 내 취미는 ‘독서’가 분명하거든요.
제가 기억하는 저의 유년 시절과 학창 시절에 곁에 책이 없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많이 읽었다는 뜻은 결단코 아니에요. 사실 많이 읽으려야 읽을 수도 없었습니다. 집에 책이 별로 없었거든요. 우리 집보다 형편이 여유로웠던 고모 네서 물려받은 위인전과 전래동화 전집 한 질씩과 가끔 부모님을 조르고 졸라 산 단행본 창작동화 몇 권이 전부였어요. 제가 어려서 살던 곳은 시골 마을이라서 변변한 도서관도 없었기에 그냥 가지고 있는 책을 읽고 또 읽고, 그 책을 또 다시 읽고, 또 읽으며 지냈습니다.
가끔 엄마 따라 읍내(아, 시골사람 인증)에 있는 시장에 가면 저는 서점에서 책 고르면서 엄마를 기다렸어요. 늘 딱 한 권만 사주셨기 때문에 어린 마음으로 얼마나 고민을 했던지... 그때 그 서점에서 행복한 고민을 했던 순간이 아직도 생각이 나요. (꼬맹이가 와서 구석에서 한참을 책을 고르고 보다 딱 한 권만 사가도 눈치 전혀 주시지 않았던 지금은 없어진 버스 정류장 옆 고려서적 사장님께 심심한 감사를...)
책을 좋아하는 마음으로는 그때 그 시절의 저를 지금의 제가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땐 왜 그렇게 책이 좋았던 건지 지금에 와서 곰곰 생각해보면 그 시절 저는 책을 통해 꿈을 꿨던 거 같아요. 그 시절 책을 읽으면 누구든 만날 수 있었고, 어디든 갈 수 있었고, 무엇이든 될 수 있었으니까요.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되어, 누군가를 좋아하기도 하고, 부모를 잃고 슬퍼하기도 하고, 뜻밖의 배신에 어찌할 바를 몰라 하기도 하고, 어딘가에 갇혀 갑갑해하기도 하고, 하루아침에 공주가 되어 꿈꾸듯 행복한 생활을 하기도 했지. 미국의 뉴욕에 사는 커리어우먼이 되어 매일 아침 센트럴 파크에서 조깅을 하고, 영국 런던에 사는 귀족이 되어 버킹검에서 열리는 무도회에 초대받기도 하고, 물 한 잔을 제대로 마실 수 없는 아프리카 어느 나라의 소녀가 되어 해가 뜨면 물을 뜨러 물 양동이를 머리에 이고 길을 나서기도 하고, 이집트의 탐험가가 돼서 으스스한 피라미드의 비밀을 찾아 나섰다 유령을 보고 놀라서 ‘걸음아 나 살려라’ 달려 나오기도 했죠. 매일 도서관에서 코를 박고 책을 읽던 로알드 달의 동화 <마틸다>의 주인공 마틸다처럼 말이에요.
마틸다는 책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여행했고, 아주 흥미로운 삶을 사는 놀라운 사람들을 만났다. 마틸다는 조지프 콘래드와 돛단배를 타고 항해를 떠났고, 어니스트 헤밍웨이와는 아프리카로 떠났으며, 러드야드 키플링과는 인도를 탐험했다. 마틸다는 영국 어느 작은 마을에 있는 자신의 작은 방에 앉아서 세계 곳곳을 여행했다. 로알드 달, <마틸다>
꼭 마틸다 만했던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제 취미는 고민 없이 ‘독서’입니다. 지루할 만큼 시간이 많았던 유년 시절과 달리 무척이나 바쁜 일상이지만 책을 좋아하는 일에서만큼은 늘 부지런하고 싶어요. 틈이 날 때마다 읽고, 틈을 내서 읽는 독서가로 평생을 살아가고 싶은 마음입니다. 중간 중간 마음을 콩밭에 주느라 책에 소홀했던 적도 많았지만 그때 그 시절에도 가방에 책 한 권은 꼭 들고 다녔을 만큼 취미대해서는 지고지순했네요 제가.(읽지는 않았고 들고만 다녔지만).
사실 책을 읽는다는 건 대단히 시간도 오래 걸리고 에너지도 많이 필요합니다. 집중하지 않으면 책의 내용을 알 수 없고, 누군가 대신해줄 수도 도와줄 수도 없죠. 독서는 내가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하지 않는다면 의미 있는 시간이 될 수 없어요. 좀 까다로운 구석이 있긴 하죠?
하지만 말이지, 책은 언제든 어디서든 볼 수 있고, 손쉽게 가지고 다닐 수 있어요. 게다가 세상에 좋은 책은 넘치도록 많아서 원하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읽을 수 있고, 같은 책이어도 읽을 때마다 다른 배움과 감동을 준다는 점에서 아주 매력적입니다.
책은 친구 같다는 생각을 자주해요. 그렇다고 서글서글한 얼굴을 하고 먼저 다가와 말을 걸어주는 친구는 아닙니다. 사실 친해지기 쉬운 편은 아닌데, 일단 친구가 되고 나면 그 누구보다 재미있고 속 깊은 친구죠. 고민이 있을 때 현실적인 조언을 하기도 하고, 더 나은 미래도 꿈꾸게 해주는 든든한 친구, 잡은 손을 절대 먼저 놓지 않는 의리 있는 친구, 원할 때면 언제고 품을 내어주는 다정하기까지 한 친구말이에요.
저는 책을 엄청 많이 읽는 사람도 아니고, 모든 책을 끝까지 읽는 사람도 아니거니와 어려운 책을 술술 읽는 베테랑 독서가도 절대 아니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평생을 취미에 ‘독서’라고 적는 건 이것 하나는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 책 읽는 시간을 즐기는 사람이에요. 이건 할머니가 되어서도 변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합니다.
그건 그렇고, 취미가 무엇인지 이제 이야기해주실 수 있나요? 영 말할 게 없으면 ‘독서’도 꽤 괜찮으니 한 번 고려해보세요. 독서라는 말이 좀 지루하게 느껴지면 ‘책 읽기’는 어떠세요? 아니, 아니, 너무 부담은 갖지 말고. 꼭 독서를 고르라는 건 아니니까. 그래도 취미로는 독서만한 게 없을 걸요? 그냥 그렇다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