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의에 빠졌을 때 소설 읽기로 마음 달랬던 경험
사람의 인생은 절대 계획대로, 노력대로 풀리지 않는다. 내가 인생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해도 그거 하나만큼은 확실히 알겠다. 인생이 뜻대로 잘 풀리지 않아 우울한 내담자들을 상담하다 보면 스트레스 대처방법이 매우 빈약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냥 자거나 매운 음식을 폭식한 후 자거나 아니면 그런 것도 없이 그냥 지낸다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심각한 스트레스를 오랫동안 방치해두면 우울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나 역시도 어둠의 시기를 여러 번 거쳤다. 여러 삶의 궤적 들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고난들 모두를 다 잘 대처하며 살아온 것은 절대 아니다. 최근에 기억나는 것은 몇 년 전 건강상의 이유로 내가 원하는 것들을 많이 내려놔야 했던 때였다. 내 머리는 그만 놔야 할 때라고 말하지만 마음이 그것을 용납하지 못해 괴로웠던 상황이었다. 물론 놓지 않고 킵 고잉 해도 버티기야 했겠지만 그대로 조금 더 가다가는 인공 심장을 달게 될 것 같았다. 그때 내 욕망을 멈추고 헛헛한 마음을 달래는데 소설 읽는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동안 나는 소설을 읽는 것이 시간낭비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주로 읽었던 글들은 실험과 연구를 바탕으로 나온 팩트 위주의 글들이었다. 소설은 재미를 위해서는 읽을 수는 있지만 딱 ‘재미’ 용도일 뿐 나에게 크게 도움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큰 실의에 빠져 삶의 방향성도 잃고 무기력에 허우적댈 때 문득 장편소설을 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시간도 많으니 말이다. 그래서 읽기 시작했던 것이 소설 토지였다.
처음에는 가볍게 읽기 시작했는데 점점 마음이 그 이야기들 속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 시대 속 사람들 이야기 말이다. 시대가 갑오개혁 부근부터 해방 직후까지인데 그 혼란스러운 기간 속에 수많은 사람들의 굴곡진 인생이 펼쳐진다. 그 이야기들에 빠져들다 보니 사람의 인생이 좀 관조적으로 느껴진다고 할까나? 딱 그 시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한데 엉켜 어떻게 보면 죽음조차도 건조하게 서술이 되는데 그게 이상하게 위로가 되더라. 그때까지 나는 인생은 매우 특별한 것이니 그 특별한 의미를 찾아 자아를 실현해야 한다는 강박에 쫓겨 살아왔었다. 그런데 토지를 읽다 보니 사람의 인생은 그냥 그 자체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리 특별한 것 없이 그냥 그렇게 시간의 흐름대로 흘러가는 것일 뿐이니 그렇게 안달복달 마음고생할 필요 없다고 위로해주는 것 같았다. 나라는 사람의 인생을 저 멀리서 지켜보니 그렇게 아프고 크게 느껴졌던 내 불행이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 않게 된 것이다. ‘그래. 그래서 뭐 어쩌라고?’ 정도로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할까? 그렇게 마지막 권까지 읽어 나갔는데 마지막권 속에 슬쩍 지나가는 한 켠의 글귀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 할머니 사시는 모습에서 감동을 받은 것은 사실이에요. 그분은 자신의 불행까지 사랑한다고 할까, 천지만물을 모든 것을 사랑하고 감사하며 소중히 여기는 것 같았어요. 겨울 긴긴밤에 목화씨를 발가 내면서도 밥을 짓고 아궁이에 솔가지를 뿐질러 넣을 때도 아들에게 옷을 갈아입힐 때도 그 정성이 하나의 의식 같아 보이는 거예요. 할머니 자신도 조금도 의식하지 않았지만 말이에요. 나도 저와 같이 시간을 가득하게 살아보고 싶다 그런 생각 여러 번 했어요 싱그러운 흐르는 강물같이 뭐라 설명이 안되지만.”
처음 이 글귀를 읽었을 때 머리가 딩 울리는 기분이었다. 아주 오랫동안 풀리지 않은 문제를 안고 살았는데 해결책을 찾은 느낌이었다. 저 대화에 나오는 시골 할머니의 소박한 삶의 태도처럼 하루를 가득히 매사 일어나는 일을 숭고한 의식처럼 살려고 노력한 적이 있었나 반성이 되었다. 그래서 그런 태도를 가지려고 하루하루 내 삶에 적용하다 보니 더 이상 내가 바라는 내가 못되었어도 나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매 순간 내가 나로서 충만하게 살아가니 다른 사람이 안보였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노력하고 사는지 봐도 내가 뒤쳐진다는 불안감을 덜 느끼게 되었고 남들은 나에게 더 이상 중요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아주 우연히 발견한 행운 같은 것이었다.
이 글귀는 긴 호흡의 대하소설인 토지를 마무리하는 부분 즈음에서 나온 것이다. 박경리 선생님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말씀해주고 싶었던 위로의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소설 읽기는 나에게 좋았던 방법이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인생이 내 뜻대로 잘 풀리지 않아 괴로운 이들도 이렇게 자신만의 행운을 삶 속에서 발견하고 괜찮아졌으면 좋겠다. 진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