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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맑은소나무 Mar 18. 2021

저녁식사 준비 생선손질 아줌마의 하루

낮에 잠깐 일하러 나갔다가 더워서 죽는 줄 알았다.

아아가 급 땡겼지만 얼른 집에 가서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니 아아의 우아함을 즐길 시간 따윈 단 1도 없었다.

집에 오자마자 후다닥 컵라면 하나로 떼우고 저녁 밥 준비하고 국 끓일 육수 우려내고 샤워하고 컴퓨터 앞에 앉으니 손이 덜덜 떨렸다.

덥고 힘들어서 손이 떨리는 줄 알았는데... 핸드폰이 떨리네?!!

동네 여사님께서는 대뜸 생선을 좋아하냐고 물으셨다.

"오우~ 없어서 못 먹지요~" 라고 대답했더니 잠깐 오라고 하셨다.

기진맥진 상태였으나 이 상태에서 일도 손에 안 잡힐 거 같고 간만에 가벼운 수다나 떨어볼까 하는 마음에 다시 옷을 갈아입고 곧장 나갔다.





  


여사님 댁에 갔더니 얼음 동동 띄운 아아를 건네어 주셨다. 

가끔 길에서 만나도 겨우 인사 정도만 하고 지나쳤기에 넘나 오랜만에 굵고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의 중심은 모두 코로나 얘기~ 아이들 얘기~

그리고 이런 걸 건네어 주셨다. 집에 와서 확인해 보니 세상에... 청어랑 갑오징어가 예쁘게 손질되어 있더라.


이 녀석들은 오늘 여사님의 친정 아버님께서 연안부두에서 공수해 주신 거였고

여사님은 집에 오자마자 부랴부랴 손질을 했다고 한다.


갑자기 여사님이랑 했던 얘기가 떠올랐다.


우리 아가씨 적에는 생선 살 발라먹는 것도 잘 못해서 생선도 안 먹고 그랬는데...
언제부터인가 생선 내장을 손질하고 있더라~~



  



집에 오자마자 곧바로 저녁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갑오징어는 데쳐서 숙회로 만들고 청어는 팬에 구웠다.


진짜 그러고 보니... 예전엔 먹을 줄만 알았는데
언제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모든 걸 다 만들고 있구나..



아주 오래 전 우리 솔이 아가 때 마트에서 세일하는 고등어 세 마리를 사 왔는데

집에 와서야 손질이 안된 녀석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걸 어쩌나... 싱크대 앞에서 한참을 서 있다가 결국 용기를 내어 조심스레 칼로 고등어의 배를 갈랐고

무려 한 시간 동안 펑펑 울면서 손질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의 눈물은 절대 고등어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나도 이제 진짜 아줌마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다.

결혼하고 아이 낳았으면 아줌마인 건 당연한건데... 그 땐 그게 그렇게 서럽게 느껴졌다.


이젠 오징어 손질하는 것도 일도 아니고 생선 뿐 아니라 생닭도 척척 손질하는 억척스러운 아줌마가 되었지만

가끔은... 아주 가끔은... 살짝 슬프게 여겨질 때가 있다.


그래도 여사님의 말씀처럼~~~ "애들이 워낙 좋아하잖아!!! 그거면 된거지~~"




   

낮에 끓여뒀던 육수로 어묵국을 만들고 무나물이랑 연두부를 꺼내어 저녁식사를 준비했다.


항상 녀석들의 식사를 저녁 6시30분에 차려준다.

요가 시간이 저녁 6시 40분이기 때문에 30분에 차려준 다음 후다닥 옷 갈아입고 뛰어가면 시간이 딱 맞아 떨어진다.

오늘 저녁식사 준비는 여사님의 감사한 선물 덕분에 6시20분에 모두 끝냈지만 청어 가시가 넘 많아서 가시 발라주다 보니 이론~ 40분이 되었네.


손질한 생선을 선물받았음에도 다시 가시를 발라 주어야 하는 '엄마'라는 고된 직업.

그래도 녀석들이 아주 행복해 하며 잘 먹는 모습을 보니 "그래~ 애들이 좋아하면 된거지!" 하면서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아줌마의 하루는 늘 정신없고 티 나지 않게 바쁘고 아무런 흔적없이 지나간다.

그래도 매일 똑같은 것처럼 여겨지는 하루하루를 늘 기록하며 간직하고 싶다!



2020년 무더웠던 여름에 끄적였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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