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도적인 여성 캐릭터의 활약이 돋보인..." "남성 중심의 서사와는 다르게..." "
몇 달 전, 드라마 [킬링 이브]를 정말 재미있게 봤다. 그리고 그저께 한 잡지에서 [킬링 이브]에 관한 글을 봤다. 거기엔 이렇게 쓰여있었다: "아시아인 여성주인공이 정보국 요원으로 등장하는 스릴러라는 컨셉만으로 한국 시청자를 흥분시키는 드라마." "(주요 등장인물이) 모두 여성으로 구성 된 [킬링 이브]는 시시콜콜한 여성들의 대화와 제스쳐, 전형에서 벗어난 태도의 유연함으로 서사의 완결도를 높인다."
성차별. 엄연히 실제하고, 없어져야 마땅하다. 그런데 요즘 나오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며 드는 생각이 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재미있게 잘 보았는데, 자꾸 여성에 대한 편견을 깨부수었다고 좋아한다. [킬링 이브]가 재미 있었던 건 이브와 빌라넬이라는 캐릭터 자체의 매력 덕분이다. 동양인과 여성이라서 달라질 건 없다.[셜록 홈즈]가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이유가 셜록과 왓슨, 그리고 작가가 백인 남성이라서가 아니듯이.
[킬링 이브]의 주인공, 이브(산드라 오)와 빌라넬(조디 코머) 작품을 성윤리의 관점에서 바라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최근 몇년 사이에 부쩍 많아졌다. 작품을 한가지 시선, 그것도 좁고 보수적인 시선으로만 보게 되면 작품 자체에 집중하지 못하게 되고, 의도마저 곡해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가장 중요한 건, 그들이 타도하고자 하는 편견을 재생산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설명하기가 조금 까다롭다.
예를 들어보자. 누군가가 이렇게 외친다: "청소부를 무시하지 말아주세요! 직업에 귀천은 없습니다!" 그리곤 청소부의 인권 신장을 위한 홍보 포스터를 내걸고, 청소부인 주인공이 사회의 편견에 맞서 본인이 간직해왔던 꿈을 이룬다는 줄거리의 영화를 상영한다.
이럴 경우, 아주 오묘한 일이 생긴다. 그동안 딱히 청소부를 무시하지도, 존경하지도 않았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 청소부는 무시당하기 쉬운 직업이니 내가 존중해주어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0이었던 것을 -3 즈음으로 바꾸었다가 +n을 해주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편견이 없다는 건, 그러니까 우리가 진정 원하는 건 +n이 아니라 0이 아닌가?
부당함을 끊임 없이 알리고 투쟁해야하는 분야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미디어가 강력한 이유는 아닌 척, 사람들의 무의식 깊은 곳에 특정한 생각을 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이것이 진실이다!"라고 떠들면 사람들은 괜히 거부감을 일으키고 반박을 하고 싶어지기 마련이다.
편견이 사라지길 바란다면 이미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할 필요가 있다. 노력은 하되 의식할 필요는 없다. 편견은 언급할 가치와 함께 사라진다. 편견을 뛰어넘었다고 말하는 순간, 편견은 뛰어 넘어야 할 무엇이 되어 살아난다.
뭐라고 글을 쓰긴 썼는데, 워낙에 예민하고 다양한 인과관계가 있기 때문에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게 쉽지 않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