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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리멘탈 심리학자 May 04. 2022

머리 뽑는 습관 극복하기

머리 뽑는 것은 털 뽑기 장애(발모광)인가 습관인가


사람들은 생각보다 무의식적으로 얼굴에 손을 많이 댄다. 지금은 마스크 때문에 강제적으로 얼굴에 손을 못 대지만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신체 특정 부위를 만지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중 머리를 만지고 꼬고 뽑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어쩌다 한번 손대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빈도와 정도가 심해 탈모까지 올 정도라면 병이다.

 

발모광 또는 발모벽은 자신의 털을 뽑으려는 충동을 억제하지 못해 반복적으로 머리카락을 뽑는 질환으로, 미국 정신의학회의 DSM-5에서는 강박 및 관련 장애로 ICD-10 및 한국 표준 질병 사인 분류에서는 충동조절장애로 분류되는 정신장애이다. 보통 머리카락을 뽑기 전에 스트레스 상황에 놓여 불안 및 긴장감을 느끼다가 머리를 뽑고 나면 쾌감, 만족감, 안도감을 느낀다. 이러한 행위를 자주 반복하다 보면 모발이 현저하게 상실된다.


신체질환으로 인해 탈모에 이르게 된 경우는 당연히 예외다. 하지만 머리를 뽑는 것으로 자신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이로 인해 사회적 관계, 학업이나 직업적으로 집중이 어려워 현저한 지장을 주는 경우 발모광으로 진단 내려질 수 있다. 강박적으로 머리를 뽑는 행위가 있어 강박장애로 오인될 수 있으나 강박장애는 강박적 사고가 어떤 행동 전에 선행된다는 점에서 발모광과 차이점을 보인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꽤 오랜 시간 동안 머리를 뽑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인터넷에 뜨는 발모광 환자의 머리처럼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불안할 때마다 혹은 습관적으로 머리를 만지고 꼬고 또 꼬인 머리를 푸느라 머리를 뽑아 부분 탈모 증상을 보였다. 상황이 심각할 때는 손가락과 손목이 아플 정도였지만 멈출 수 없었다. 고치려고 부단한 노력을 해 지금은 그 습관이 사라진 상태인데 이 습관의 시작과 어떠한 경과를 거쳐 고쳤는지 내 상황과 비슷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그 경험을 공유하고자 한다.




일단 내 머리 상태에 대한 언급을 하자면 굉장히 숱은 굉장히 많지만 얇은 모발을 갖고 태어났다. 모발이 얇아서 그런지 모발들끼리 잘 엉켜 저절로 매듭이 지어지기 쉬웠다. 가만히 있을 때도 그럴진대 머리에 손을 대면 엉킴은 더 심해졌다. 그러면 그 매듭 풀기 위해 계속 만져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머리가 뽑혔고 엉킨 매듭이 다 해결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발모광의 정확환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대게 유전적인 요인과 환경적인 요인으로 간주된다. 나의 경우 머리를 만지고 뽑는 습관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다. 다만 엄마의 증언에 의하면 어렸을 때 내가 앞머리를 자꾸 뽑아 앞머리를 아예 길러서 넘겨 묶고 다니게 했다고 한다. 지금도 앞머리를 들춰보면 이마 옆쪽이 비어있다. 초등학교 때는 앞머리 없이 긴 머리였고 엄마는 내가 머리를 건드리지 못하도록 잔머리까지 싹 훔쳐 단단하게 묶어주어 손으로 건드리는 기회를 차단시켰다.


중학교 때는 두발규제로 단발머리를 했는데 그때부터 머리 만지는 버릇 다시 시작이 되었다. 그러나 그때는 만지는 정도이지 뽑는 정도는 심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머리를 만지는 것 이외에도 입술이 부르튼 자리를 뜯고 피부에 트러블 난 자리를 만지는 습관이 머리 뽑는 습관을 대체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고등학교 때 비로소 얼굴에 손대는 습관을 고치고 나니 머리에 손대는 빈도가 늘었는데 공부할 때 집중을 방해한다고 느꼈지만 스스로 통제가 가능한 상태였다. 발모광이 정말 심각해진 것은 성인이 된 이후였다. 대학 입학 후 내가 스스로 내 인생을 책임지고 해 나가야 할 것들이 많아져 압박감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후 습관도 같이 늘어 손이 아플 때까지 머리카락을 만지고 꼬고 뽑았다.


이런 내 습관은 흡사 고전적 조건화와 비슷한 것 같다. 파블로브의 개 이야기로 고전적 조건화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개는 먹이를 보면 침을 질질 흘리는 반응을 보인다. 이것을 무조건 자극과 무조건 반응이라고 한다. 이 관계 사이에 벨소리를 넣어보자. 먹이를 주기 직전 벨소리를 반복적으로 쳐주면 개는 먹이 없이도 벨소리만 듣고도 먹이를 예상하여 침을 질질 흘리게 된다. 이전에는 아무 관련이 없었던 벨소리와 먹이가 연결된 것이다. 이 공식에 대입해보자면 나는 불안을 느껴 머리를 뽑았다. 하지만 이것이 반복될수록 매듭으로 꼬인 모발을 만지는 것 자체로 쾌감을 느껴 불안이 없는 상황에서도 계속 머리를 만지고 뽑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안 좋은 습관을 어떻게 줄여나갔을까? 보통 발모광 치료에는 약물과 인지행동치료를 병행한다. 발모광 치료의 가장 기본은 약물이다. 나는 발모광 증상으로 전문의를 찾아간 적 없어 약물 치료 부분은 언급하기 조심스럽다. 그렇지만 우울이나 불안 문제로 처방받은 약을 먹은 적이 있는데 약 먹고 치료하는 기간 중 발모광 증상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그다음은 행동적인 접근이다. 효과가 없었던 것부터 언급하자면 먼저 손이 머리로 가는 접근을 차단하기 위해 손에 장갑도 껴보고 손에 다른 물건을 쥐어보기도 하고 바셀린 같은 미끄러운 것도 발라보고 일부러 손을 더럽게 해 다른 신체부위로 가는 것을 차단하고자 하였으나 소용이 하나도 없었다.


행동 접근 중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는 데에는 충격요법이 도움이 되었다. 먼저 일하는 책상에다 거울을 놓고 내 행동을 관찰해 머리에 손대는 습관이 얼마나 추하게 보이는지 스스로 충격을 받게 하였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런데 나와 비슷한 습관이 있는 직원이 내 옆자리로 들어와 그 직원의 일상생활을 관찰한 것은 도움이 좀 됐다. 그 직원은 뽑는 행위는 적었고 만지고 꼬는 행위에 집중되었는데 그럴수록 머리가 기름져지는 것을 보았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보고 뭐라 한다는 게 딱 내 경우 겠지만 내 행동이 남한테도 저렇게 추잡스럽고 더러워 보이겠구나를 깨달은 후 이 습관을 고쳐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것 같다.


또한 인터넷에 떠있는 심한 증상의 발모광 사진은 나에게 크게 와닿지 않았다. 담뱃갑에 아무리 암환자의 장기 사진을 전시해도 실제 흡연자들은 그냥 지나치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나. 심한 환자들의 탈모는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워낙에 머리숱이 어마무시 많게 태어나 내가 좀 뽑아대도 괜찮을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실제로 자세히 들춰보면 부분 탈모가 있지만 딱 봤을 때 시야에 걸리는 앞, 옆머리의 상태가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자연스러운 노화 현상으로 뒷머리가 갈라지고 그 중심으로 머리가 비는 것이 눈에 띄었다. 자연스러운 노화현상일 수도 있겠지만 머리 뽑는 습관으로 머리의 빈 공간이 가속화되겠구나라는 생각에 긴장감을 갖게 되었다.


그다음은 셀프 모니터링과 관련된다. 모발 일지를 써 내가 머리 만지고 뽑는 행위의 정도를 5점 척도로 평가하고 내 하루 행동을 모니터링했다. 그 결과 업무 또는 공부를 위해 데스크에 앉았을 때 머리를 많이 뽑았고 이밖에도 일상생활에서 받는 압박감, 우울 정도와 매우 밀접하게 관련 있었다. 별 과제가 없이 늘어져 있는 주말에는 그 습관이 적게 올라온 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에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 싶어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불안 자극 우울 자극 줄여나가고 기분을 관리했다.


효과가 좋았던 현실적인 방법으로는 꼬인 머리를 만지는 것 자체에 대한 쾌감을 없애버리기 위해 모발 관리에 신경을 썼던 것이 도움이 많이 되었다. 나는 어떤 문제에 대해 심리적인 접근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생활에서 현실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미용실에  자주 방문하여 머리의 상한 부분을 바로바로 잘라내고 매일매일 홈케어로 매끈한 머릿결을 유지하니 머리 엉킴이 현저히 줄어들었고 자동적으로 엉킴에 의한 머리 만지는 쾌감이 없어져 손이 덜 올라가게 되었다.


습관을 만든 가장 맨 기저의 원인을 뿌리 뽑고자 인지적인 접근도 시도해 보았다. 내가 느끼는 것과 주변인들의 평가를 살펴보면 유전적으로 나는 쉽게 불안을 느끼는 기질을 타고난 것 같다. 미취학 아동일 때도 불안이 심했는데 학업과 시험에 대한 압박이 시작되고서는 항상 불안감에 시달렸다. 모든 것은 나의 노력과 선택에 따라 이루어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목표를 크게 잡고 압박감을 스스로 느끼는 타입이었다. 이러한 성향 때문에 늘 긴장 속에 있었음에도 그것을 해소하기 위한 적절한 대안은 찾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덧 중년이 되고 보니 느꼈다. 어디 인생이 그렇던가. 인생이 계획대로 노력대로만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나의 운명은 내가 노력한 만큼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노력만이 살길이다라고 스스로 옭아매었던 굴레에서 자연스럽게 벗어나게 된 것이다. 비록 내가 꿈꾸고 계획했던 완벽한 인생은 아니지만 이 자체로도 괜찮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남은 인생에 대한 목표를 현실적으로 재조정했다. 이렇게 내가 온 길을 돌아보고 인생의 목표를 재설정하고나니 나를 짓누르던 압박감에서 해방되었다. 그 이후로 머리 뽑는 습관이 정말 많이 좋아졌다.





앞서 얘기했지만 나는 발모광으로 내 생활이 심각하게 방해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병원을 방문하지 않았다. 나조차도 병으로 인식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불안과 우울이 워낙 큰 이슈라서 머리를 만지고 뽑는 것은 우울과 불안에 부차적으로 딸려온 증상일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타고나길 워낙 머리숱이 많았기 때문에 비록 증상이 만성이라 할지라도 자세히 봐야 보이는 부분적 탈모라서 그런 것도 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하게 하나의 독립된 질병으로 보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과거에는 매우 드물게 보고된 장애였으나 그 병에 대한 인식이 높아짐에 따라 유병률과 관련 연구도 증가되는 추세에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많은 환자들이 인식 자체를 크게 하지 못하거나 숨기기 때문에 실제 환자들은 더 많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 병은 대체로 아동기나 청소년기에 시작되지만 그 이후에 생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발모광이 아동기에 발생하면 비교적 쉽게 증상이 완전히 소멸된다고 한다. 나 같은 경우에도 부모의 완벽 통제가 가능했던 어린 시절에는 증상이 싹 사라졌었다. 하지만 부모의 시야에서 벗어나 생활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그 습관이 슬금슬금 기어 나와 만개해 만성적이 되었고 내 생활에 많은 지장을 주었다.


내 생활에 그렇게 지장을 줬는데 왜 못 고쳤을까? 나는 심지어 상담도 여러 번 받았다. 임상, 상담심리 석박사 트레이닝 과정 중 필수적으로 상담을 여러 번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내담자 입장에서 상담을 여러 번 받았는데 이 문제를 주요 이슈로 꺼낸 적은 없었다는 것이 지금 와서 생각하면 꽤 의아한 점이다. 시간이 흘러 그때 당시 기술된 상담일지를 우연히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상담자는 행동 관찰 란에 내가 머리를 강박적으로 만지는 것에 대해 언급을 해놓았던 것을 발견했다. 상담자조차도 이 증상을 보았지만 문제 해결은 놓쳤던 것이다. 남 탓하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다만 내가 좀 더 문제를 제대로 인식했더라면 더 일찍 고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남는다.


나의 경우를 돌아보면 이 병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그다음이 치료 목표를 세우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지금은 머리 뽑는 습관이 사라졌지만 발모광은 워낙 재발이 쉬운 질병이라 언제 또다시 나타날지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통제해봤다는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에 재발에 대한 두려움은 거의 없다. 마지막으로 이 글이 비슷한 증상이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고 혼자 힘으로 이겨내기가 버겁다면 괜히 버티다 만성으로 발전시키지 말고 전문의와 상담해 다각적인 약물, 상담치료를 받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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