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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휘 Mar 12. 2019

내가 세상에 남긴 것들

영화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넌 내일 죽어

  주인공 '나'는 조용한 마을에서 우체부를 하고 있었다. 평소처럼 자전거를 타는데 갑자기 앞이 흐려졌다.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지고 말았다. 그런데 병원에서 들은 충격적인 소식. 뇌종양 때문에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고 했다. 멍한 채로 집에 돌아왔는데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거실에 앉아있는 게 아닌가. 그는 자신을 악마라고 소개하며, 내가 내일 죽는다고 했다. 하지만 죽지 않을 방법이 있다. 세상에서 물건을 한 가지 없애면 하루를 더 살 수 있는 것. 단, 없앨 물건은 '악마'가 고른다.


자신과 똑같이 생긴 존재를 만난 '나'



휴대폰을 없앨 거야

  악마가 첫 번째로 고른 물건은 휴대폰. 내일이 지나면 휴대폰은 존재한 적이 없었던 게 된다. 마지막 통화는 누구랑 해야 할까. 나는 첫사랑에게 전화를 걸었다. 딱히 할 말이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둘이 서로를 처음 알게 된 계기는 그녀가 나에게 전화를 잘못 걸었기 때문. 말이 잘 통했던 그녀와 사귈 때에도 만나는 시간보다 통화를 하는 시간이 더 길었다. 그만큼 그들의 관계에서 전화는 아주 중요했다.

  자정이 되니 사람들의 휴대폰이 녹아 없어졌다. 깜짝 놀라 그녀가 일하는 영화관으로 달려갔는데,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전화가 없기 때문에 그녀와 난 만난 적이 없었던 것이다.


하루를 더 살기 위해

다음 날엔 세상에서 영화를 없앴다. 영화와 관련된 모든 추억과 영화를 좋아하던 소중한 친구를 잃어버렸다.

다음엔 평생 시계수리공으로 살아오신 아버지의 시계를, 그다음엔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가 남기고 가신 고양이를 없애겠다고 하는 악마. 하루를 더 살기 위해서 치러야 하는 대가는, 지금까지의 삶이었다.


고양이는 돌아가신 어머니와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사람은 언제 죽는가

"진정한 죽음은 사람들에게서 잊혔을 때"라는 명대사가 있다. 내가 남긴 흔적이 세상에서 모두 사라져 버리면, 그게 가장 무서운 죽음 아닐까. 내가 죽어도 나를 위해 슬퍼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판타지와 허무주의의 결합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2016)은 악마가 수명을 하루씩 연장해준다는 판타지 설정으로 시작해 일본 특유의 허무주의 감성을 더하여 삶의 의미를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결말 부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감동이 있다. 감성을 자극하는 아련한 영상미는 덤. 가장 와 닿았던 대사로 글을 마친다.


"내가 있던 세상과 내가 사라진 세상은

분명 다르리라 믿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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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작은 차이일지도 모르지만,

그것이야말로 내가 살아온 증거니까요.

몸부림치고 고민하며 살아온 증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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