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맑은소나무 May 29. 2020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김밥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의 그리움

 하얀 밥 속에 색색깔 고운 빛깔이 참 먹음직스럽다. 주황, 초록, 노랑, 빨강 하나하나 스스로의 자태를 뽐내듯 까만색 동그라미 안에 여러 빛깔을 새겨 놓았음에도 각자의 색보다는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딱 붙어 있는 모습이 더욱 입맛을 돋운다. 입안에 쏘옥 넣는 순간 하나였던 동그라미는 제각각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며 각양각색의 맛을 나타낸다. 아이들은 평소에는 절대 느낄 수 없는, 황홀한 맛을 볼 수 있는 이 순간을 손꼽아 기다린 것이다.

 참 신기했다. 이름도 똑같고 재료도 거의 같았지만 소풍날 저마다 싸 오는 김밥의 맛은 집집마다 달랐으니. 소풍날이 되면 아침부터 각자 어떤 김밥을 싸왔는지에 대한 궁금함 때문에 소풍 장소로 가는 길이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 땐 지금처럼 편안하게 버스로 소풍을 가는 것이 아니라 무려 한 시간 반이나 소풍 장소까지 걸어가야 했는데도 어느 누구 하나 투정을 부리는 아이는 없었다. 그건 바로 가방 안에 고이 들어있는 김밥 때문이었다.


  김밥. 요즘은 아무데서나 사 먹을 수 있는 값싸고 간편한 음식으로 인식되어 있지만 내가 어렸던 그 시절의 김밥은 일 년에 단 두 번 소풍날에만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김밥은 자신의 엄마를 뽐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누구네 집 김밥에는 고기도 들어갔더라, 누구네 집 김밥은 정말 맛있더라’ 이런 말이 오고 가는 날에는 그 장본인은 반에서 이미 스타가 되어 있었던 것. 저마다 그 친구를 부러워하며 그 친구의 김밥을 한 입이라도 얻어먹기 위해 줄을 서는 진풍경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의 도시락통에는 아이들의 간절한 바람인 김밥 대신 언제나 노란 빛깔을 띠는 그 녀석이 자리 잡고 있었다.    


 노란밥. 우리는 노랗고 동그란 모습을 띤, 색색깔 고운 김밥을 대신하는 그 녀석을 그렇게 불렀다.

 우리가 말하는 노란밥에는 달걀, 밀가루, 당근, 감자가 전부였다. 이렇게 보면 나름 괜찮은 재료가 들어가는구나 싶겠지만 실상 그 녀석들은 밥에 묻혀 아주 작은 점 몇 개로 묘사될 뿐, 색색깔 고운 김밥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었다. 밥에 아주 약간의 재료들을 골고루 섞어 동그랗게 만든 다음 밀가루에 한 번 굴려 노란색 달걀물을 입혀 튀겨내면 노란밥이 완성되었다. 

 그 땐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엄마는 왜 김밥 대신 노란밥을 선택했어야 하는지. 내가 봤을 땐 노란밥이 훨씬 번거로워 보였기에 그냥 엄마가 다른 엄마들처럼 김밥을 싸 주길 원했는데 엄마는 끝까지 노란밥을 고집하셨다. 그리고 나의 소풍날은 언제나 그렇듯 다른 친구들이 싸 오는 각양각색의 김밥을 부러워하고 또 부러워하는 시간이었다. 조금 더 자라 고학년이 되었을 땐 자존심이 있었던지 친구들이 왜 김밥을 싸 오지 않았냐고 물어보면 우리 엄마가 특별한 도시락을 싸줬기 때문이라고 더 큰 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을 내뱉는 입과는 달리 마음은 언제나 엄마에 대한 원망과 다른 친구들에 대한 부러움이 뒤엉켜 있었던 걸.    


 아이들에게는 세상에서 둘도 없이 맛있었던 음식, 자랑하고픈 음식이 바로 김밥이었기에 엄마들은 소풍가기 며칠 전부터 분주하게 움직여야 했다. 그리고 소풍 가기 전날이 되면 엄마가 싸 주시는 김밥을 옆에서 하나라도 얻어먹어 보려고 고사리손들은 바쁘게 움직였는데- 그 고사리손이 움직일 때마다 엄마들의 마음을 어땠을까? 그 땐 하나라도 김밥을 더 맛보기 위한 생각만 했었지 엄마들의 수고 따윈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몇 십 년이 흘러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니 김밥을 쌌던 수많은 엄마들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간다. 김밥을 싸 주지 못했던 엄마의 마음까지도.


 김밥을 싸려면 단무지, 달걀, 시금치, 당근은 필수 맛살이나 햄, 어묵, 오이 등은 기타 곁가지로 들어간다. 분명 한 번에 먹기 편한 음식이지만 그 안에 들어가는 재료의 가짓수는 기본 네 개에서 많으면 일곱, 여덟 가지도 들어가니- 먹을 것이 귀했던 그 시절 엄마들은 소풍날이 아마도 무척 버거운 날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요즘처럼 친절하게 김밥 재료들이 곱게 손질되어 판매되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하나 엄마의 손길을 거치지 않으면 완성시킬 수 없었기에 수많은 엄마들은 어쩌면 김밥을 무척 원망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런 김밥조차 싸 주지 못했던- 다섯 아이의 소풍 도시락을 모두 챙겨야 했던 엄마에게는 경제적인 면과 육체적인 면, 정신적인 면까지 모두 힘겨웠던 날이 아니었을까.    


 “엄마, 동그란 김밥 만들어줘, 엄마 동그란 김밥 먹고 싶어”


 둘째 아이는 세 살 때부터 김밥을 표현할 때면 반드시 ‘동그란’을 붙인다. 처음에는 김밥이면 다 같은 김밥이지 왜 자꾸 ‘동그란’이란 단어를 붙일까 의아했는데 의사표현이 뚜렷해졌을 무렵 이유를 물으니 엄마가 싸준 김밥을 동그란 김밥이라 생각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아마 녀석에게는 엄마의 정성이 들어간 김밥이 아주 특별했던 모양이다.

 이젠 소풍날이 아니어도 아이가 먹고 싶다고 주문만 하면 김밥을 만들어 줄 수 있다. 아이가 동그란 김밥을 만들어 달라고 하던 날, 까만 김 위에 하얀 밥을 가지런히 올리고 햄, 달걀, 단무지, 시금치, 오이, 당근, 어묵을 일렬로 놓은 다음 흐트러지지 않도록 동그랗게 만다. 향이 가득한 참기름을 덧바른 다음 한 입 크기로 썰어내기 무섭게 고사리손이 나타나 얼른 동그란 김밥 하나를 집어 든다. 그 순간, 다섯 아이가 그토록 먹고 싶어 했던 김밥이 아닌 밥만 가득 넣은 노란밥을 만들었던 엄마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그런 노란밥이라도 얻어먹어 보려고 고사리손을 내밀었던 다섯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빛도.   

 

 하얀 밥에 소고기, 당근, 감자, 파프리카를 큼직하게 썰어 색색깔 고운 자태를 뽐낼 수 있도록 듬뿍 넣는다. 한 입에 쏘옥 들어갈 수 있도록 작은 크기로 빚은 다음 밀가루에 한 번 굴려 달걀물을 듬뿍 입히고 기름에 튀겨낸다. 한 입 베어 물면 다양한 재료의 맛을 모두 느낄 수 있어 그 맛이 참 오묘하다. 하지만 그 시절 엄마가 만들어 주셨던 노란밥의 맛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리 아무리 값비싼 재료를 많이 넣어도 엄마가 그렇게 가슴아파하며 만들었던 그 맛은 느낄 수가 없다.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특별했던 엄마의 김밥이 바로 노란밥이었음을.

작가의 이전글 이번 주말 캠핑어때?!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