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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휘 Jun 05. 2019

[기생충]을 본 사람과 볼 사람 모두를 위한 리뷰

#16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당신을 위한 영화

살아남기 위한 선택

 기택(송강호)의 가족은 모두가 백수입니다. 안정적인 수입이 없어서 보기만 해도 퀴퀴한 냄새가 나는 달동네 반지하 방에 살며 부업과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근근이 먹고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택의 아들 기우(최우식)의 친구가 기우에게 찾아와서 곧 교환학생을 가게 되었는데, 자신이 하던 과외 자리를 넘겨주겠다고 했습니다. 상대는 어마어마한 부잣집이라 과외비가 엄청 높기 때문에, 이 기회를 잡으면 집안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대학에 가지 못한 4수생 기우는 동생 기정(박소담)의 도움을 받아 서울대 재학증명서까지 위조해서 박사장과 연교(이선균과 조여정)의 집에 찾아갑니다. 기우는 거짓말을 보탠 화려한 언변으로 순진한 연교와 그녀의 딸 다혜까지 완벽하게 속이는 데 성공합니다.

부업으로 피자 박스를 접고 있는 기택의 가족들, 그와 대비되는 박사장과 연교의 화려한 저택

 기우는 다혜의 남동생 다송이가 유난히 산만하다는 말을 연교에게서 듣게 됩니다. 몇 년 전에 겪은 어떤 일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겨서 그렇다는데요. 기우는 다송이가 그린 그림을 보고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립니다.

 기우는 연교에게 자신이 아는 사람 중에 다송이의 미술 선생님으로 적격인 사람이 있으니 그 사람을 소개해주겠다고 했습니다. 아들 바보인 연교는 굉장히 기뻐하며 그렇게 해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 날, 기우는 기정과 함께 연교의 집 문을 두드립니다. 기정 역시 기우 못지않은 뻔뻔함으로 미국의 유명 대학을 졸업한 잘 나가는 선생님 행세를 하여 취직에 성공하게 됩니다.

연교에게 잘 보이기 위해 말끔하게 차려입은 기우

 기 기정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나름 치밀한 작전을 세워 원래 있던 운전기사와 가정부를 박사장과 연교가 오해하게 만들어 해고시킵니다. 그리고 그 자리는 아빠와엄마인 기택과 충숙(장혜진)이 꿰차게 됩니다. 그야말로 온 가족이 박사장의 집에 기생을 하게 된 셈이죠. 이대로 기택의 가족은 돈을 벌어 팔자를 펴고 신분 상승을 할 수 있는 걸까요?


관전 포인트 #1: 블랙코미디와 스릴러의 조화

 우식을 시작으로 취직에 성공하기 위한 온 가족의 능청스러운 연기는 영화의 초중반을 코믹한 분위기로 끌고 나갑니다. 불안정한 삶을 살아온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 덕인지, 기택의 가족 모두가 거의 사기나 다름없는 거짓말을 술술 늘어놓는 실력들이 대단합니다. 그중에서도 운전기사와 가정부를 자르기 위해 모함을 꾸미는 과정은 여러 번 폭소를 터뜨리게 합니다. 이렇게 캐릭터와 배경 등 주요 설정을 재미있게 전달함으로써 영화는 관객과 빠르게 친해지고 몰입감을 높이는 효과를 거둡니다.

 하지만 영화는 어느 지점부터 코미디에서 스릴러로 장르가 바뀝니다. 앞에선 풍자적인 표현이 대부분이었다면 그 이후엔 처절한 현실의 민낯이 드러난다고 할까요. 더 이상의 내용은 스포일러가 될 테니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지만, 상당히 섬뜩하고 충격적이었습니다.


관전 포인트 #2: 영화의 중요 키워드

#사회 vs 개인

설국열차 (2013), 옥자 (2017)

 봉준호 감독의 최근 작품들, [설국열차]와 [옥자]에선 공통적인 하나의 문제의식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건 바로 사회와 개인의 대립입니다. [설국열차]는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기차 내부의 규율, 계급 체제에 굴복하지 않고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옥자]는 자본주의와 상업주의에 희생되는 생명을 구하기 위한 소녀의 모험을 이야기합니다. 두 영화는 '혼자선 어쩌지 못하는 거대한 문제에 부딪혔을 때 개인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데요.

 [기생충]의 메인 테마는 '계급 갈등'입니다. [설국열차] 역시 계급 갈등을 다루었지만 [기생충]은 분위기가 다릅니다. [설국열차]에선 캡틴 아메리카가 "너희들 당장 이리 나와"라며 지배층을 조지고 체제를 전복시키지만, 기택의 가족은 현실에 흡수되어 스스로 살 길을 찾습니다. 투쟁 대신 상생을 선택한 것이죠.


#기생충

 영화의 제목이 '기생충'인 이유는 쉽게 추측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백수인 기택의 가족서로가 가족임을 숨기고 박사장의 집에 위장 취업을 하여 살아갑니다. 스스로 양분을 벌어먹지 못해서 조용히 숙주에게 빌붙어 사는 기생충의 모습과 아주 흡사합니다.


#냄새

 박사장은 기택에게서 마치 '오래된 무말랭이' 같은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말합니다. 냄새의 정체가 뭘까 고민하던 박사장은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의 냄새"라고 결론을 짓습니다. 자신보다 가난한 사람들, 서민이나 하층민들을 싸잡아 비하한 것이죠. 기택은 그 말을 엿듣고 처음엔 은근히 신경을 쓰다가 나중엔 분노를 느낍니다. 그에게 벤 냄새는 반지하의 꿉꿉한 냄새이기 때문에 단순히 섬유유연제를 바꾼다고 없어지지 않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 반지하를 탈출해야만 해결이 가능하죠. 아무리 말끔하고 예의 바른 모습이어도 숨길 수 없는 냄새는 박사장과 기택을 구별 짓는 하나의 요소이며 신분 상승을 해야만 뗄 수 있는 하층민의 꼬리표를 상징합니다.


#수석

 수석은 풍경, 또는 다른 자연물처럼 생긴 바위를 뜻합니다. 주로 부잣집, 또는 어르신들의 공간에 장식품으로 자주 쓰이는데요. 수석은 사람이 깎아서 모양을 만든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자연 그대로의 상태여야 합니다.

 우연적으로 특정 이미지처럼 생긴 돌을 집안에 가져다 두는 것은 자연을, 운명을 컨트롤하고 싶은 인간의 욕구를 반영합니다. 필연처럼 생긴 우연을 한 조각 떼어와 곁에 두고 싶은 마음이죠.

 과외 자리를 소개해주었던 기우의 친구로부터 받은 수석은 앞으로의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어 신분 상승에 성공하고 싶어 하는 기택의 가족의 욕망을 나타내는 장치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돌의 행방을 쫓아가면 기우의 생각의 변화, 그리고 그가 맞게 될 운명을 알 수 있습니다.


관전 포인트 #3: 상승과 하강의 이미지

 계급갈등을 다루고 있는 영화답게, 영화 속엔 위와 아래를 구별하는 장면들이 많이 나옵니다. 가장 자주 등장하고, 또 가장 중요한 요소는 계단입니다. 박사장의 집은 높은 언덕 위에 있는 반면에, 기택의 집은 아주 저지대에 있는 반지하입니다. 박사장의 집으로 출근하기 위해선 수 없이 많은 계단을 올라야만 하죠. 영화의 중후반부에선 또 다른 사건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되기도 합니다.

기택의 집에 가기 위해 내려가야하는 계단과 박사장의 집에 가기 위해 올라야 하는 언덕

 폭우가 쏟아졌던 어느 날엔 높은 곳에 있었던 박사장의 저택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반면에 기택의 집은 침수되어 턱밑까지 물이 차오르고 있었습니다. 똑같은 사건이지만 한쪽에겐 아무 일도 아닌 반면에, 다른 한쪽에겐 생계를 위협하는 위기로 다가왔습니다. 비유적으로도, 실제로도 가난한 사람들이 더 심각하게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박사장 집 안의 책상과 침대 밑에 기택의 가족들이 숨는 장면도 여러 번 나오는데 이 역시도 모두 계급의 격차를 나타낸 메타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알 수 없는 찝찝함, 그 뒤에 있는 것

 빈부격차는 심각하지만 해결할 수 없는 현대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입니다. 가난과 부는 대물림되고 계급 이동의 기회는 줄어드는 시대. 그렇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을 사는 우리가 제시할 수 있는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봉준호 감독은 이번 영화를 통해 계급 갈등의 엄연한 존재와 완벽한 해결책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꼬리칸의 반란 대신 '상생'이라는 메시지를 제시하였습니다.

 이 영화가 큰 무대에서 인정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방식이 선명하면서도 탁월한 동시에 재미 역시 놓치지 않아서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어딘가 찝찝한 느낌이 남아서, 15세라고 하기엔 높은 수위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긴 하지만 지금의 현실을 돌아보게 만드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으며, 요 몇 년간 개봉한 한국 영화 중 가장 볼 가치가 있는 작품임은 확실합니다. (엄읍읍걸읍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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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재훈

이미지 출처: [기생충]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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