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드니 다이어트 더 힘들다
한동안 대식가들의 먹방이 큰 인기를 끌다가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소식좌의 먹방이 주목받고 있다. 코로나 이후 급찐 살을 빼기 위해 빼빼 마른 여자 연예인들의 식단도 인기를 끌고 있다. 그들은 카메라에 부하게 나오지 않기 위해 하는 것일 뿐 일반인들이 그대로 따라 하다가는 건강을 잃을 것이라고 자신의 어린 팬들에게 주의를 준다. 하지만 그 말을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안다. 말라야 조금이라도 예뻐 보이고 옷빨이 잘 받는다는 것을.
어린 시절 나는 집에서 돼지라고 불렸다. 하지만 난 결코 뚱뚱한 아이가 아니었다. 보통의 여자아이들이 그러듯 맛있는 것을 좋아하는 약간 통통한 아이였을 뿐이다. 내가 왜 하필 비쩍 마른 소식좌 가정에서 태어났는지 억울할 따름이다. 하지만 아주 마른 식구들이 보기에 비만 아동이었던 나는 한창 성장기인데도 불구하고 먹을 것을 제한받았다. 내 기억에 너무 배고파서 잘 밤에 부엌에 나와 몰래 음식을 먹었던 적이 꽤 있었던 것 같다. 살은 나에게 일종의 트라우마로 작용했고 그것 때문에 청소년기 내내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렸다. 이제는 시간이 흘러 결혼도 하고 중년인데 아직도 가끔 부모님을 뵈면 턱살을 감시당한다.
집에서 너무 스트레스를 주어서인지 커가면서 딱히 스스로 다이어트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스스로 혹독하게 다이어트했던 것은 결혼을 앞두고 였다. 남들은 결혼식 사진 남겨봤자 어차피 시간 지나면 안보는 것이라 했지만 외모 콤플렉스가 있었던 나는 일생에 단 한 번이라도 예쁜 모습을 남기고 싶었다. 그 당시 나는 사회초년생이었고 사회 초년생답게 일이 굉장히 많았다. 체계적으로 시간을 들여 운동을 병행하는 건강한 다이어트할 시간적 여유와 에너지 없었던 것이다. 할 수 없이 식단으로만 해야 했는데 약 5개월 정도 하루에 점심 한 끼만 먹었다. 청첩장을 돌리는 저녁식사 자리에서는 물만 먹고 음식을 먹는 척 만했다. 그 다이어트 기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시간이었다. 항상 힘이 없어서 흐물흐물 늘어져 있는데 맡은 일을 안 할 수가 없으니까 스트레스가 최고조로 치솟았던 기간이었다. 불행 중 다행인지는 몰라도 인생 최저 몸무게를 찍었고 스튜디오 촬영, 본식과 신혼여행 사진들 모두 날씬하게 잘 나왔다.
그 후로 딱히 그렇게 깡 마른 몸을 유지할 이유가 없어져 적당한 채로 40대를 맞이했다. 그런데 조금이라도 많이 먹으면 체하는 나는 위장약을 달고 살았고 그 때문에 몸이 자주 부었고 나잇살도 덕지덕지 몸이 무겁게 느껴져 땅에 질질 끌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래선 안 되겠단 생각에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이번엔 좀 건강하고 즐겁게 해보고 싶었다. 내가 이 나이에 다이어트로 팔자를 바꿀 것도 아니고 사진으로 남겨야 할 예쁜 몸을 굳이 만들 필요도 없어 그저 가벼운 마음이었다. 얼마 동안 어느 정도까지 빼야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도 없이 기간은 평생, 목표는 그저 남보기엔 상관없이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적당히 건강한 몸이었다. 마침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일을 확 줄인 상태였기 때문에 다이어트를 할 수 있는 시간적 체력적 여유가 충분했다.
먼저 위장을 아프게 하는 맵고 자극적인 음식부터 끊었다. 하지만 내가 너무 사랑하는 빵과 커피는 절대로 못 끊겠더라. 이것을 끊으면 이 험한 세상에서 굳이 살아갈 이유가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빵과 커피를 브런치로 먹고 단백질 위주 식단을 이른 저녁으로 먹었다. 이렇게 적으니 거창한데 그냥 고기와 채소이다. 원래도 고기와 채소는 내 최애 식단이었다. 그냥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되 양과 시간만 조절한 것이다. 일부러 간헐적 단식을 의도한 것도 아닌데 내 생활 패턴에서 지킬 수 있는 내에서 계획을 하다 보니 간헐적 단식의 형태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운동과 병행했다. 그렇다고 어려운 운동을 할 엄두는 안 나고 누구나 다 아는 정도의 스트레칭, 걷기, 가벼운 근력 운동을 했다. 운동 전문가들이 보기엔 우스운 수준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매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세를 의도적으로 바르게 했다. 배에 힘을 줘 허리, 어깨, 고개를 똑바로 세우고 앉은 자세와 서있는 자세를 항상 신경 썼다.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매일 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이었다. 이렇게 하다 보니 속도는 느리지만 점점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받았다. 예전에 했던 다이어트와 같이 전혀 고통스럽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아침에 먹어버리니 나머지 일상에서 음식에 대한 욕구가 딱히 들지 않았고 변해가는 내 몸을 보는 것도 너무 즐겁게 느껴진다.
성인이 되면 어렸을 때 사진을 굳이 찾아보지 않는데 얼마 전 이사하다가 우연히 내 어린 시절 사진을 보고 소름이 돋았다. 어린 시절의 나는 결코 뚱뚱하지 않은 정상 체중의 아이였던 것이다. 그런데도 스스로 뚱뚱하고 못났다고 생각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사실에 너무 화가 났다. 물론 우리 부모님 보시기에 내가 너무 식탐이 많아 미리 조심시키신 것이겠지만 의도치 않게 강요된 다이어트는 나에게 폭력이 되어버린 것 같다.
어쨌든 결혼을 준비하며 무리하게 다이어트해 세상 날씬한 몸이었던 그때 행복했냐고? 절대 아니다. 단언컨대 그때가 제일 불행했다. 억지로 먹을 것을 극단적으로 줄여 뺀 거라 만족되지 못한 욕구는 그대로 남아있었고 일로 인한 스트레스도 많았던 터라 감정상태가 롤러코스터였다. 여기에 운동할 시간도 없어 코어 근육이 다 무너져 자세도 흐물흐물거렸다. 그때 사진을 보면 그 당시 고통스러웠던 기억까지 같이 떠올라 나름 예쁘게 나온 몸인데도 불구하고 그때 사진을 잘 못 본다. 이렇게 스스로 자신을 몰아치는 강박적인 다이어트 또한 조심해야 한다.
지금 세상은 스트레스가 너무나도 많은 세상이고 그 스트레스를 위로하기 위한 식문화도 발전되었다. 따라서 그 먹는 욕구를 참는 것이 너무 힘들게 느껴진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은 마른 몸을 원한다. 강박처럼 먹고 빼고 있는 것이다. 강박적으로 하니 고통스러운 것이다. 다이어트는 어차피 평생 해야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숫자에 집착하고 스트레스 왕창 받으며 할 것은 아닌 것 같다. 어차피 평생 해야 할 것이라면 비록 얕은 수준이라도 나의 건강 상태에 맞게 매일 실천할 수 있도록 쉽고 재미있게 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