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Days of Summer
'톰'(조셉 고든 레빗)은 각종 이벤트용 엽서를 만드는 회사에서 일을 합니다. 그런 그는 어느 날 사장의 비서로 새롭게 들어온 '썸머'(주이 디샤넬)을 보고 한눈에 반합니다. 이렇게 강렬한 이끌림은 필시 운명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소심했던 톰은 먼저 다가가지도 못하고, 썸머가 예쁘긴 하지만 싸가지가 없다는 주변의 소문만 듣고 지레 체념을 해버립니다.
퇴근하던 길, 톰과 썸머는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게 됩니다. 톰은 헤드폰으로 노래를 듣는 중이었는데, 새어 나오는 노래를 들은 썸머는 톰에게 나도 이 밴드를 좋아한다며 먼저 말을 겁니다. 우리의 소심왕 톰은 '역시 운명의 상대가 맞나 봐!'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톰(조토끼)과 썸머(주이 디샤넬) 며칠 뒤, 톰은 친구 맥켄지(제프리 아렌드)에게서 전 직원이 참가하는 회식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평소 같으면 그런 모임 따위 나가지 않았겠지만, '전 직원'은 당연히 썸머도 회식에 참가한다는 뜻이겠지요. 계획대로 톰은 회식 도중 썸머와 합석을 하게 됩니다. 이마저도 맥켄지가 먼저 썸머와 같이 있었던 덕이긴 하지만.
맥켄지는 썸머에게 남자친구가 있냐고 물었습니다. 썸머는 없고, 앞으로도 누군가를 사귈 생각이 없다고 했습니다. 사랑은 결국엔 헤어짐으로 끝이 나기 마련이고, 누군가의 여자친구로 사는 번거로움은 제쳐두고 지금을 즐기고 싶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가능성이 사라진 거 같아 기분이 상한 톰은 그건 틀린 생각이라며, 진짜 사랑에 빠지게 되면 틀렸다는 걸 알게 될 거라고 했습니다.
회식이 끝날 무렵, 잔뜩 취한 맥켄지는 썸머에게 "톰이 당신에게 반했다"라고 말해버립니다. 당황한 톰은 얼른 맥캔지를 택시에 태워 보냅니다. 저 말이 사실이냐고 웃으며 묻는 썸머에게 톰은 친구로서 좋다는 뜻이라고 둘러댑니다(멍청이). 거짓말인걸 눈치챈 썸머는 다음 날, 회사에서 톰에게 키스를 합니다.
!!!!!! 그렇게 둘은 커플이 되어 즐거운 날들을 보냅니다. 이대로 쭉 행복하게 살았다면 좋았겠지만, 영화가 이대로 끝날리는 없겠죠?
사랑은 비극이어라
톰과 썸머는 알콩달콩한 연애를 합니다. 하지만 이 커플에게도 예외는 없었습니다. 반복되는 다툼과 엇갈림에 썸머의 마음은 멀어졌고, 톰과 함께 다니던 회사도 관둡니다. 일방적으로 차여 실의에 빠진 톰은 제대로 일도 하지 못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 동료의 결혼식에 가기 위에 탄 기차에서 톰은 썸머와 마주칩니다. 당황해서 얼른 숨으려고 했지만, 썸머는 톰을 알아보고 먼저 말을 겁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자연스럽고 친근하게. 톰의 마음은 또다시 휘둘리고 맙니다. 혹시 그녀와 다시 잘 될 수 있는 걸까, 톰의 기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산산조각이 납니다. 썸머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보고 만 것이죠.
이렇겐 못 살아
영화를 자세히 보면, 톰은 한 번도 주체적으로 행동한 적이 없습니다. 처음 말을 건 일, 술자리를 함께 하게 된 일,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일, 헤어지고 멀어지고 다시 가까워지고 차이는 모든 일은 전부 다른 사람의 덕이었습니다. 톰은 떨어지는 감을 받아먹기만 했습니다. 그야말로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긴 것이죠. 그 이유는 썸머가 운명의 상대라고 무턱대고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사실은 소심한 자기 합리화에 더 가깝지만). 그 결과는 크나큰 상처만을 남겼습니다.
톰의 돌발 발언에 당황한 사장과 동료직원들 극단적 냉소주의자가 되어버린 톰은 급기야 회사의 회의 시간에 "대체 사랑의 의미가 뭡니까? 이런 카드 따위는 마음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요. 할 말이 있으면 직접 해야지. 이건 다 거짓입니다!"라고 말하며 그대로 회사를 때려치웠습니다. 그리곤 원래부터 가지고 있었던 꿈, 건축 일을 하기 위해 공부를 시작합니다. 이젠 자신의 마음이 시키는 그대로 행동하는 것이죠.
더 이상 아쿠아맨으로 남지 않겠다
영화는 도입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 영화는 사랑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만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500일의 썸머]의 주제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면, 톰과 썸머의 사랑과 이별을 그린 멜로 영화라기보단 성장 드라마에 더 가까워집니다.
수동적이고 소심했던 톰은 실연의 아픔을 이겨내기 위해 비로소 주먹을 펴고 일어섭니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며 손을 놓고 있는 대신 적극적으로 우연을 기회로 만드는 사람으로 변화합니다. 우연은 가만히 있는 톰에게 다가와서 꿈과 사랑을 떠먹여주지 않았습니다. 엽서를 만드는 회사는 이루고 싶은 꿈이 아니었고, 운명인 줄 알았던 썸머와의 사랑은 있는 그대로의 그녀를 사랑하지 못한 톰의 착각이었죠.
영화는 친절하게도 다음과 같은 멋진 나레이션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며 마무리를 짓습니다.
우연! 모든 건 우연일 뿐이다. 그 이상은 없다.
Coincidence! That is all anything ever is. Nothing more than coincidence.
어쩌면 운명이란 건, 우연의 별명에 불과한지도 모릅니다.
이미지 출처: [500일의 썸머] [500 Days of Summer]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