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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리멘탈 심리학자 May 13. 2022

미드로 영어 배우기는 과연 만능인가

만능이라 생각했던 사람의 실수

  영어 콘텐츠 홍수의 시대이다. 특히 OTT 서비스가 보편화되면서 영어를 집에서 쉽게 배울 수 있는 접근성이 더 높아졌다. 하다못해 유튜브 검색만 해도 선택이 어려울 정도의 영어 정보가 쏟아진다. 전처럼 굳이 돈을 들여 영어회화학원이나 전화영어를 하지 않아도 영어 리스닝과 스피킹을 해결할 수 있다. 그중 미드에서 익힌 어휘와 문장을 바탕으로 원어민과 수월하게 대화를 나눌 정도로 영어 실력이 늘었다는 후기가 많다. 심지어 영어 강사들도 미드 영어 공부방법을 추천하고 미드 내용으로 강의를 하기도 한다. 시중에는 미드나 영미권 영화의 어휘와 어문을 따로 정리한 책들도 있다. 미드로 톡톡히 재미를 본 후기만 따른다면 마치 네이티브 스피커가 될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미드로 영어를 배우는 가장 큰 장점은 OTT 결제 비용을 제외하고는 따로 비용이 들지 않고 집 밖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편의성이다. 사실 스피킹은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비루한 영어 실력이 처참하게 들통나는 부분 중에 하나이다. 따라서 미드 영어공부법은 영어 회화학원 이용과 비교해  내 실력이 까발려지는 부담과 실수에 대한 부담이 없다. 또한 전화 영어와는 달리 수업 전 말할 내용을 미리 준비할 필요도 없다. 플러스 알파로 재미까지 있어 재미와 영어실력 다 잡을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내 경험을 공유해보자면 나는 한국에서 해외 박사과정을 지원하려고 할 때 넉넉한 준비 시간이 있었다. 입학에 필요한 공인 영어점수인 아이엘츠 시험 준비 외에 실생활에서 바로 쓸 수 있는 영어회화 또한 따로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 한국에 어학연수 온 영어권 출신의 친구를 정기적으로 만나 대화했고 전화영어도 했었는데 이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그 친구들의 한국 적응을 도와주고 있어 아무래도 갑인 입장이라 내가 아무리 개떡같이 말해도 그 친구들이 대화를 다 맞춰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또한 전화 영어는 교재를 통해 사전에 어느 정도 말할 거리를 준비하고 토론하는지라 아이엘츠 스피킹 영역을 공부하는 것과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따라서 미드로 리스닝과 스피킹을 익혀보자고 했다.


십몇 년 전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선택했던 미드는 미드의 클래식이라고 하는 프렌즈였다. 그렇지만 너무 오래전 미드라 끌리지 않았다. 재미와 인기로 따지면 법정물 의학물이 최고인데 내가 의사나 법조인 할 것도 아니고 특정 주제에 치우쳐져 있어 다양한 것을 배우는 데에 한계가 있을 것 같아 탈락시켰다. 최대한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된 주제로 만들어진 미드를 고르려고 했고 그 선택은 ‘위기의 주부들’이었다. 분량은 시즌 당 에피소드 23개가량의 총 8 시즌이다. 섹스 앤 더 시티의 그녀들이 결혼해 교외로 이사 간 다면 이러지 않을까 싶은 내용이다. 아무래도 주부들이 중심이 되어 그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여성 취향의 내용이기에 남자들에게는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주요 등장인물들이 중산층 이상의 교양 있는 영어를 구사해야 하는 배경이어서 어휘와 발음이 굉장히 고급스럽다는 장점이 있다. 이때 당시 위기의 주부들로 공부하면서 내가 개인적으로 느꼈던 장단점을 얘기해보고자 한다.





# 일상생활에서 쓸 수 있는 다양한 어휘와 대화


지금은 많이 달라졌겠지만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영어 스피킹 교육이 전무했다. 그 시절 영어 교육의 폐해가 그렇듯이 시험 영어는 익숙한데 그것을 실생활에서 바로 적용하기는 어려웠다. 이런 딱딱한 단어와 대화를 과연 친구들 사이에서 쓸 수 있나 과연 알아들을까는 언제나 의문이었다. 미드는 이 의문을 풀어주었다. 위기의 주부들 에피소드 하나당 약 40분 기준으로 엄청나게 다양한 단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따라서 그것만 다 익혀도 어휘가 굉장히 풍부해진다. 또한 등장인물들의 대화 속도와 말의 리듬을 관찰하여 실제 원어민들의 대화 양상을 유추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 자연스러운 문화 체득


등장인물들의 말하기 이외에도 그 사람들의 일상을 관찰하여 그들의 문화를 유추해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먼저 외형적으로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모습에서 그들의 문화를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위기의 주부들에서는 개인 주택들이 어떤 형태로 구성되어 동네를 이루고 그 집 안에 인테리어와 정원은 어떻게 꾸며져 있는지를 통해 미국 중산층의 주거 문화를 엿볼 수 있다. 그밖에도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면 엄마가 어떻게 아이의 과외활동과 학교 행사 같은 것에 참여하는지를 알 수 있다. 소소하게는 집에서 여는 풀파티, 할로윈 행사, 추수감사절 가족모임, 장례식, 결혼식 등의 행사를 외형적으로 쉽게 관찰할 수 있다. 겉으로 쉽게 드러나는 이러한 문화 형태 말고도 사람들의 의식 속에 깊게 자리해있는 문화 형태도 알 수 있다. 미드 속 캐릭터를 따라가다 보면 그 사람의 심리상태 즉 어떤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지 지켜보면 이 문화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관습 같은 것을 유추할 수 있다. 결혼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하는지 출산, 육아에 대한 인식 같은 것들 말이다. 또한 사람 사이에서 어떤 것이 용인되고 어떤 것이 안돼는지 그 선에 대해서도 알게 돼 사회적 관계에서 어떤 말과 행동이 선을 넘는 무례인지를 배울 수 있다.


# 재미를 통한 영어 학습의 즐거움


내가 생각하는 미드 영어 공부법의 최대 장점은 공부의 형태지만 재미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배우기 어렵고 재미가 없으면 반복하기 쉽지 않다. 자기가 흥미를 느끼는 주제이거나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는 미드라면 배우라면 아무리 반복해서 봐도 덜 질릴 것이다. 나의 경우 처음에는 자막 없이 보고 그다음에는 한글 자막과 영어 자막을 동시에 켜 단어를 정리했다. 그다음에는 영자 자막이나 스크립트를 따라 읽었다. 이렇게 전 시즌을 한번 돌았고 내용과 어휘가 익숙해졌다 싶었을 때 무자막으로 무한 반복해 시청했다. 바빠서 못할 때도 많았지만 거의 십 년 이상을 반복한 것 같다. 그런데 아직도 질리지 않았고 오히려 오래되니까 캐릭터들이랑 친구가 된 느낌이다. 이러한 막강한 장점들을 가지고 있지만 어떤 방법도 완벽한 방법은 없듯이 미드 영어공부법도 단점을 지니고 있다.





# 미드가 영어권 문화를 대표하지는 않음


미드 공부법의 최대 단점은 미드는 현실은 다르다는 것과 관련된다. 내가 했던 가장 큰 착각 중에 하나는 인기 미드는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볼 것이고 어느 정도 그 어휘들이 꼭 미국인들이 아닐지라도 많은 영어권 국가 사람들에게 통용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영어를 쓰는 인구분포는 굉장히 넓고 당연히 각 나라 문화권마다 다양한 문화가 존재한다. 게다가 미국 안에서도 세대별, 연령별, 성별 문화가 다르고 각 계층이 주로 사용하는 어휘 또한 다를 수 있다. 내가 박사과정을 할 때는 굉장히 보수적인 유럽 문화권 출신의 사람들이 많았고 미국인들조차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주 출신들이었다. 그때 그들에게 미드에서 배운 어휘를 사용하다 실수한 적이 많다. 단어 자체를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런 말은 대체 어디서 배워온 것이냐며 지적당한 적도 있었다. 클래식한 단어들이야 그런 일이 없겠지만 트렌디한 어휘는 사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 영어가 잘 들리는 착각


미드가 현실과 또 다른 점은 대사가 잘 들리는 순간 마치 리스닝 실력이 일취월장했다는 착각과 관련된다. 배우들은 기본적으로 발성이 굉장히 좋다. 맡은 배역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배우에게 전달력은 기본이기 때문에 발음도 굉장히 클리어한 편이다. 게다가 이런 훌륭한 발성과 발음을 조용한 환경에서 집중해서 들을 것이다. 그런데 배우처럼 발성이 좋지도 않은 일반인들이 실제 말을 듣고 하는 상황에서는 실생활 소음이 섞여 있고 걸으면서 대화하거나 물건을 고르며 대화하는 등 멀티 태스킹을 하는 상황이 많다. 조용한 장소에서 서로의 대화에 백 퍼센트 집중하는 상황은 오히려 적을 것이다. 그래서 미드가 잘 들린다고 리스닝을 마스터했다고 착각하면 오산이다.  


# 방구석 영어


실제 대화에의 적용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쉽지만은 않다. 모름지기 대화의 기본은 핑퐁, 티키타카이다. 아무리 미드를 통해 이런 상황에서 이런 대화를  외웠다 써먹어야지 결심 한다한들 생각보다 잘 안 나온다. 언어를 잘하고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야 대화 중에 자연스럽게 나올 것이다. 그렇지만 영어 대화 경험이 많지 않은 초심자였던 나 같은 경우는 일단 마음이 급했다. 내가 익힌 것을 써먹고 싶었다. 내가 이런 어휘를 알고 이런 종류의 구문을 아는 사람인 것을 드러내고 싶었다. 이런 조급한 마음이 앞서기 때문에 대화 중간에 내 다음 할 말만 생각했던 것 같다. 당연히 대화에 대한 집중도는 떨어지고 상대방은 얘가 왜 맥락에 맞지 않는 말을 할까 의아해했을 것이다.


# 많은 투자 시간


미드 공부법을 택한 동기가 기왕 미드 보는 김에 영어공부까지 하자는 가벼운 마음이라면 가성비가 좋은 공부법이라고 하겠다. 그렇지만 진지하게 학습의 측면이라고 한다면 생각보다 투자하는 시간과 노력이 엄청나게 들어간다. 물론 언어에 재능이 있거나 기존에 쌓아 놓은 영어 실력이 상당하다면 시간과 노력은 단축된다. 나의 경우 앞서 말했듯이 자막 없이-> 한/영자막-> 영자막 단계로 드라마를 보며 리스닝과 스피킹을 연습했다. 이외에 워드 파일로 시즌별/에피소드별 단어를 따로 정리했고 시즌이 지날수록 초안에다가 위기의 주부들 드라마 내용 안에서만 나온 유의어와 반의어를 덧붙여 정리를 했다. 단순히 드라마를 틀어놓고 보는 것 만으로는 공부가 아니기 때문에 생각보다 엄청나게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여기에 언어 학습의 정체기까지 같이 올 수도 있다. 따라서 미드로만 공부하면 영어가 쑥쑥 향상된다는 느낌은 생각보다 적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드로 영어 배우는 것은 참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어떤 방법이든 장단점이 존재하기 마련인데 마치 이것으로 모든 것이 다 될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언어에는 듣기, 읽기, 쓰기, 말하기의 영역이 있고 한 영역을 잘한다고 다른 영역들도 덩달아 잘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한국말을 잘한다고 꼭 문해력이 뛰어나거나 글쓰기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 영어도 마찬가지다. 각 영역마다 어느 정도 다른 노력을 해줘야 한다.


또한 영어를 통해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맞는 노력도 다를 것이다. 공인 영어 점수가 필요한데 시험 영어만 딱딱하게 공부하기도 싫고 영어 실력도 늘리자는 생각에 미드로  공부한다는 사람을 많이 보았다. 뭐랄까 마치 수능 국어 공부를 하는데  문학작품 및 다양한 글을 통해 실력을 늘린 후 고득점을 받겠다는 생각과 비슷하게 들린다. 물론 그렇게 해서 고득점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엄청나게 들어가는 비효율적인 방법이다. 공인 영어 시험도 어쨌든 시험이다. 그리고 시험에는 점수를 잘 받기 위한 엄연한 스킬이 존재한다. 우선은 점수를 받기 위한 노력이 최우선시되어야 하고 미드 공부는 보조가 돼야 한다. 또한 미드는 회화를 익히기 위한 보조적인 수단으로는 훌륭하지만 지나치게 의존해서는 안된다. 실제 사람들과 부딪혀 그 안에서 노하우를 쌓는 것이 중요하지 대화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현재 한국으로 돌아왔고 그간 익힌 영어를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영어를 전처럼 악착같이 잘해야 하는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에 스트레스받지 않고 위기의 주부들을 반복해 돌려보고 있다. 자막 없이 틀어놓고 가끔 좋아하는 대사가 나오면 따라 하는 수준이다. 지금 나에게는 이 미드 공부법이 부담도 없고 아주 좋다. 만약에 미드로 영어를 완전히 뽀갠다 혹은 원어민처럼 되겠다와 같은 지나치게 높은 목표만 없다면 인생 미드 하나쯤은 옆에 두고 오랜 시간 반복하며 익히는 것도 가성비 좋은 방법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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